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의 의미(마가복음 5장 35 – 36절)
캐나다 한길교회 김형민 목사
[말씀을 시작하며…]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삶 안에서 만나는 절박함 속에 갖는 믿음의 의미”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오늘 말씀인 마가복음 5장 21절 – 43절을 “절박함과 믿음” 이라는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마가는 이 말씀에서 두가지 사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입니다.” 마가는 이 두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성하고 있음에 주의하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주목해 봅시다.
마가복음 5장 22절을 보면,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이 상황을 당시 사회로 돌아가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 지체 높은 고위 관리가 갈릴리의 목수 앞에 엎드려 있는 장면입니다. 얼마나 절박한 문제가 있었는지 성경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23절)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자, 이제 우리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딸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고 매우 절박한 상황이어서 아버지가 달려와 주님께 엎드려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는 예수님이 오셔서 기도를 하면 치료받을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이제 시점을 군중으로 돌려봅니다. 늘 많은 무리를 이끌고 다니시는 주님에게 높은 지위의 사람이 와서 엎드려 간청하는 사건이니 얼마나 흥미롭겠습니까? 성경은 표현하기를
마가복음 5장 24절)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엄청난 사람이 몰려들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자 성도 여러분 다음 장면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갑자기 등장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마가가 정말 그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5-26절 그녀 개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매우 특별한 일) 한 번 더 생각하면 지금 예수님은 죽음의 문턱 앞에 있는 절대 절명의 소녀를 구하러 가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여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가 원한 데로 잘 치료를 받고 갔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마가는 다른 행보를 보이시는 주님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주님께서 가시던 걸음을 멈추고 한 여인을 군중들 앞에 불러 세웁니다.
마가복음 5장 33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이 상황을 정말 깊게 보셔야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떻게 마가는 여인에 대해서 잘 알았을까요? (25-26절) 마가가 그 여인을 뒷 조사해서 그녀를 안 것이 아니라 치료받은 여인이 예수 앞에 무리들 앞에 불려 나왔고 자신을 소개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 질문 : 왜 예수님은 이 절박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여인을 많은 사람들 앞에 불러 세웠을 까요?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 보고,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2) 제자들과 무리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 소녀가 사경을 헤매는데 예수님이 너무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아닌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왜? 상식적으로 볼 때, 소녀를 구하러 가는 것이 더 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회를 생각하면, 높은 지위의 사람의 딸인 만큼 모두의 시선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다가 소녀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3) 그럼 야이로는 어떨까요…, 얼마나 속이 타 들어가겠습니까!! – 장기간 아팠던 여인에게 관심을 기울 이시는데, 치료 중이 아니시고, 이미 차료받은 여인을 붙잡고 게다가 대화까지 나누신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야이로라면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보고 있는 제자들도 속이 새 까맣게 타 들어 가지 않을까요..
* 그러나 주님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마가복음 5장 35절)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장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장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무슨 상황입니까!! 아직 예수님의 대화가 끝나지 않은 상황, 시간이 지체되어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마치 책임이 예수님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성도 여러분 우리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아비가 얼마나 예수님이 원망스러울까요 성도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 자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말씀을 좀 더 깊게 들어 가야합니다.
마가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 말씀의 의미: “나를 믿고 기다려라” ”그래도 나를 믿을 수 있겠는가?” 성도 여러분, 내가 이 입장이라면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야이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믿음의 한계를 만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딸의 죽음은 그의 믿음의 한계였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깁니다.
*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야이로에게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말씀입니다.
II. 급박하고 절박한 상황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은 절박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야이로와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 주님께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이 절박한 문제인가?”
– 우리가 상황을 보면서 절박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사건을 보는 관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절박함과 시간 없음은 너의 입장이지 나는 아니다” 입니다.
** 여기서 예수님은 놀라운 믿음의 원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믿음은 내 시간표를 주님의 시간에 맞추는 것입니다.” 즉, 나의 절박한 상황과 급박한 처지는 내 생각일 뿐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너의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내 시간과 상황에 하나님을 맞추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는 것입니다.
2) “최악의 상황이든 최상의 상황이든 주님께서는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상황을 다르게 보는 것은 우리의 관점이지, 주님께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1장 6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 주님께서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틀을 더 지체하여 결국 나사로가 죽게 됩니다. 후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리아는 나사로가 죽자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는 3일이라는 우리의 한계 시간을 넘어서 다시 살아났음을… 절박함과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암시할 뿐 주님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 믿음의 한계를 주님의 한계로 여기는 믿음의 모순을 갖고 있습니다.”
**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갑니다. 왜 하나님과 우리의 시간이 다를까요? 주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요?
III. 주님께서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1. 주님은 우리들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첫번째 주제입니다.
예)) 오랫동안 병든 여인의 이야기: 그녀는 부정한 여인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혈루증은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부정한 병으로 사람 곁으로 나올 수 없는 자) 그런 여인이 믿음을 갖고 주님 앞으로 온 것은 아주 큰 결심입니다 🡪 다행히 그녀 바람대로 치유되어 조용히 그녀는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주님이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 주께서 그녀를 사람들과 예수님 앞으로 불러내십니다: 그녀가 부정한 여인이 아님을 만 천하에 알립니다. 이제 그녀는 숨어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를 치유한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너는 너의 인생을 기쁘게 살아가라. 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사 너의 삶을 열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바로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마라. 왜? 너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 제자들과 무리 눈에는 지체하는 시간으로 보이지만, 주님은 지금 한 생명을 고치시고 그녀의 인생을 살리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그녀를 보내서는 안 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 떠나는 그녀를 급히 세우시는 주님, 죽어가는 자는 살리면 되지만, 지금 이 여인은 바로 여기서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인의 병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구한 것입니다.
* 성도 여러분 질문) “누가 더 급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시간을 두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지금 내가 너와 함께 가고 있다”를 믿는 것이다. – 오늘 말씀의 두번째 주제
마가복음 5장 37-38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예)) 죽어서 희망이 없는 소녀와 아버지: 죽음은 인간적 의지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관점이지 주님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믿고 함께 삶을 나아 가겠느냐입니다.
주님의 늦음은 지체(우리의 관점)가 아니고 아직 때가 아니며, 너 생각을 버리고 나와 함께 하겠느냐..? 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제 너의 인생을 구하러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더 원어적 표현 “얘야 일어나야지..”
– 무슨 말인가? 주님께는 이것이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의 핵심은, 주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치유 뿐만 아니라 인생을 선물하시는 것 입니다.
– 하나님의 침묵은 외면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과 삶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큰 은혜와 섭리를 준비하시는 시간인 것입니다.” 내 상황과 처지가 아무리 절박하고,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시간의 급박함이 있을 때, 우리 삶에서 주님의 침묵을 만나고, 인생의 멈춤을 경험하더라도 “나의 한계가 하나님의 한계가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를 인생의 때에 맞게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는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주님의 뜻을 믿으며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