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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구제를 은밀하게하라_토론토 승리교회 담임목사 고형식

구제를 은밀하게하라

토론토 승리교회 담임목사 고형식

지난주에 우리는 마태복음5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5,6,7장은 산상수훈 즉 예수님께서 산에서 하신 주옥 같은 말씀으로서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압축 요약한 말씀입니다. 왕관에 박힌 최상의 보석과 같이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공생애에서 맨 처음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오신 목적과 사명을 한 문장으로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나라인 메시야의 나라를 성령을 보내줌으로서 오순절날을 기해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라는 의미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리한여 3년 후에 올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신이 100% 죄인으로서 자신의 죄를 깊게 회개함으로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말씀 중 대부분은 온통 곧 올 자신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은 천국에 들어갈 천국복음을 전파하셨구요, 산상수훈에서 맨처음 하신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고 포문을 여시면서, 어떻게 하면 그 천국을 소유하게 될 수 있는 지를 8번에 걸쳐서 말씀신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고, 배부르고, 긍휼이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고, 하는 모든 말씀들은 다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천국의 복들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장차 그 나라에 들어 갈 천국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 내용으로서 오순절 성령이 오신 이후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 이 땅에 옴으로서 그 나라에 들어간 천국백성인 교회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특히 5장에서는 천국백성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들임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 의는 구체적으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5:20)고 말씀하십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형제를 보고 분노하거나 욕하기만 해도 살인자가 되는 것이며,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기만 해도 이미 간음한 자며,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간음한 자라는 것입니다. 또 악힌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고,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즉 복수하지 말며 원수를 갚지 말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의로로는 죽었다 깨나도 이렇게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여 천국에 들어 간 사람들 만이 할수 있는 일이지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바로 천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란 성령이 처음으로 임하여 천국백성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성령충만은 성령이 내 지정의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 성령이 내 지정의를 다스린다면 말씀대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의롭지 못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는 그들의 의를 능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때의 의는 내 안에 역사하여 그렇게 살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예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이는 성령을 따라 행한다면 성령이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되어 사람의 욕심대로 살지 않게 됨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들이 바로 천국백성인 교회인 것입니다.  모두 성령 충만하셔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천국백성들이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바로 6장 전반부를 할해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구제ㆍ기도ㆍ금식생활로 대표되는데,  오늘은 예수님이 천국백성들은 구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참된 신앙이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나타내 보이거나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행한 모든 행위는 참된 신앙이 아닌 거짓신앙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의식해서 헌금을 한다든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다든지,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찬양을 한다든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설교를 한다든지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사실 여기서 ‘우리의 의’가 나오지만 이 의는 엔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심히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방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습니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다. 그런데 하와에게 사탄이 유혹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하자 그래 이것을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라고 하면서 따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그동안 하나님의 영광으로 죄와 허물이 가려졌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자 죄에 대하여 밝아지게 되어 죄를 짓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어둡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되어 자신의 의를 가지고 선과 악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이 보기에 이것은 선한 것이고, 저것은 자신이 보기에 악이라고 판단하는데, 그 판단이 10명이면 10명이 다 다르다는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선과 악이 서로 일치를 하지 않으니 서로간의 갈등과 오해와 싸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힘이 있는 자가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야 라고 하면 약한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따라가게 되어 억지로 선악을 일치시켜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 인간의 세계입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다수의 사람들의 선을 따르는 것이고요, 공산주의는 총과 칼로 무력으로 당의 선한 것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선과 악을 구별하여 그 선을 추구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거나 하나님의 수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롭다 하드래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선이나 의는 다 악한 것인 것입니다. 인간의 악함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그들의 의를 가지고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선한다고 여기며 우상을 숭배하고 이웃의 것들을 도적질하고 빼앗으므로서 율법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러지 말라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일들이 옳다고 여기고 그 선지자들을 감옥에 넣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참다 못하여서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아예 지구상에서 그 나라 자체를 사라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 멸망시키실려고 주셨나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사람들인 자신의 의로는 하나님의 의로움인 율법을 지킬수 없기에 죄인임을 깨닫게 하실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3:21)

그리하여 사람들은 율법을 가짐으로서 율법대로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모세 시대 후 1500년 후에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가지고 지키려고 하지만 지킬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고 그 죄들을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의롭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이제는 인종과 나라와 언어와 종족과 관계없이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의를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사64: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음을 알고 더 이상 자신의 의를 의지하거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자랑하거나 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선이나 의가 하나님의 선이나 의에 훨씬 미치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구제라는 신앙의 행위를 한다고 하여도 그 구제를 통하여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한다면 그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인데 예수님의 의는 내가 구제를 하여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하나님만 보도록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이 남을 구제할 때 누가 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나팔을 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들의 영광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회당과 큰 거리에서 이러한 종교적인 의무를 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의 영광을 얻기 위한 구제는 하나님 앞에 상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셔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와 공로와 관계없이 죄사함의 구원을 주신 것도 놀라웁고 감사한데, 거기다가 상까지 주신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하려 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베푸신다는 것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우리가 구원얻으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지금 죽어도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많은 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상을 많이 받을수 있을까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1,42)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섬기며, 상대방의 필요를 공급하며, 헌금하며, 복음을 전도하며, 가르치며, 교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과 관련하여 선을 행하는 모든 일들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작은 것까지도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을 받는다’는 단어의 뜻은 원래 그 당시 상거래 전문용어로사 물건을 샀을 때 영수증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신앙적인 행위를 했을 때 – 그것이 예배이든, 찬양이든, 구제이든, 봉사이든, 헌금이든 간에 – 급은 이미 지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고자 마음먹는 순간 이미 상을 받은 것이요, 영수증이 나간 것임니다. 그런데도 사람에게 또 칭찬을 받으려고 하면 그것은 영수증을 2번 받은 것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사람들을 의식해서 하는 행위는 피해야만 그 날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이 클것입니다. 

눅19:12절 이하에 보시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10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 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불렀습니다. 첫째가 나아와 이르기를 주인이여, 당신이 준 한 므나로 10므나를 남겼나이다. 라고 말하자 주인은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10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고, 둘째가 와서 이르기를 주인이여 당신이 준 한 므나로 5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너도 5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사람이 와서 이르기를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이 준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이라 당신이 무섭습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자 주인은 그에게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 하였느냐 그리하였다면 이자라도 찾을 것 아니냐히면서 그를 저주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인이 10종들에게 한므나를 나누어 줬는데, 여기서 귀인은 예수님이며, 10종들에게 다 한므나씩을 주었다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똑 같이 구원이란 선물을 다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가지고 얼마만큼 영향력있게 행하였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이 주시는 상급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0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칭찬과 함께 10고을의 권세를 주었고요, 5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칭찬의 말씀은 없고 단지 5고을의 권세를 주셨고요, 한 므나도 안 남긴 종에게는 저주하며 있는 것까지 빼앗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상급을 주실 때에 매우 엄격하게 차등있게 주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왜 금매달을 딸려고 열심히 연습하여 4년간 구슬땀을 흘립니까? 나라에게도 영광이 되지만 개인에게도 엄청난 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평생 헌신하며 복은 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딤후4:7절 이하에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이후로는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며 상급이 있기에 그 상급을 보고 달려 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헌신하며 봉사하며 희생할 때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소홀리 보시지 아니하시고 다 일일이 기억하셔서 상급으로 값아 주시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곧 주님이 오십니다. 오시면 우리가 일한만큼 상급을 주실텐데,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믿음생활하시면서 얼마만큼 하나님께 상급을 받을까요? 많을까요? 적을까요? 천국에 가면 가장 큰 상급을 받은 분은 아마 사도 바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소아시아과 그리스와 로마까지 교회가 많이 세워져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으니까요 그리고 순교하셨잖아요?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일들까지 다 상급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상급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상까지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상급을 잃어버리게 됩니까? 자신이 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의 영광과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주실 상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매사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제등 모든 선한 일을 할 때 자기를 의식하거나 개입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제할 때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지만 남을 구제하는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지 사람 앞에서 행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셨음을 알고 도구로 사용해 주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밀하게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며, 모든 행한 일들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며, 우리의 속 마음까지 감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이셨으면서도 죄 많은 인간이 되셨으며, 목수의 아들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버림받은 창녀들과 세리들을 만나 주시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번도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기의 힘을 표현해 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가 가진 권능이 있다면 그것으로 사람들을 섬겼고, 그가 가진 능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으며, 그가 가진 힘이 있다면 그것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20:35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평생 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주고도 자신을 기억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진정한 상급이 우리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고, 그 날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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