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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칼럼] 영적 코치 조나단 에드워즈

영적 코치 조나단 에드워즈

오늘 창 밖에서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쌓은 눈을 바라 볼 때면 마음 속에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18세기 최고의 영적 거장인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의 영적인 코칭은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초대하였고 또한 그들의 삶에 무한한 변혁의 길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 10월 5일 미국의 코네티컷의 이스트 윈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디모데 에드워즈는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 청교도 목회자였으며, 어머니 에스더는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 솔로몬 스타다드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훌륭한 청교도 목사인 가문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성장했습니다.

1716년 에드워즈는 그의 나이 13세때에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 대학에 입학하였고, 1720년 17세의 나이로 수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이어 20세에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기간 동안 뉴욕에서 8개월, 볼턴에서 6개월 동안 작은 교회에서 목회 경험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21세에  2년여 동안 예일대에서 교수로 제직 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초기 생애는 대부분 예일대학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기간 동안 그는 천재적인 두뇌로 예일대의 도서관에 비치된 18세기의 신문학들을 심취하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그의 집안 전통과 당시 예일대의 전통에 따라 개혁 신학과 청교도 신학에도 정통하게 되었습니다. 

에드워즈의 회심은 그가 대학 졸업 후 신학 석사를 공부하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그가 회심하게 된 성경 구절은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는 디모데전서 1장 1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길 내가 이 말씀을 읽을 때 마치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녹아서 퍼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더욱 거룩해지기를 열정적으로 갈망하였고 그리하여 심령이 가득 차 터질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든지 거의 계속적으로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기도했으며 “나는 매사에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상을 닮기를 원하는 불타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1726년 노샘프턴 교회에서는 연로한 솔로몬 스타다드의 뒤를 잇게 하기 위해 그의 외손자인 에드워즈를 부목사로 청빙했습니다. 그는 이 청빙을 받아 들였고, 24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그해 예일대학의 설립자 중 한 분이며 뉴헤이븐의 목사인 제임스 피에르폰트의 딸인 사라 피에르폰트와 결혼하여 11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는 26세에 외할아버지의 소천으로 노샘프턴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고 그곳에서 24년간 목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에드워즈의 목회 기간 동안 노샘프턴과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두 번째 대각성의 특징은 조지 휫필드와 사역했다는 점이었는데, 1740년에 보스톤의 여러 목사들이 휫필드를 뉴잉글랜드로 초청하였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것이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결과가 되었고 에드워즈는 조지 휫필드와 함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1744년 에드워즈는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회심에 대한 신학적 견해와 일련의 부흥 사건을 통한 경험에 기초해서 당시 노샘프턴교회를 비롯하여 뉴잉글랜드 지방에 유행하고 있던 성찬식 관행을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즉 회심이 분명치 않은 사람도 성찬식에 참여시켰던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타다드의 정책에 맞서, 앞으로는 회심이 분명하게 인정되는 사람만 정식 교인으로 받을 것이며, 이러한 사람들만 성찬식에 참여시키겠다고 교회에 공포한 것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이 문제에 있어서 에드워즈와 교인들과의 견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교인들과 갈등을 겪게 된 에드워즈는 결국 47세로 노샘프턴교회를 사임하게 됩니다. 

그 후 1751년 그의 나이48세 에 에드워즈는 메사추세츠의 변방 지역인 스톡브리지에 있는 소수의 백인들과 인디언으로 구성된 교회의 선교사로서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됩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불과 7년에 걸쳐 가장 위대한 네 권의 신학적, 철학적 집필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758년, 에드워즈는 오늘날 프린스턴 대학의 전신인 ‘뉴저지대학’의 학장으로 초빙을 받아 1월에 부임했는데 3월에 천연두 예방 접종 부작용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들은 그가 살았던 생애를 말해 주고 있는데요. 그는 임종을 지켜보는 딸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고 두려워말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짧은 생애를 불꽃같이 살았던 조나단 에드워즈,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자주 노인들에게 가서 다시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질문은 파워풀한 코칭식 질문이었고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 많은 노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한 결과였습니다.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많은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영적인 코치로서 탁월하게 그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평생 동안 해 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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