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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세상돋보기]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고 싶을 때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고 싶을 때

우리는 살다보면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어디론가 도망가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흔히 ‘잠수 탄다’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맡은 일이 너무 힘들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런 마음이 든다. 일터에서 알바생이 며칠 알바를 하다 너무 힘들면 어느 날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사장님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잠수를 탄 것이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갑자기 잠수를 탈 때도 있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 아무리 연락을 하려 해도 연락이 두절되어 있다. 계약 현장에서는 계약을 채결하기로 해놓고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도저히 이 계약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알지만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 어디론가 도망가려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라 하더라도 때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요나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요나는 명색이 선지자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충실하게 감당해야 할 일인가? 그런데 그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잠수를 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요나는 도망쳤을까? 힘들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배를 타고 세상 끝 다시스로 무려 3천 킬로미터나 되는 항해기를 가는 것이 더 힘들다. 요나가 도망친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을 니느웨로 보냈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훗날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이다. 요나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도시이다. 니느웨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혀왔고 그들의 잔인함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데 그렇게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요나의 마음에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앗수르에게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저런 못된 인간들은 차라리 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보내신다. 하나님이 어떻게 저런 인간에게 나를 보내실 수 있을까? 정말 저런 인간에게 감히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필요할까? 그냥 내팽게쳐 두는 것이 낫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불편한 감정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을 찾아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 그들을 살리라고 하신다. 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타인에게까지 확대하는 마음 근육의 스트레칭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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