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은 혼자가 아니다_마태복음 10:16-20
밴쿠버 산돌교회 장준호 목사
“하나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요?”
한 주간 상담하며 들었던 말 중에서 제 가슴에 가장 깊숙이 박힌 말들입니다. 한 자매님이 형제간의 반목으로 오랜시간 힘들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자신이 먼저 용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 노력하고 부질 없는 짓을 하는 것 처럼 생각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상황은 더욱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갑작스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두 아이를 혼자서는 돌볼 수 없게 되어서 어쩔수 없이 그토록 미워하던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자존심을 던지고서 부탁을 했지만 도리어 조소섞인 말을 듣게 되자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말들이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으로 살려고 몸부림 치면서 오히려 자신이 의지할 곳 없는 고아 같이 느껴진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정말 돌보지 않으실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비록 양과 같은 연약한 모습이어도, 오히려 양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께서 목자의 모습으로 함께하심을 깨닫고 또한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 양은 버려지지 않았다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10장에 제자들을 보내시는 이유를 그 앞장인 9장 36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땅을 사는 백성들의 모습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이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는 백성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순종하는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2. 부르심이 있다면 보내심도 있다
‘오라’하셔서 자녀로 삼으시고 이제는 제자가 되어 다시 세상으로 ‘가라’고 하신다.
본문 16절에는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보내셨다고 증거합니다.
보냄을 받기 전,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때의 우리는 겨와 같았습니다. 겉 모양은 이삭과 같으나 속이 비었습니다. 생명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심히 요동하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생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재료를 다 동원해도 불가능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시니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 결과 빈 껍데기 인생이 생명을 품은 씨앗이 되었습니다.
씨앗이 되었다면 반드시 심겨져야 합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모래와 같고, 심겨지지 않으면 돌맹이에 불과 합니다. 이 씨앗이 심겨져야 되는 밭이 놀랍게도 세상 입니다. 그곳은 죄가 가득합니다. 때로는 얼마나 더럽고 치사합니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구원 받은 성도가 반드시 심겨져야 할 곳이고 썩어져 열매를 맺어야 하는 곳 입니다.
바로 그곳에 자녀 삼으신 이들을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으로 보내시는 것 입니다.
‘오라’하시는 부르심으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가라’는 보내심이 있습니다.
3. 이리를 만날 것이다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할 것이다 (마 10:17).
총독과 임금 앞에 끌려가 박해를 받을 것이다 (마 10:18).
제자들은 양의 모습으로 이리 가운데 보내시는데 그 이리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 당시의 정치, 종교,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포악하게 사용합니다. 그 힘으로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가로 막습니다.
그러나 이리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하면, 구원의 기쁨을 상실하게 하는 존재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리는 하나님 나라의 법, 사랑과 용서가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따라 살게 합니다.
이처럼 이리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존재를 상징 합니다.
한 주간 여러 성도님들이 이리를 만나셨습니다.
한 권사님은 죽음을 앞둔 동생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매몰차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거절감이 수치심이 되어 다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 자매님이 어머니의 죽음에 허무함이 몰려와 주님을 섬기는 것이나 자신의 삶에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전 복음을 받고 등록하신 성도님이 침례까지 받으면 비자의 문제가 더 잘 해결 될 것 같았으나 일이 더 안풀리는 것 같자 덜걱 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이렇게 계속 힘들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일에 봉사를 잘 하시던 제직이 다른 분들의 말에 상처가 되어 봉사는 고사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굴을 보면 불편하고 마음에 미움이 올라와서 교회에 나오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크고 작은 이리들을 만납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저희를 꽉 움켜쥐면 옴싹달싹 못하게 됩니다. 그 강한 이빨과 발톱으로 우리를 헤집어 여러 갈래고 찢어 놓기도 합니다.
4. 그런데도 겨우 양의 모습으로 보내시다니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를 맹수처럼 강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양의 모습 그대로 보내시는 것일까요?
양은 전투용이 아닙니다. 싸움을 잘하는 짐승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도 버거운 짐승입니다.
그 양의 특징은 이러합니다. 시력이 약해서 맹수가 가까이 오고 나서야 겨우 알아 봅니다. 고집이 세서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몸이 둔해서 쉽게 상처가 나며, 한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자신을 지킬 발톱과 이빨도 없습니다. 다른 초식동물 처럼 빠른 발이나 큰 뿔도 없습니다.
즉 양이란 동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멸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보내시는 것이라면 좀더 근사한 모습이어야 할 것 같지만 주님은 ‘양’의 모습으로 보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예수님 자신이 어린 양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역의 원리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요 1:29).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대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고 또 전하는 복음의 핵심 입니다. 이 은혜로 이리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 입니다. 그렇다면 이리를 만나 죽는 양의 모습이어야 어린양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가장 잘 드러내게 될 것 입니다.
– 목자가 함께 하신다
양의 모습으로 이리 가운데 보내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반드시 목자로 양과 항상 함께 하심을 전제로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양은 자신을 지킬 무기가 없으니 혼자 살아 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 양이 지금까지 멸종되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양들에게는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양들을 돌보는 참목자는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을 이용하는 삯군 목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참목자를 약속하셨습니다.
개역개정 예레미야 23장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목자라고 밝히셨습니다.
개역개정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목자로 함께 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양이 무슨 힘이 있다고 복음을 증거하는 대단한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약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잘 모르니 자꾸만 묻게 됩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게 됩니다. 순종하고 싶은데 힘도 능력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기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성령께서 돕고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리를 만날 때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 되겠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이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가장 확실하게 경험하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양으로 보내시는 것은
목자이신 주님을 더욱 세미하게 경험케 하시는 은혜입니다.
말씀으로, 사명으로 살려 하지만 날마다 실패하며 절망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양들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목자 되신는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저희에게 일어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 썩어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는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주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 두려움을 이기며 살게 됩니다.
두번째는 자신의 존귀함을 아는 능력 입니다.
마태복음 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 두 마리가 헐값에 팔리지만, 그런 미미한 생명조차도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악한 세력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하나까지 다 세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거절이나 실패로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평가나 소유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 만큼 가치있는 존재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짜리’ 입니다.
5. 양들이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의 의미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을 겉으로만 모방하거나 특정 규칙을 지키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참여하여 그분의 삶을 살아내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 모습이 세상의 눈으로는 약한 양의 모습으로 죽는 것 처럼 보여지는 것이지요.
마태가 자신의 삶, 그 안정감을 버린것이 죽음이고, 그동안 쌓았던 물질을 잔치를 여는데 탕진하는 것도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는 것으로 그리고 그가 준비한 잔치에 참여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심으로 사회적 큰 비난과 매장을 당하시게 된 것도 죽음입니다.
세리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자리를 버리는 마태를 보면서 그동안 그를 알던 사람들은 뭘라고 말했을까요?
“너 답지 않게 왜그래?” “예수 믿더니 이상해 졌네..”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다른 결정을 하고, 예수님 때문에 다르게 살고, 예수님 때문에 나 답지 못하게 살게 되는 순간이 많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드러나고 내가 살면 주님이 가려 집니다. 반대로 내 자존심, 경험, 욕심, 자랑이 죽으면 주님이 드러나십니다.
오늘의 삶에서 두려워할 걱정과 염려 그리고 문제와 반복되는 갈등을 만나고 계십니까?
포악한 이리를 계속 만나고 계십니까?
주님을 시인할 기회를 얻은 것 입니다.
나를 부인하며 깨어질 때 마다 그만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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