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씨 뿌리는 비유(마가복음 4:1-20절)_토론토 순복음방주교회 양경모 목사

[설교단상] 씨 뿌리는 비유(마가복음 4:1-20절)_토론토 순복음방주교회 양경모 목사

씨 뿌리는 비유(마가복음 4:1-20절)

토론토 순복음방주교회 양경모 목사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치료해주시고 귀신을 쫓아내 주시는 기적을 베푸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배안에서 말씀을 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1-2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이것이 우리의 생명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몇주전 우리는 부활절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신앙의 중심이며, 기본 틀이며 승리의 아이콘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신앙이요,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며, 앞으로도 계속 부활의 신앙은 계속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아이콘이 진화라면,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승리의 아이콘은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었다면 부활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생명의 빛이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빛이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오늘 말씀인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인 것입니다. 먼저 3-9절까지 말씀을 보면 씨를 뿌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문제는 씨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가 떨어진 밭의 종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씨는 생명입니다. 씨는 밭에 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씨는 밭에 뿌리면 반드시 싹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우리의 심령에 뿌려지면 반드시 싹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요한 복음 12:24-26절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과 같이 씨는 밭에 뿌려져야 씨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씨가 어떤 밭에 뿌려지는가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 밭의 종류가 4가지의 밭의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길 가에 있는 밭입니다. 길 가 밭이란 씨가 뿌려져서는 안 되는 밭입니다. 아스팔트와 같은 곳입니다.  땅이 너무 단단해진 곳, 씨가 들어갈 수 없는 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길 가 밭입니다. 길 가 밭에 뿌려진 씨는 두껍고 단단한 땅을 뚫고 땅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결국은 땅 속으로 들어가기전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다가 새들에게 쪼아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는 흙이 얕은 돌밭입니다. 밭은 밭이지만 흙이 거의 없습니다. 흙보다는 돌이 더 많이 있는 황무지와 같은 곳입니다. 조금있는 흙을 지탱하여 씨가 뿌려지지만 흙이 얕은 영고로 인해 곧 쌍이 나지만 뿌리가 생기기도 전에 햇빛으로 인해 말라죽고 만 것입니다. 

셋째는 가시 덩굴 밭입니다. 이 밭은 흙은 좋습니다. 기름집니다. 그런데 그 위에 가시덤불이 왕성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씨가 뿌려져서 자랄려고 하는데 자랄 길이 없습니다. 자라려고 하는데 가시 덤불의 너무 많아 햇살을 가려 햇살을 비출 공간이 없어 자라지도 못할 뿐 아니라 열매도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 밭은 옥토입니다. 이 밭은 길 가의 밭도 아닙니다. 돌 밭도 아닙니다. 가시덤불 밭도 아닙니다. 옥토는 씨를 받아들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조건이 좋은 땅에 씨를 뿌리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 네개의 밭의 비유를 말씀하셨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말씀이 9절부터 13절까지 말씀인 것입니다.  씨앗의 비밀은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씨앗의 비밀인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유를 들어 말을 하고, 이해를 시키려고 한다 할지라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라고 다 듣고 깨닫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니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알아 들을 방법을 모르니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까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진리를 옆에두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신경질을 내고, 화내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사는 것입니다. 왜요?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까, 진리가 옆에 있는데도 옆에 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를 깨달아 보세요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누리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에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열 두 제자들이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제자들이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14-20절의 말씀입니다. 14-20절의 말씀으 보면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을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과 이론, 지식을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을 뿌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심령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말씀이 뿌려졌지만 사탄이 와서 생명의 말씀인 씨앗을 쪼아서 먹어버린 것입니다. 

결론은 그 사람에게서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믿음의 생각을 할 줄도 모르고, 믿음의 능력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죠… 이런 사람은 자기 감정, 자기 생각, 자기 환경, 자기 경험에 의해서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이니까, 장래를 생각해서 일은 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없어요. 무계획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보시기 바랍니다. 16절-17절의 말씀의 돌밭에 뿌려졌다는 비유를 보면 이 사람은 말씀을 받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은혜가 되어 춤을 추고 박수를 치고 아주 큰 은혜를 체험한 것 같이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은혜 속에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는 순간 감정이 이입되어서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씀 때문에, 뿌리가 내리기 전에 고난이 오고, 시험이 오고, 환난이 닥치면, 쉽게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뿌리가 있어야 버티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거센 바람과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과 믿음의 뿌리가 없으면 환난과 핍박, 고난이 오면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왜 우리들의 믿음이 그렇게 좋았다가 한 순간에 쓰러지고 오래 지탱하지 못하나요? 말씀의 뿌리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고난의 바람이 불고, 신앙적 박해가 오면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온실 속의 화초는 밖에 놓아두면 밖의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왜요? 온실 속에서만 화려했고, 온실 속에서만 건강하게 보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온실 속의 화초가 밖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뿌리를 단단히 땅에 박고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말씀이 가시 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고 했습니다. 18-19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말씀을 듣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걱정 돈의 유혹, 그 밖의 다른 욕심과 탐욕이 들어옴으로 인해 말씀의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씨도 있고 흙도 있는데, 그 위에 가시 덤불이 너무 심하게 덮여 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온통 세상 생각, 인간적인 생각, 이성과 경험, 자신의 자아가 너무 강해서 말씀이 심어 졌음에도 그것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씨앗이 싹을 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말씀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햇빛을 봐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햇빛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씨앗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세상의 걱정, 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력의 유혹, 이것을 가리켜 탐욕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자신의 인생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결실을 맺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욕을 합니다. 생각이 부정적입니다. 긍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의심도 많습니다. 괜히 사람을 의심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속이지는 않을까? 누구를 믿느냐, 라는 것입니다. 진리를중요시하기 보다는 자기 감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 가운데서 성장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언어입니다. 입으로 다 까먹어 버립니다. 

은혜도 까먹어 버립니다. 믿음을 다 까먹어 버립니다. 부정적인 생강을 하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다 깍아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이 나쁜 곳에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옥토에 떨어지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씨앗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 문제가 아닙니다. 

씨앗을 받는 땅의 종류가 문제입니다. 말씀을 받는 심령이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좋은 옥토의 마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겨울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봄이 오니까 많은 열매가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똑같은 현실인데 고개를 들어보면 열매가 주렁 주렁 맺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 여러분들의 믿음이 열매가 주렁 주렁 맺혀 있는 믿음의 결실을 보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믿음이 단단해져 있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생기고, 삶의 현장에서 열매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 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고난과 역경이 많았는데, 상황은 같지만 무엇인가 일이 풀릴것만 같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희망과 소망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옥토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과 희망 뒤에 삼십 배, 육십 배, 뱁 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결실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신앙의 세 가지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신앙은 말씀을 말씀대로 의지하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의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 1:6-8절의 말씀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거짓이 없이 다 이루어 진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앙은 반드시 그 과정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때로는 길 가의 마음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때로는 돌 밭의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때로는 가시 떨기의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그리고 이런 과정을 겪고 옥토가 되었을 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앙의 열매는 곱배기 장사가 아닙니다. 최소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장사는 곱배기를 받기 위하여 장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한 번 뒤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애쓰지 않는데 잘됩니다. 사업이 잘 됩니다. 자녀가 잘 됩니다. 

요한 복음 15:1-10절의 말씀을 보면 포도나무의 가지가 열심을 다해서 노력함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닙니다. 

단 한가지를 잘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줄기에 잘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기에 잘 붙어서 줄기의 영양분을 열심이 섭취했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옥토의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의 밭을 갈아 엎는 시간이 되어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두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