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ind Trust_민수기 32:20~27
밴쿠버 복음자리교회 조대호 목사
우리의 신앙성장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한 가나안 땅은 ‘중간에 흐르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요단 서쪽 지역’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거의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 동쪽에 이르렀을 때, 므낫세, 갓, 르우벤 지파가 그 땅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2:4)”이 땅이 가축을 기르기에 적합한 곳”이어서 모세에게 “우린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사실 더 적극적인 표현으로는 (5)“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그들의 감춰진 속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더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싸움터에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도 좋지만 ‘더이상 힘들게 신앙생활 하고 싶지 않고, 여기서 이렇게 가축을 키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들만 가축을 키웠을까요?. 12지파 모두가 가축을 기르는데 그중에 3개의 지파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요즘으로치면 교회 안에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까지 하면서 교회를 다녀야 할까’싶은 마음의 상처와 번아웃 때문에, ‘하나님의 뜻’도 좋지만 그냥 여기서 내 꿈을 키우며 살고 싶어 하는 흔들림도 찾아옵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한테 그런 얘길 했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성도가 교회가 맘에 않들어 불평 하면, 그냥 ‘다른데로 가시라’고 말한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였다면 그것을 나누셨을텐데 아무 말이 없이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침묵에 ‘목사님이 얼마나 지치셨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남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겠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다시 돌이킬 수 있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고 책망합니다 “너무한거 아니냐”고, “너희들만 살려고 그러냐”고. 정말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가축이 많아서일까요? 이땅(요단동편)이 좋아서일까요? 아니면 ‘전쟁’이 싫고 두려워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곧 그것은 홍해 앞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에 대한 Blind Trust(맹목적인 신뢰)”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서 성장하며 도달해야 하는 ‘크리스찬 영성’의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Blind Trust(맹목적인 신뢰)”입니다. 우리의 영성이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은, 내 생각과 의심과 판단을 뛰어 넘는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두려움’이 찾아오고,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찾게 됩니다.
자 그런데, 한국어로 ‘맹목적인 신뢰’라고 하니, 마치 아무런 이성없이 ‘사이비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하나님 한분 만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99%의 신뢰가 아닌 ‘맹목적인 신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는 ‘맹목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합니다.
미국에는 국방부 소속에 두 개의 곡예비행팀이 있습니다. 1946년에 창설 된 해군소속의 ‘블루엔젤스’가 있고, 1953년에 창설 된 공군소속의 ‘썬더버드’가 있는데, 썬더버드는 매년 전체 멤버의 50%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위험한 곡예비행에서 팀웤이 무너질텐데, 그 위험을 0에 가깝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그들이 외치는 ‘구호’에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비행하기 직전에 함께 외치는 구호가 바로 ”Blind Trust(맹목적인 신뢰)”입니다. 끝없는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쌓아갑니다. 팀원들이 각자 자기 위치를 끝까지 지킬 것이라는 ‘Blind trust’로 비행에 나서야만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비행을 마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의 팀웤’입니다.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따라오거나 말거나”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신뢰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 지파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결국 세 지파는 ‘가나안 땅에 나머지 지파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함께 싸우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는 우리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신앙에도 성장과 변화가 나타납니다.
먼저 “유연성”(Flexibility that comes from trusting God’s plan)이 높아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가 생기면 신앙생활이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유연해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굳어져가는 겁니다.
가나안에 가지 않겠다고 했던 세 지파가 “이곳에 집을 짓고 성을 쌓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모세도 (24)”그렇게 하라”고 수락했습니다. 조금전까지의 긴장이 사라지고 서로 더욱 유연해집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생긴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 신뢰가 없어서입니다. 즉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만 보이고, 율법의 글자 그대로를 지키지 않으면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정확히 해석해서 적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용서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8:31~32)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자유함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을 뭐라고 하셨나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말씀(복음)에 거하는 것”이 “맹목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가 있을 때 나타나는 변화는 겉모습이 아닌 내면이 강화(Our inner being is strengthened) 됩니다. 두려워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던 사람들이 (27)”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 싸우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22)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을 그들이 ‘blind trust’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내가 머금고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가득해서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로부터 우리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집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식물이 무엇인줄 아시나요? 바로 자이언트 세콰이어(Giant Sequoia) 입니다. 이 나무가 다 자라면 대략 100m 정도가 되는데, 이렇게 거대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불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나무는 다 성장할 때까지 약 80번의 산불을 만나지만, 7일간 계속된 산불을 견뎠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불에 강합니다. 비결은 껍질에 있습니다. 나무의 껍질이 1m까지 자라는데, 이 껍질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그 이유는 껍질에 물을 머금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다큐 영상을 보시면 물을 머금은 껍질을 누르면 수분이 번지면서 살짝 들어갑니다. 겉을 물의 스펀지로 두르고 있으니 불을 견딜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엡3:16~17 현대어성경)바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넘쳐 흐르는 영광으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굳세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토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불의 시험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복음에 뿌리 내린 하나님을 향한 ‘맹목적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식물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뿌리가 상하게 될 때”라고 합니다. 아무리 토양에 양분과 수분이 많아도 뿌리가 상하게 되면 식물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신실한 제자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Blind trust’ 해야 합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