[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설교 (6), 주권자 성령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설교 (6), 주권자 성령

설교자의 설교 행위 속에는 성령이 일 (work)하십니다. 19세기 “황금의 입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진 설교자 J. D. 존슨 (Jones)에게 누군가 질문했습니다. “설교자 대니엘 로랜드와 조지 휫필드의 차이를 비교해 주세요.” 대니엘 로우랜즈 (Daniel Rowlands)는 당시 위대한 설교자로 그리고 웅변가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탁월한 설교자입니다. 존슨은 두 사람은 모두 위대한 설교자라고 답한 후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구변 (口辯)이나 전달, 설교행위, 모인 사람들을 고양시켜 하늘로 끌고 올라가는 면에서는 나는 그들 사이에 아주 적은 차이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큰 차이가 있다면 로우랜즈로부터는 확실히 언제나 훌륭한 설교 내용을 들을 수 있지만, 휫필드로부터는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휫필드의 설교 내용이 초라할지라도 회중들은 그를 통해 훌륭한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 있던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설교를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휫필드는 이렇게 대답했습 니다.  “글쎄요, 원하신다면 제가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번개와 천둥을 인쇄본에 담을 수는 없을 겁니다.” 설교에 있어서 휫필드에게 중요했던 것은 “번개와 천둥”이었습니다. 설교문은 인쇄할 수 있지만, 번개와 천둥은 차가운 인쇄로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설교 행위 속에 존재하는 성령의 일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어떤 탁월한 문학적 묘사력도 압도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의 주권자는 성령이다”는 이 원리를 자주 언급합니다. 자신의 설교 사역의 주체는 성령인 것을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밝힙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자신의 설교에 능력으로 일하고 계심을 알립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설교할 때 자기 안에 역사하여 강력한 내면의 울림을 만들며 힘차게 휘몰아치는 영적인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바울에게 설교는 수동적이고 무덤덤한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역동적인 노력으로 어떤 창조적인 절정에 이르는 무언가입니다. 이곳에 사용된 “수고한다”는 헬라어 “에네르기아”는 운동 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 경주에서 전력 질주하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바울은 성령의 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성령의 부추김에 따라 힘을 다해 질주했던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우리의 설교 행위에서 성령이 역사하도록 초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두 측면, 즉 설교자의 보이는 생활과 외적인 태도를 움직이는 내면의 상태를 살펴 봅니다.

   첫째는 실천적인 삶입니다. 바울은 단지 그리스도에 대해 말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했고, 그리스도에 관해서 가르쳤고, 그리스도를 높이셨고,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하는 중에 바울의 설교 사역에서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앤서니 티슬턴은 성령의 역할은 “표면에 나서지 않음,”즉 성령은 스스로는 숨기시고 설교자의 실천적인 삶을 통해 일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언제나 의복을 철저하게 깨끗이 차려 입는 휫필드에게 누군가“꼭 그렇게 외적으로 깨끗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이런 식으로 답했습니다.“아니오. 이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요. 설교자는 흠이 없어야 해요. 할 수만 있으면 의복에서 조차도 말이요.” 설교자로서 자기 삶을 통째로 하나님 앞에 살았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던 휫필드의 사역에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성령은 날마다 그리고 모든 순간에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행하는 자와 동역합니다.     

   두번째는 설교자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설교자들이 그렇게 된 것은 설교에 탁월한 은사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설교 사역에 성령이 나타나시고 능력이 임했을 때는 “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고백합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을 위해서는 재능과 은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인격입니다. 은사와 재능이 행함에 관한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인격에 관한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은사와 인격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악한 자들 중에도 은사를 가진 이들이 많다. 이들은 마지막 날에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탁월성은 있지만, 진실한 은혜와 거룩함 같은 성품과는 동떨어져 있다. 성령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그분은 바로 그 영혼에 직접 참여하신다. 은혜는 말 그대로 그 영혼에 참여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탁월 성은 가장 낮은 겸손과 온유가 무한한 영광과 위엄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 행위에 있어서 성령의 개입은 절대적입니다. 옛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성령에 지배되고 그에게이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설교자에게 성령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설교자 안에 있는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긍휼한 성품을 통해서 밖으로 권위 있고 천둥소리를 발합니다. 우리가 약점이 있고 연약해도 설교 행위에 있어서 열매는 우리 마음 속에서 일하시는 전능하신 성령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남규 목사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