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2), 징벌이 아닌 관계
기원전 2세기에 활동했던 애녹은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깊은 슬픔에 젖어 글을 씁니다. “오, 내 눈이 물구름이었으면, 내가 너희를 위해 울고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내 마음의 슬픔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누가 너희가 서로 미워하고 범죄하도록 허락했느냐? 너희 죄인들아, 심판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의인은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욕구에 따라서 그들에게 앙갚음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너희의 손아귀에서 다시 끌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저주에 깊게 얽매여서 그 저주에서 풀려날 수 없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 죄로 인하여 구제책이 너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악으로 갚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 행위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다.”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외부에서 부과된 보상이나 처벌이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선택한 결과에 따른 보응입니다.
애녹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어떤 유대인은 죽음 직전에 아들을 불러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얘야, 네가 자라나면서 겪는 모든 일들을 내가 보지 못하게 되었구나. 얘야, 내가 죽으면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고,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모든 날 동안 그녀를 버리지 말아라. 그녀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평생 그녀를 공경하여라. 하나님을 네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마음 다해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켜라. 그리고 남에게 베풀어야 할 자비를 외면하지 말아라. 네가 가진 만큼 가난한 자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 인색하게 눈을 돌리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너의 구제는 큰 보물이 되어, 고난의 날에 너를 지켜 주는 안전한 보증이 될 것이다. 구제는 죄를 없애고 어두움을 몰아내며,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큰 보물을 얻는 삶도 사람이 선택하여 결정한 보상입니다.
희랍어 “심판 (하다)”는 “아포크리노”는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위에 소개한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판단과 평가에 따라 결정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또한 “답변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 답변은 단순한 질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요청이나 연설을 통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아포크리노가 202번이나 “대답하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낱말은 “헌신하다,” “분리하다,” “자신을 변호하다,” “거절하다,” 또는 “한쪽으로 기울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 용어들은 관계 형성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를 선택하거나 다른 것을 거절할 때, 한 주인에게 헌신하면서 다른 주인을 떠날 때, 하나님의 규범을 지키거나 아니면 위반할 때, 혹은 정의를 실현하거나 반대로 위법을 할 때와 같이 상황에 반응한 결과가 가져오는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죄에 대한 대가로 받는 형벌이나 의로운 삶의 결과로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형벌의 개념을 거절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 여부로 결정되는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자들이 받는 심판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그들이 황폐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심판받게 되는 원인을 이런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당시 아이들이 장터에서 친구를 초청하여 함께 어울리던 모습을 예수님의 초청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한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관계를 통한 예수님의 심판은 크게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반응한 사람과 부정적으로 반응한 사람을 두 종류로 분류하여 심판합니다.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자의 아들들, 전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후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은 “양”이며 “염소”는 이방인입니다. 전자는 “영생에 들어가는 자”이며 후자는 “지옥에 던져지는 자”로 심판받습니다. 천국 시민 자격에 관한 심판 기준은 그들의 행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두번째는 하나님의 가족에서 제외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아버지의 식탁에 앉게 되며, 다른 사람들은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을 뵙고 영생을 얻게됩니다. 부정적인 자들의 결말은 꺼지지 않는 불 또는 게헨나로 떨어져,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응답함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제자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일부 심판에 관한 말씀에서 행위는 예수님과의 관계 또는 반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심판의 결과 예수님의 제자됨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죄에 관한 엄격한 응보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또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심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 반응과 선택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에 긍정적 반응의 행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선택의 결과로 얻는 심판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이남규 목사
심판 (2), 징벌이 아닌 관계
기원전 2세기에 활동했던 애녹은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깊은 슬픔에 젖어 글을 씁니다. “오, 내 눈이 물구름이었으면, 내가 너희를 위해 울고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내 마음의 슬픔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 누가 너희가 서로 미워하고 범죄하도록 허락했느냐? 너희 죄인들아, 심판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의인은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욕구에 따라서 그들에게 앙갚음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너희의 손아귀에서 다시 끌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저주에 깊게 얽매여서 그 저주에서 풀려날 수 없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 죄로 인하여 구제책이 너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악으로 갚는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 행위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다.” 악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외부에서 부과된 보상이나 처벌이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선택한 결과에 따른 보응입니다.
애녹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어떤 유대인은 죽음 직전에 아들을 불러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얘야, 네가 자라나면서 겪는 모든 일들을 내가 보지 못하게 되었구나. 얘야, 내가 죽으면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고, 내가 살아 있을 때처럼 모든 날 동안 그녀를 버리지 말아라. 그녀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기억하고, 평생 그녀를 공경하여라. 하나님을 네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마음 다해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켜라. 그리고 남에게 베풀어야 할 자비를 외면하지 말아라. 네가 가진 만큼 가난한 자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고, 인색하게 눈을 돌리지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너의 구제는 큰 보물이 되어, 고난의 날에 너를 지켜 주는 안전한 보증이 될 것이다. 구제는 죄를 없애고 어두움을 몰아내며, 하나님의 자비를 얻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큰 보물을 얻는 삶도 사람이 선택하여 결정한 보상입니다.
희랍어 “심판 (하다)”는 “아포크리노”는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위에 소개한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판단과 평가에 따라 결정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또한 “답변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 답변은 단순한 질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요청이나 연설을 통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아포크리노가 202번이나 “대답하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낱말은 “헌신하다,” “분리하다,” “자신을 변호하다,” “거절하다,” 또는 “한쪽으로 기울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 용어들은 관계 형성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를 선택하거나 다른 것을 거절할 때, 한 주인에게 헌신하면서 다른 주인을 떠날 때, 하나님의 규범을 지키거나 아니면 위반할 때, 혹은 정의를 실현하거나 반대로 위법을 할 때와 같이 상황에 반응한 결과가 가져오는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죄에 대한 대가로 받는 형벌이나 의로운 삶의 결과로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형벌의 개념을 거절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 여부로 결정되는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자들이 받는 심판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그들이 황폐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심판받게 되는 원인을 이런 비유로 설명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당시 아이들이 장터에서 친구를 초청하여 함께 어울리던 모습을 예수님의 초청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한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관계를 통한 예수님의 심판은 크게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반응한 사람과 부정적으로 반응한 사람을 두 종류로 분류하여 심판합니다.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자의 아들들, 전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후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은 “양”이며 “염소”는 이방인입니다. 전자는 “영생에 들어가는 자”이며 후자는 “지옥에 던져지는 자”로 심판받습니다. 천국 시민 자격에 관한 심판 기준은 그들의 행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두번째는 하나님의 가족에서 제외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아버지의 식탁에 앉게 되며, 다른 사람들은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을 뵙고 영생을 얻게됩니다. 부정적인 자들의 결말은 꺼지지 않는 불 또는 게헨나로 떨어져,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응답함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제자의 자격을 상실합니다. 일부 심판에 관한 말씀에서 행위는 예수님과의 관계 또는 반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심판의 결과 예수님의 제자됨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죄에 관한 엄격한 응보적 정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또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심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 반응과 선택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에 긍정적 반응의 행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선택의 결과로 얻는 심판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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