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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참된 부흥의 시작”(느헤미야 8장 1-12절)_하늘둥지교회 이재석 목사

“참된 부흥의 시작”(느헤미야 8장 1-12절)

하늘둥지교회 이재석 목사

여러분들은 다들 부흥을 원하시죠? 부흥을 원치 않는 분들은 없으실 겁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 가정 그리고 개인의 영적 부흥을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부흥을 원하는가?”입니다. 여러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왜 부흥을 그렇게 갈망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왜 부흥을 원하십니까? 

“부흥”(revival)은 “회복, 복원”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 회복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교회에 성도가 늘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교회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부흥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부흥입니다. 

물론 부흥의 결과로 성도가 늘어날 수 있고, 헌금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사역이 힘있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부흥이 가져다 주는 하나의 결과물일 뿐, 이것을 참된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은 영혼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그 곳에는 회심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넓은 의미로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거룩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이런 회심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흥을 갈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자신들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성경 공부하고, 말씀보고, 기도하고, 여러 사역을 감당하지만, 여전히 침체되어 있는 자신의 신앙 상태를 볼 때,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삶은 늘 공허하고, 만족이 없는 겁니다. 이런 침체되고 공허한 신앙 생활을 벗어나서 역동적으로 힘있게 신앙 생활하며 정말 멋있게 이 세상을 살고 싶은 마음에 다들 부흥을 갈망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안되니까, 지금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해서는 그 어떤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니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내 안에 일어나서 삶을 완전히 뒤집어 주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부흥을 원합니다.  

저는 지금 이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적 부흥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변화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부흥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겁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교회 안에 영적 부흥에 대한 갈망이 가득하고 또 영적 부흥이 힘있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한번 거듭나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가 영적 부흥을 갈망한다면,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데, 오늘 말씀은 우리 안에 참된 부흥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제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시작한지 52일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됐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이 완공된지 5일만에 다시 수문 앞 광장에 모입니다. 그동안 성벽 공사로 인해 많이 피곤하고 지쳐있었을텐데, 이들은 수문 앞 광장으로 다시 모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다시 수문 앞 광장에 모였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 오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말씀을 잘 보시면, 느헤미야나 에스라가 먼저 율법책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율법책을 읽어 줄테니까 5일 후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다는 겁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달라거나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기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안전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았습니다. 성벽을 짓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성벽을 짓는 과정 속에 수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대적들이 집요하게 방해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들과 함께 해서 52일만에 기적처럼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때문에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이 됐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이는 앞으로, 자신들의 안전 역시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성벽을 견고하게 세우고, 파수꾼들이 성벽을 온 힘을 다해 지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성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은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우리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쳐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번 이혼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늘 해결되지 않은 영적인 갈급함, 공허함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해결해 보고자,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그동안 많은 남자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이는 그 당시에 한 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삶은 그대로였다는 겁니다. 결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삶은 더 공허하고 갈급해졌습니다.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의 영적 갈급함과 공허함, 그리고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정말 많은 남편들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 삶은 여전히 갈급하고 공허합니다. 잠시 잠깐 나아지는 것 같지만 여전히 똑같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의 것으로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생명의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통해 그녀는 삶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될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의 삶을 더 의미있고 가치있게 할 수 있을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 우리가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과 지혜를 다 담아 두셨고, 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시고,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었던 영혼들이 깨어나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삶이 깨어지고 변화된 영혼들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고 능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면 우리는 충분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고 삶의 동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적으로 무장을 시킬 뿐만 아니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인도해 줍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가리켜 영적 기갈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 영적 기갈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한번 뼈속까지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 자신들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얼마나 가득했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어서서 말씀을 듣습니다. 6-7시간을 서서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껴지십니까? 

만약 요즘 교회에서 6-7시간씩 서서 설교를 듣는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설교자들이 설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통과 의례처럼 겪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설교를 하다보면, 약속된 시간보다 설교를 길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꼭 이런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설교 좀 짧게 해 달라”, “설교가 길면 성도님들이 힘들어하고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해 한다”. 여러분, 정말 설교가 길어지면 성도님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까요? 

제가 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했을 때, 교회에서 한 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2박 3일 동안 말씀 사경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강사 목사님께서 정말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강사 목사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해 주셨던지, 모든 성도님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설교가 마무리 되는것 같아서 시간을 보니까 설교를 하신지50분이 넘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서 이제 설교가 마무리 되는가 싶었는데, 그때 강사 목사님께서 설교를 멈추시고는 “오늘 설교 1부가 끝났습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시고 5분 후에 2부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모든 교역자들이 매우 당황했습니다. 설교를 1,2부 나눠서 한다는 것은 모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교역자들은 집회가 너무 늦게 끝나면 성도님들이 집회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실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시는 성도님들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도님들이 화장실을 다녀 오시고, 다시 말씀을 듣기 위해서 집중하시는 모습에 정말 큰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 사경회를 통해서 말씀이 살아 역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에 붙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강사 목사님은 2부 설교를 한 시간 넘게 더 하셨습니다. 그 후 매 집회때마다 2시간씩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집회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성도님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렇다고 강사 목사님께서 설교를 매우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게 전했던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열정적으로 설교를 전하셨지만, 투박함 그 자체였습니다. 설교의 3분의 2 이상을 원고를 보시면서 그대로 읽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그 긴 시간을 집중해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고, 그 성도님들이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했고, 집중해서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그리고 교회에 있어서 참된 부흥의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흥은 절대로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치고 교회에 임하게 될 때, 참된 부흥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5절을 보면,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 때 모든 백성들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율법책이 펼쳐질 때 백성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겸손,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따르겠다는 순종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6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응답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듣고 따르겠다는 순종의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인들이 선포된 율법을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고 깨닫게 했다고 나옵니다. 한국 속담에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가는 것은 쉽지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인데,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말씀을 “아멘 아멘”하며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가 말씀을 풀어줘도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하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마가복음 4장을 보면, 네 가지 밭에 뿌려진 씨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은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말씀을 하셔도, 결국에 그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준비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풀어지니까 그 말씀이 깨달아지는 역사가 그들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9절을 보시면, 온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 안에서 깨달아지니까 그동안 하나님없이 살아왔던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게 되니까, 눈물로 지난 날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끝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게 되면, 깨달은 그 진리가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깨달음이 있을 때, 신앙 생활하는 기쁨이 생기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이 우리 삶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말씀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으셔야 합니다. 암기하셔야 합니다. 묵상하셔야 합니다. 공부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듣는다고 해서 다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왔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의 임상실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부흥을 원하십니까? 우리 안에 또 우리 교회 안에 참된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참된 부흥이 시작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한번 다짐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모든 성도님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전심을 다해 준비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매 주일 기대할 만한 말씀의 잔치가  예배 가운데 벌어질 수 있도록,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가 육체도 그렇지만 영적인 성장 역시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식사로는 절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자주 먹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 한명, 한명이 영적으로 더욱 더 성장하고 성숙할 때, 영적인 부흥이 일어날 때, 그것이 곧 교회 부흥의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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