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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하나님의 인도하심 (창세기 24장 1-9절)_토론토 배리한인교회 김선경 목사

하나님의 인도하심 (창세기 24장 1-9절)

토론토 배리한인교회 김선경 목사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생각을 들 때가 있고, 어떨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의 주권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고, 우리는 그분의 양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목자 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배우고 싶습니까?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인도해 가시는 방식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 하는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 가운데 한 번 이상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마다 다르고, 그리고 인도하심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떤 형식이나 틀, 또는 공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꿈으로 보여주시기도 하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지금으로는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를 통해서 인도해 주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질병을 주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상황은 다 다릅니다. 

여러분! 출애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더 정확하게 본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떠한가를 몇 가지 사건을 통해서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내용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말씀이지만, 그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100살을 넘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지금 40살이 되었으니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살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살에 부름받아 175살까지 산 이야기가 12장부터 25장 사이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처음 하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올 때에는 그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신앙의 청년기였습니다. 청년기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패기가 넘치고 열정이 있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청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런 열정과 젊음의 패기는 사라졌지만, 믿음의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자신이 신임하는 늙은 종을 보내는 모습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중에 가장 잘 알려진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내용입니다. 칼을 들어 이삭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하는 신앙의 냉정하고도 단호한 모습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충 키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인 냉정함과 단호함을 가진 신앙의 모습으로 키웠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길러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라면, 그 아들은 당연히 믿음의 사람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나 신부로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의 신부를 찾지만 지금 가나안 땅에서는 이삭의 신부가 되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민한 끝에 자기가 떠나 온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삭의 신붓감을 데려오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헤브론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의 거리는 약 800km입니다. 얼마나 먼 거리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토론토 노스욕 지역에서 오타와까지 거리가 약 450km입니다. 그렇다면 헤브론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거리는 대충 두 배 정도의 거리입니다.

쉬지 않고 운전하면 9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는 것입니다. 걸어서 오타와 두 배 거리를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약 2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 두 달 정도 걸어서 메소포타미아까지 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거리가 먼 것보다, 낯선 곳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바닷가에서 바늘 찾는 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상황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3가지만 알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심을 알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직장을 선택하거나, 사업을 선택하거나, 학교를 선택하는 등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할 때, 여러분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삶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선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좋아하니까, 놓치기 아까우니까, 하면서 그것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놓쳐 버려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준비한 최고를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거나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유기성 목사님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는 책에 보면 임현수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한에 2년 6개월간 억류되었고, 2017년에 극적으로 석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석방되기 전에 큰빛교회 성도들이 오타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와서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했고, 오타와 교회에 와서도 한번 더 임현수 목사님의 석방을 위한 기도회를 했습니다. 저도 함께 참여하면서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기성 목사님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는 그 주간에 큰빛교회 집회차 토론토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유기성 목사님에게 한 분이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그동안 저는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게 해달라고 매일 새벽 간절히 기도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진짜 석방되실 거라고 믿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믿음도 믿음인가요?”

무슨말 인가요? 석방을 위해 기도했지만 석방되리라고는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유기성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임현수 목사님이 석방되리라 믿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계속 기도하게 하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믿으셨잖아요.”

다시 말하면 임 목사님의 석방은 믿지 못했지만, 주님이 계속 기도를 시키신다고 하는 그 믿음이 이 같은 응답을 가져온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도를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결론으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기도에는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의 근거가 바로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문제 해결보다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여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는 가나안 땅의 여인들에게서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더 좋은 사람을 준비해 두셨을 것이라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다른 결정과 행동을 합니다. 그렇다고 급하게 서둘렀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행동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보면 “그래서 그 종은 손을 주인 아브라함의 다리 사이에 넣고, 이 일을 두고 그에게 맹세하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늙은 종이 이것을 두고 맹세 했다는 말은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아들을 결혼시킬 여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그냥 앉아서 고민만 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 여기는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알아서 해주세요? 하면서 시간만 보내며 기도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기도는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기도합니다.’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기도 합시다. 그런데 진짜로 여러분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시나요? 말은 기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기도에 대한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도는 청산유수처럼 합니다. 그 기도를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기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기도한 대로는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난 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죄를 짓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로는 죄를 고백하거나 잘못을 구하지만, 우리의 삶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에셀은 신실한 청지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요청에 엘리에셀은 바로 순종합니다. 사실 800km나 떨어진 멀리 있는 곳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여인이 남편이 될 사람을 보지 않고 결혼을 승락할까요? 그리고 그런 여인이 있다고 해도 무엇을 믿고 엘리에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까지 오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그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걱정하는 엘리에셀에게 그곳에 가면 하나님이 미리 가셔서 선택해 놓고 있으니 너는 그냥 가서 데려 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이 메소포타이아에 도착하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엘리에셀은 하란의 우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우물에 앉아서 물을 길으러 오는 처녀들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제가 요청을 할 때 나에게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나의 낙타에게도 물을 먹이겠다고 자원하는 처녀가 있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인지 알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반 상식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하나님을 믿었고, 아브라함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믿음이 어디서 나옵니까?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만약 아브라함이 젊었을 때였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뒤의 성숙한 모습의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었기 때문에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을 알아 갈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나의 아버지 집, 내가 태어난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하셨다. 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말씀을 알고 순종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도 자기 고집대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호세아서 4장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 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여기서 나를 알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알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은 나침반이기는 하지만 약도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동, 서, 남, 북 방향은 제시하지만, 그 길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말씀 뽑기라든지, 성경책을 펴서 나오는 말씀이 오늘 내가 실천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 뽑기나 단순히 성경을 펴서 보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알아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그런 방식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다면 성경 전체를 통독하십시오. 그래서 나무를 보기보다 숲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확신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인생에 확신이 생깁니다. 사업의 확신이 생깁니다. 공부에 확신이 생깁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고 확신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 보니까 불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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