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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음란,”  수치심 없는 사람

“음란,”  수치심 없는 사람

신약 성경에 나타난 죄의 목록에서 가장 추악한 단어는 희랍어 “아셀게이아” 입니다. 신약에 자주 언급되는  이 낱말은 우리말 “음란,” “방탕,” 혹은 “호색”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절들은 이 낱말을 “음란”으로 번역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밖에서 몸 속에 들어가는 것들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라며, 예수님께서 속에서 나오는 것들을 열거할 때 이 단어가 포함됩니다. “음란”으로 번역된 “아셀게이아”를 영어 성경 NRSV는 일괄적으로 “방탕함”으로 번역합니다. 성경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외설적 행위의 습관”으로 번역합니다. 그렇지만 이 단어의 뜻을 성적인 범위로 제한하게 되면, 이 낱말의 본질적 특성을 잃게 됩니다. 이 단어의 근본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고전 그리스 로마 사회의 사용례를 살펴봐야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인 “지혜서”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사람의 생각에서 시작된 우상은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언급한 후에,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영혼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밝힙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삶이나 결혼 생활을 깨끗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서로 배신하여 죽이거나 서로의 간음으로 슬퍼하게 된다. 모든 자가 피와 살인과 도적질과 속임수와 부패와 믿음이 없는 것과 떠들썩함과 위증과 선한 것을 구별 못하는 것과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과 영혼을 더럽히는 것과 음란한 것과, 결혼 생활의 무질서와, 간음 및 방탕에 날뛰게 된다.” 음란, 즉 아셀게이아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악한 생각으로 결국 악한 행실로 연결됩니다. 

   외경으로 분류되는 마카비오서에 아셀게이아는 권력자의 부패된 마음의 태도를 언급할 때 사용됩니다.마카비오 3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방탕한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그런 뻔뻔한 행위를 계속 했다. 그는 유대인 (신앙) 공동체에 공식적인 불명예를 안겨주자고 제안하고, 성전 뜰을 둘러싼 망대의 돌에 다음과 같이 비문을 새겼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며, 모든 유대인은 인두세 노예의 신분으로 등록 대상이 되며, 이에 반대하는 자는 강제로 잡아 죽이고,  등록된 자는 또한 불로 몸에 낙인을 찍을 것이다.” “방탕한 행위”로 번역된 단어가 아셀게이아입니다. 자신을 최고의 힘과 권력으로 이해하고 자기 마음의 욕망에 따라 생각하고 행하는 태도가 아셀게이아입니다.  

   고대 아테네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는 자신의 저서 『연설』에서 이 단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메이디아스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다루는 야만적 행위와 무례한 짓은 제가 추측하기로는 모든 시민들과 관대하신 배심원 여러분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당신들 중 누구라도 그의 동일한 분노의 희생자였다면 택했을 그 방법을 따랐을 뿐입니다. 저는 디오니시아 축제에 관련해서 그가 (뺨을 때려) 저를 모욕한 행위 뿐만 아니라, 제가 합창단장으로 재직한 기간 동안 다른 많은 배우들에게 행한 폭력 행위에 대하여 그를 위법자로 총회에 고소했습니다.”  메이디아스의 폭력적 성품을 아셀게이아로 표현하여 그의 정신을 동물의 잔인한 본능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 낱말을 “뻔뻔함” 혹은 “철면피의” 태도로 사용했습니다. 영국 시인 바질은 이 낱말을 “훈육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고 절제의 성품을 소유하지 못한 영혼의 기질”로 정의합니다. 그것은 “자제를 모르고, 무엇이든지 순간적인 생각과 오만함이 암시하는 것을 과감하게 행하는 정신”으로 묘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혼 속에 아셀게이아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사악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 주변 사람들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에 어떤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끄러움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는 마약을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마약을 처음 하는 사람은 그것을 비밀리에 탐닉하며, 자신이 마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마약을 구걸하고 간청하고 어떤 구속함이나 아무 부끄러움 없이 마약을 즐깁니다. 마약이 그를 그렇게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아셀게이아는 단독으로 언급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여러 죄 목록에서 다른 죄와 함께 언급됩니다. 그 이유는 이 죄가 다른 죄들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셀게이아는 탐욕과 같이 언급됩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 (아셀게이아)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욕심 혹은 탐욕으로 번역되는 고대 희랍어는 물질적 소유를 “더 가지는 having more,” “더 받는 receiving more,” 결국에는 “더 원하는 wanting more” 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셀게이아의 내면에는 “부끄럼을 전혀 개의치 않는 욕망의 갈망”이 존재합니다.     

   두번째, 아셀게이아는 간음이나 정욕과 같은 성적인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낱말을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 (아셀게이아)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이곳에서 아셀게이아는 “순전한 동물적 욕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인간의 음란한 행위는 짐승보다 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악덕입니다. 

   세번째, 아셀게이아는 술 취함과 함께 쓰입니다. 로마서 13:13절은 이 낱말을 이렇게 사용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술 취함”이란 “흥청거리는 술 잔치” 혹은 길거리에서 몸을 흔들고 노래 부르는 “술 취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셀게이라는 술 취한 사람처럼 “순전한 자기 방종”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쾌락에 노예가 되어 수치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아셀게이아는 소름 돋는 단어입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삶이 타락하여 부패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놓치게 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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