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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베소서 1: 3-6)_토론토 열린교회 김덕원 목사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베소서 1: 3-6)

토론토 열린교회 김덕원 목사

제가 토론토에 이주한 2012년 12월에 80세가 된 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몇 년 전에 이미 권사님을 먼저 보내시고, 차도 처분하고, 이제 혼자 시니어 아파트에 들어간 분이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점심을 같이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역할을 해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써 올해로 10년째가 되어서, 어느덧 장로님도 90객이 다 되었습니다. 

이젠 치매증상도 있고, 걷기도 힘들어 하는 모습이 현저하게 보이는데, 세월이 참 야속하기만 합니다. 1-2년 전만 해도 같이 식사하고, 차 한잔하고 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잘 해어지셨는데, 이제는 “저녁까지 하고 가면 안 되겠냐?”고 어린양을 부리십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또 왜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동안 세상에 홀로 두시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씀을 곁들이십니다. 

한참 젊고, 잘 나갈 때는 주어진 시간과 삶의 현장인 공간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무료한 시간과 제한된 공간이 오히려 장로님의 인생을 괴롭힌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철학에서는 인생의 가장 기초단위를 시간과 공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마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3차원의 세계라고 표현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통 4차원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4차원의 세계는 우리 세상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모든 학문에서도 그렇겠지만, 우리 신앙에서도 우리가 사는 기본 단위로서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면, 삶의 의미나 목표를 더 분명히 할 수 있고, 또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자꾸 수치로만 표현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24시간, 7일, 365일, 그리고 몇 피트냐? 몇 평이냐? 이런 개념입니다. 반면에 동양사관에서는 특히 불교가 대표적인데, 그 개념을 너무 모호하게 설명을 하면서, 시간은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라고 예기합니다. 그러면서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또 공간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해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언뜻 보면, 수준 높은 말 같아도, 사실적으로 보면 괴변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궁금했는데, 에베소서 1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4절 서두에 보니까, “창세 전에…” 이렇게 말씀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하면서부터 시간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창세 전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시간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영원의 세계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때에는 아마도 하나님과 천사들이 영원의 세계를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시황제 같은 경우에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불로초를 그렇게 찾아 다녔다지만, 사실 영원 세계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수종 들던 천사가 그만 타락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영원 세계에서 타락을 하는 바람에, 한번의 불순종이었지만, 영원토록 헤어날 수 없는 영원한 저주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단 한 번의 불순종이었지만, 영원계에서 타락을 하니까, 영원한 타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음을 받았지만, 단 한 번 실수로, “그냥, 영원히 지옥행”이라는 선언을 받았다면, 참 처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 3절에 보면, 우리 사람들에게는 타락한 천사와는 달리 “복”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복이 아니라, 꾸며 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수식어가 네 개씩이나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복이 아니라, 굉장히 의미도 있고, 큰 복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복이 무엇인가 했더니, 4절에 계속 보니까,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하다 보니까, 어쩌다가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태어나는 일을 겨냥해서 창조와 구원 사역이, 이 시간 속에서 시작 되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8장19절에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간 안에 두신 것은, 한번 타락이 영원토록 가지 않도록,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이 땅에서 잘못된 우리의 선택을, 이 땅의 시간 속에서 해결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 아담이 잃어버렸던 첫번째 기회를 회복할 수 있는 the 2nd chance,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놀라운 일이 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복으로 주시려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되는 것을 연습하고, 또 실현되는 일을 채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인데, 그것이 시간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번째 기회가 어떻게 주어지는지, 3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4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5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반복하면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의 기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을 이해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신앙의 선후배 성도들은 이미 두번째 기회를 잘 선용하여, 구원의 기회로 잡았으니까, 그 큰 신령한 복을 이미 받으신 줄 믿습니다. 사실 이것만 잡아도, 우리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을 이룬 것이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사건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주어진 시간의 그 큰 목적을 이미 이루어 버린 우리를, 여전히 이 시간 속에 두시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니까, 그 놀라운 두번째 기회를 통해서 얻게 된, 그 구원의 은혜를, 찬미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얻었던 그 기회를, 이제는 모든 사람들도 얻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와 구원을 선전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또 다른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기회입니다. 첫번째로는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 다시말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다른 사람들도 역시 구원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구원의 통로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왕년에 신앙”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한참 열심히 할 때는…, 내가 한참 성령의 감동이 되었을 때는…, 내가 왕년에 크게 사역 할 때는…, 내가 잘 나갈 때는…” 하면서, 자꾸 지나간 세월만을 묵상하면서, 지금 주어진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년에 주셨던 그 시간에 사명을 잘 감당했다면, 그것으로 그 시간에 맞는 인생을 잘 사신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어진 또 하루의 시간은, 그 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회로 주신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줄 믿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이제 늙었으니까, 이제는 은퇴를 했으니까, 이제는 돈이 없으니까, 차가 없으니까, 건강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까…” 자꾸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지금 내게 주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환경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또 하루의 시간을 나에게 주셨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유효한 사명인 줄 믿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하루의 기회를 잘 선용할 수 있는 사람, 그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내일 또 하루의 시간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에게 오늘도 여전히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의미있는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 위치에서, 또 목양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위치에서, 은퇴를 한 사람이라면 또 그 위치에서 그 시간을 잘 선용하여서, 주신 기회를 꼭 붙들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또 하루의 귀한 시간을 주셨는데, 그저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가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하루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쓰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마다 힘과 용기를 얻게 되고, 흥황 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그런 시간의 중심에서 여러분 모두가 멋지게 헌신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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