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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 1:1-2절)_밴쿠버제일장로교회 배세원 목사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 1:1-2절)

밴쿠버제일장로교회 배세원 목사

우리가 오늘 설교 후 찬양할 곡이, “아무것도 두려워말라”입니다. 목장 모임에서 찬양할 때 신청곡을 받으면, 가장 많이 신청하는 곡이, 이 곡입니다. 그래서 이 찬양의 작사자가 어떤 배경에서 이 곡을 만들었는지 찾아봤습니다. 

현석주라는 청년이, 1992년도, 군대가기 전에 마음이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마음으로 30분만에 만든 곡이, 이 곡이라고 합니다. 군대가기 전 두려워서 만든 곡입니다.

사실 저는 이 곡을 제가 고등학생때 많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지는 곡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이 부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최근에 다시 많이 불려지는 곡이 되었습니다.  

2022년 3월 국민일보 기사를 보니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말라’는 이 곡이 유투브 2000만 조회수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 말은, 최근 3-4년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최근들어 사람들이, 이 곡을 그렇게 많이 부르는 것일까요?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우리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목숨을 잃지는 않을까?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을 떠나시지는 않았을까? 코로나로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가족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증상이 없어도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르니, 일단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었고, 그것은 곧 대인관계의 두려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페데믹이 끝나자, 대부분의 가정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말하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말 못할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가는 얼마나 높은지, 마트에게 가서 몇 개만 구매해도 100불은 쉽게 넘깁니다.  

금리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서, 앞으로 모기지를 갱신하는 사람들은, ‘금리쇼크’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생깁니까? 두려움이 생깁니다. “내가 이렇게해서 밴쿠버에 살 수 있겠는가? 내가 이렇게 해서 나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재정적인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 잡은 것입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이 두려움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끼자, 신앙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는, 이 찬양을 부르며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공포와 두려움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두려움을 느끼기에 해결방법을 찾는 삶의 적극성을 보이고, 또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더 나아가서 기도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두려움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두려움이 낙심이 되고, 낙심이 포기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두려움이 주는 무서움입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의 본질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무엇에 대해 두려워합니까? 

많은 학자들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고 합니다. 

“군대가는 것,” 왜 두렵습니까? 한번도 안 가봤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청년들 중에,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은, 군대에 다시 가라면, 가기는 싫지만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군대는 갈만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얻는 유익도 참으로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도 안 가본 사람들은, 통제된 군대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무서운 겁니다.  

우리가 팬데믹때 왜 두려웠습니까? 지금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손에 잡히지 않으니 두려웠던 겁니다. 

학생들과 청년들 왜 두렵습니까? 알 수 없는 여러분의 미래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이 대학을 가지 못하면 나의 인생이 실패할까봐, 이 시험을 패스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할까봐, 어학연수라고 왔는데 짧은시간에, 영어실력을 키우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가서 부끄러울까봐, 

일어나지 않았지만, 알수없는 그 미지의 세계 때문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가봤지만 다시 돌아와서 죽음이후의 세상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없으니, 아무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죽음이후의 세상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우리와 같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한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가나안이라는 땅에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그는 아주 두려운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첫번째로, “모세가 죽었다는 겁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자기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 광야 40년을 함께 한 사람입니다. 1년동안 같이 고생해도 형제가 되고,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되기도하는데, 여호수아는 모세와 그 힘든 광야에서의 생활을 40년이나 함께 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아버지이자, 멘토이자, 스승이자, 친구이자, 전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에게는 모세가 없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두고 상의할 사람이 없고, 신앙의 문제를 두고 함께 기도할 멘토가 없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홀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두려웠습니다. 

두번째 여호수아의 두려움은, 가나안 땅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호수아는 한번 가나안 땅에 가 본 경험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 참으로 좋은 땅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 땅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잔인한지, 그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가나안 민족과 싸우면서 어떤 일을 겪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세번째 여호수아의 두려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리더였습니다. 리더와 부리더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얼마전에 만난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친구가 해 준 이야기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부목사로 살면서 천국을 경험했고, 담임목사로 살면서 지옥을 경험했다.” – 무슨 말입니까? 리더와 부리더는 하늘과 땅차이라는 겁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부리더가 아닙니다. 리더입니다.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직분입니다. 그렇다고 따르는 백성들이 충성스럽고 훌륭한 인격인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모든 것을 책임지는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는 두려웠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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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무것도 두려워말라. 강하라. 담대하라.” 말씀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첫번째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는 “여호와”라는 단어는 입니다. 여호와가 뭡니까?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라’ 말씀합니다. 당시 모세는 이미 패배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는 리더가 됩니까? 제가 뭐라고 바로왕 앞에서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보내라’ 말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합니다.”하면서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내가 도와주겠다. 그리고 말 잘하는 너의 형도 같이 가게 해 주겠다.” 그러시면서 모세를 다시 설득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그럼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를 보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와라고 해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뜻이다.”

여러분,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가 뭡니까? 하나님을 만든 또 다른 신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며,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영원하신 절대자라는 의미입니다. “절대자”를 국어사전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면서 그 자신만으로 완전한 신”

따라서 “여호와는 영원전부터 계셨고 앞으로도 영원하신 절대자”이십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코스트코 직원에게 우리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우편배달하시는 분에게 당신의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가 되면 서로 이름을 주고 받습니다. 교회에 등록했을 때, 우리는 이름과 정보를 서로 주고 받습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이름을 주고 받습니다. 친구가 되면 서로의 이름을 주고 받으며 특별한 관계임을 확인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라는 뜻이고, 그 특별한 관계에 있기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살려주세요.”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달려가서 구원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영원하신 절대자”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와 특별한 관계 속에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늘 준비된 분”이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 살려주세요.”하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면, “여호와”를 정확히 이해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요?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속에서 여호와의 돌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영원한 절대자이시며, 우리가 부르짖을 때, 즉각적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여러분, 강해지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담대하신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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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여호수아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아무 생각도 없이, 갑자기 모세자 죽자, “여호수아야, 리더 할 사람도 없는데 너가 가서 리더해라” 그러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7장 8-10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이라는 민족과 싸워야 했는데, 모세는 기도하러 산에 가고, 여호수아가 장군이 되어 앞장서서 싸우게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순종합니다. 10절에서는 여호수아의 순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여호수아는 젊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장의 경험도 많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순종하는 법을 훈련했습니다. 

 13절에 보니까,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을 무찌르니라”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칼날은 주로 “입”이라는 말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즉 여호수아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했고, 결국에는 승리했다는 겁니다. 

뭡니까? 여호수아는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술을 사용하셔서, 어떻게 승리하는지 보여주셨고, 그렇게 여호수아는 승리의 비결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갔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순종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이후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울 정도로 들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호수아에게 몸쓰는 일만 가르치지 말고, 말씀훈련도 시키라는 겁니다. 어느정도로요?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도록,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말씀훈련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이어서 출애굽기 33장 11절에 보면, 모세는, 사람이 자기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대화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세가 자신의 오른팔인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그 회막을 가득덮고 하나님과 모세는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모세의 기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마치고 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퇴근을 안하는 겁니다. 물론 뒷정리를 해야했을 겁니다. 그런데 또 뭐했을까요?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더 머물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저도 모세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기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것도 많이 있지만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여호수아하면,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코 앞이,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치기 전에 먼저 그 땅을 정탐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한명씩 뽑아 12명의 사람을 정탐하러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40일동안 정탐하고 와서는 하는 말이, “가나안 땅은 진짜 좋더라. 그런데 아무리 좋은 땅이면 뭔하냐, 우리는 다 죽었다”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하니,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족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해서 밟혀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싸움꾼들이고 용사인데, 우리는 얼마전까지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니, 전쟁하면 무조건 죽는다”는 겁니다. 

그런 보고를 12명중에 10명이 하고 있을 때, 그 중에 2명,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아니다. 우리가 정탐하러 간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확인하러 간 거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다. 그러면 주신다. 그러니 저 가나안인들은 우리의 밥이다. 식은 죽먹기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보고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호수아는 보이는 세상을 보이는대로 믿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잘 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호수아가 걸어온 길입니다. 그 모든 과거의 삶이 여호수아에게는 훈련이었고, 하나님께 쓰임받도록 준비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고, 리더로 쓰시기 위해 잘 준비시키신 줄 믿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행하는 임무수행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두려워말라.”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밴쿠버의 삶이 낭비인 것 같고, 실패인 것 같고, 잘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훈련하는 과정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여러분, 교회에서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을 잘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만나는 사장님과 사람들을 통해 삶의 훈련을 잘 받으십시오. 무엇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세계관훈련도 있다는 것을 있지 마십시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염려치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여호수아처럼 존귀하게 들어 사용할 줄 믿고, 믿음으로 세상에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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