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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하늘향한책읽기] 마이클 리브스 ‘칭의를 누리다’

하늘향한책읽기_마이클 리브스, [칭의를 누리다], 두란노, 2023.

이 책은 길지 않다. 딱 한 주제만 골랐다. 바로 칭의다. 칭의가 왜 문제가 되는가? 우리의 본성과 정서에 마뜩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를 질문한다. 왜 그런가?

사람들은 보통 사랑을 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내고 그것의 보상으로 부터 사랑을 받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우리를 좋아해주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더 사랑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여러 조건들을 갖추려고 한다. 그렇게 할 때 에야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의롭다고 해 주시니 감개무량하면서도 왠지 속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반대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사랑스럽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저자도 칭의에 대한 이해와 그 사랑을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가 쉽지 않다고 여겨서인지 예화들을 책속에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예화로 설명하여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설득이 되지 않는 칭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서 2가지의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마틴 루터 이야기와 여왕이 된 창녀의 이야기다. 

칭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마틴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를 말한다. 이신칭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하는데 이는 마틴 루터의 고민에서 출발한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자신의 최선을 드리고 싶어했던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간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그래서 의롭게 되거나 천국에 합당할 만큼 충분히 선했는가? 만일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기도와 금식과 고행스러운 수도원이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루터는 수도사 생활을 좋아했다. 루터가 자신을 온전하고 의롭게 하기 위해 최근 지은 죄의 목록을 6시간이 넘도록 고해성사를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여섯 시간이나 꼬박 그 고해성사를 들어주던 고해사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도원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루터는 영혼의 깊은 만족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미워하고 왜곡된 생각이 자꾸 치밀어 올랐다. 완벽을 요구하지만 해주는 것도 없이 처벌하기만 하는 폭군이 바로 하나님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루터는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 없는 자신의 내적인 상태가 더 문제임을 자각하였을 때 더욱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해방시킨 구절이 바로 로마서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먼저 그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루터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과 용납하심을 쟁취하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에 이르려고 아등바등 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이지 의로운 상태로 서서히 변화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생각으로 ‘어떻게 경건하지 않은 데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창녀인 한 여인의 이야기다. 한 여인은 왕과 결혼하게 된다. 왕은 그 여인에게 구혼하였고 그 여인은 “내 전부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한다. 이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제 왕이 이 여인의 모든 빚과 수치와 혼돈 마저도 함께 짊어짐을 뜻한다.  

왕은 “내 전부를 당신에게 주겠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과 나누겠소.”라고 하는 것은 왕이 가진 모든 부와 나라는 그 여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혼인교환’이라고 부른다. 즉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과 심판을 취하여 십자가에서 감당하셨고 자신의 모든 의로움과 복됨과 아버지 앞에 사랑받는 지위를 교환하여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이 때에 우리는 ‘나는 그럴 만한 충분한 믿음과 자격을 가졌는가?’를 묻게 된다. 저자는 그러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의로운지를 확인하려고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로움은 마치 우리의 의복처럼 우리 ‘밖’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혼인서약을 함으로 창녀의 신분은 여왕으로 변화된다. 그리고 여왕으로 선언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바뀐 신분은 내적인 변화에 좌우되거나 여왕답게 처신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왜 했느냐?’는 것이다. 그 여인은 왕과 함께 살기 위해 결혼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칭의를 누리기 위해서 결혼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천국이나 의로움이나 생명이나 또 다른 복을 얻어보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고자 함이다. 왕과 함께 사는 자가 여왕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가 칭의를 누리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칭의를 통해 예수님을 누리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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