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깎는 행복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감자를 깎는데 남편이 묻는다. “뭐가 그리 즐거워?”
“즐겁지. 내가 감자를 깎을 수 있다는 게 신나지. 너무 좋아. 감사해.”
감자를 깎는 일이 즐거운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이 다 빠져서 감자를 깎는 건 고사하고 작은 감자 하나 손에 들 수조차 없을 때,
나는 간절히 간절히 감자를 깎고 싶었다. 다시 감자를 깎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한 때 식구들 삼시 세끼 밥을 차려주면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밥순이 노릇에 공연히 열불이 나서 행주를 바닥으로 훽 내다던지며
누구 들으라는 듯 “뭔 놈의 팔자가 돌아서면 밥이냐!” 냅다 버럭!
점심에는 뭘 해먹나…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지지고 볶고 어찌어찌 하고 나면 금방 또 저녁이다. 저녁에는 뭘하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그 지리멸렬한 밥 해대는 일상, 그 자잘하고 사소한 일상을 나의 축 늘어진 손은 애타게 그리워했다.
감자를 깎는다. 하얗게 깎은 감자를 싹둑싹둑 칼로 썬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고 도마에 톡톡 경쾌한 소리가 난다.
감자를 썰 힘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감사를 모르고 행주를 집어던지며 헛소리나 내뱉고 앉아 있으니 하나님이 찬물을 확 들이부으신거다. 정신 좀 차리라고.
대차게 아팠던 일 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인지 모른다.
고난이 축복이란 말을 들으면 속으로 ‘저게 대체 뭔 소린고…’ 했는데 그게 이 소리였나보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걸 발견하려면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먼 길을 돌아서 감자 깎는 행복을 발견했다.
감자뿐이랴?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 ,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 밥이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웃을 수 있다는 것…감격하며 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감사다. 감사로 충만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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