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으로 감사하기” 삼하 24:13-17
두드림교회 안대선 목사
[도입]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이다. 겨울이 일찍 오는 캐나다가 한국이나 미국보다 먼저 수확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더 빠르다. 오늘 추수감사절 감사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 추수감사 주일인데 본문의 말씀은 감사 주일과 별로 상관없는 말씀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징계를 내리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감사 주일, 감사에 관한 내용을 나누면서 기쁨도 두 배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심판과 징계에 대한 말씀은 조금은 불편하실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단순히 징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로 승화시키는 다윗의 성숙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어떤 사건과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늘 말씀은 앞선 본문(1-9절)에서 다윗이 나쁜 의도로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에 대한 내용에 이어,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유사시 필요하다면, 언제나 전쟁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던 것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한 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후회했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삼하 24:10절 읽자.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를 조사하고 난 다음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래서 다윗이 주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갓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지시하셨다.
그 세 가지는 ① 칠년 흉년 ② 다윗을 죽이려는 원수에게 3개월 도망하는 것 ③ 사흘 동안 전염병이었다. 다윗은 삼일 동안 전염병을 선택한다. 그렇게 삼일 동안 죽은 사람이 7만 명이나 되었다.
이런 일에 다윗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그래서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바라보며 차라리 자신과 자신의 집을 징계하시기를 청원한다. 17절 읽자.
17 그 때에 다윗이 백성을 쳐죽이는 천사를 보고, 주님께 아뢰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읽지는 않았는 않았지만, 18절에서 25절을 보면,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그리고 재앙이 멈춘다.
다윗의 위대함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모습인 것이다.
잘못을 회개할 수 있는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전적인 복종과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님께 다 드리길 원하는 다윗의 마음이 제사를 통해서 느껴진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마치고 엄청난 군사력에 기세등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세가 등등했던 만큼 그 마음은 더 깊이 무너졌다. 왜냐하면 그 불순한 의도가 하나님 앞에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다윗의 무디어진 마음을 깨우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다. 똑같이 백성들도 그런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심판이 단지 징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길 원하는 마음도 있다.
다윗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징계 앞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을 바로 수정하겠다고 결단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더 나아가 회개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존심에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훌륭한 점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다윗은 철저하게 무릎을 꿇고 회개한다.
11절에 “다윗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라고 기록한 내용은 단순히 아침에 기상했다는 의미보다는 밤새워 회개 기도를 드렸거나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를 돌아보며 뉘우치며 정리하면서 밤을 새고, 아침을 맞이한 듯하다.
밤새워 회개 기도한 다윗이 아침에 맞은 것은 예언자 갓이었다. 갓은 하나님께서 주신 3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할지를 말해달라고 한다. 13절 하반절의 말씀 읽자.
이제 임금님께서는, 저를 임금님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는 말은 기도한 대로 신앙적인 결정을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모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다소 애매한 표현의 답을 하는데, “주님의 손에 벌을 받고,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 않다”라고 한다.
이 말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다 맡기는 다윗의 신앙을 볼 수 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이 피난처시오 피할 바위라는 사실을 다윗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고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못한다. 하나님만이 그 모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실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게 되었다. 계속해서 천사가 예루살렘을 치려고 할 때, 주님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고 천사에게 ‘그만하면 됬다 이제 너의 손을 거두라’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다면, 예루살렘도 심판을 당했을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아라우나 타작마당은 과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에 있었고,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이다.
결국 다윗은 다급한 마음으로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모습은 회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7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죽자, 심장이 녹는 다급한 심정으로 목숨을 건 회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다윗은 백성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왕이었지만, 오히려 멸망의 길, 죽음의 길로 이끌었으니 이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버리고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는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린다.
이 회개 기도는 기도로만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된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이 주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전제를 주님께 드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드린 제사에서 모든 재앙이 멈춘다. 그곳이 바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었다.
이곳은 바로 성전이 세워진 자리다. 그리고 그곳은 다윗이 제단을 쌓으려고 구입한 땅이었다. 재앙이 멈춘 곳은 타작마당 즉 성전이었다.
여러분 우리가 코로나 19를 어떻게 극복했나? 대면을 못할 때도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하였고 코로나도 우리의 예배를 막지 못했다.
우리는 그 팬데믹을 예배를 통해서 극복했다. 그 시기는 예배의 본질을 더 집중하게 만든 시기였다. 예배가 그렇게 귀한 것임을 깨닫는 시기였다.
그때는 예배가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고 온맘으로 집중해서 예배를 드렸다. 바로 그런 마음이다. 재앙의 한복판에서 주님께 온 마음을 드리는 예배가 우리를 회복시켰다.
사무엘하 23장에도 그 흔적이 나온다. 13절부터 보면, 세 사람의 장수가 나온다. 그들은 블레셋 군대의 진영을 뚫고 우물물을 가지고 왔다.
그때 다윗은 죽음을 무릅쓰고 물을 가져온 용사들을 끌어안았다. 피로 물들고 땀으로 범벅이 된 용사들의 몸을 어루만지며 감격에 목이 메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물이 아니라 용사들의 피다.
우리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주님께 예배할 때 우리의 죄를 위해 핏값을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 16절 읽자.
16 천사가 예루살렘 쪽으로 손을 뻗쳐서 그 도성을 치는 순간에, 주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신 것을 뉘우치시고, 백성을 사정없이 죽이는 천사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너의 손을 거두어라” 하고 명하셨다. 그 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물을 부어 전제로 드렸다. 전제는 포도주를 부어 기쁨과 감사를 표하는 제사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삶 모두를 드리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딤후 4:6 읽자.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주님께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단 한 번의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우리는 모든 것을 부어드리는 전제로 예배해야 한다.
그런 예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게 되고, 전제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에게 삶은 곧 복음을 위하여 모든 삶을 헌신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쩌면, 추수 감사 주일에 해당되는 말씀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 감사로 반응하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추수 감사 주일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까? 오곡백과와 많은 수확물로 주님께 드릴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귀한 드림은 자신을 전제로 드리는 것이다.
2026년 가을 여러분들은 수확의 기쁨보다는 결핍의 고통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에 나에게 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그저 초라해 보인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신다. 그곳에서 재앙을 멈추시고 심판을 멈추신다. 이것이 예배의 힘이다.
아마 모든 것이 갖춰지면 예배를 드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몸이 건강하고 다른 약속이 없고,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예물을 준비해야 하고 무언가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를 생각하면 그런 때는 영영 안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예배할 때는 바로 지금 나의 모습 그대로이다.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를 주님께 부어서 드려야 한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간이 아까워서 몸이 안 따라줘서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주님께 나온 사람들의 마음에 이 진정한 감사가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삼하 23:4 읽자.
구름이 끼지 않은 아침에 떠오르는 맑은 아침 햇살과 같다고 하시고, 비가 온 뒤에 땅에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빛과도 같다고 하셨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도 그곳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되길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다. 그곳에서 아침 햇살 같은 복을 주기 원하신다.
천사가 당신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김광열이라고 답하자. ”광열“ 살면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 음 너무 잘생겨서 많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답을 한다.
그러자 천사는 음 ‘잘난척’이라는 배지를 그 사람 가슴에 붙인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자 김영호라고 대답한다. ”영호“ 음 살면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 매일 모여서 사람들 욕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하자” “뒷담화”라고 배지를 붙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람들의 돈을 사기 쳐서 도망을 쳤다”라고 하자 그 가슴에 “사기꾼”이라고 배지를 붙인다.
그다음 이름이 뭐냐고 묻자 “예수”라고 답을 한다. ”예수“ 음 예수님 살면서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것이 무엇인가? 묻는다. 아무것도 없다고 답하신다.
음 그럼 가장 큰 것 말고 작은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다고 답하신다.
그리고 대답을 다 마치신 예수님이 돌아가면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신다. 영철 너의 배지를 나에게 줘라. 영미 너의 배지를 나에게 줘라.
사람들의 배지를 떼어서 자신의 가슴에 붙이신다. ”도적질“ ”사기꾼“ ”잘난척“ ”살인자“ 모든 배지를 떼어서 가슴에 붙이신다.
다윗처럼 우리는 징계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와 무거운 짐을 십자가를 통해서 대신 받으신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예배드려야 할 이유다.
삶의 감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황과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현실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하자. 우리 삶을 감사의 예배로 가득 채우자.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잘못과 짐을 대신 지셨다. 그분께 감사로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모든 고통이 멈추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받아 누리게 될 줄 믿는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복된 성도임을 잊지 말자.
삶의 모든 자리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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