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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부부제자 7주 시리즈(2)_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_신윤희 목사

부부제자 7주 시리즈_2주차_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본문: 로마서 8:5-11

늘 학교에 지각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너는 왜 매일 지각하니?” 어린이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보세요. 길 바닥에 ‘학교 앞 천천히(School Slow)’ 라고 써있잖아요.”  물론 자신이 지각한 것에 대한 핑계를 대려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의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마음이 다들 있는 것 같다. 성경 말씀도 자기 마음대로 갖다붙여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그 말씀대로 살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한다.

지난 주부터 ‘부부제자 시리즈’를 시작했다. 7주간을 통해 부부로서의 제자, 제자로서의 부부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고 살아내는 저희들 되기를 소망해 본다. 또한 결혼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이나 Youth들에게도 제자된 아내와 남편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기도제목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설교 제목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고 정했다. 우리의 삶을 요약한다면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이미와 아직은 구원과 관계 있는 용어이다. 즉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으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구원의 완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이미와 아직의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볼 때 명확히 알 수 있다. 연합군은 1944년 6월 6일을 D-day로 잡았다. 그리고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독일은 퇴각을 시작한다. 굉장히 중요한 요점이었기에 이제 연합군은 이미(already)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직(not yet) 끝나지 않았다. V-day라고 하는 최종 승리의 날까지 완전히 독일군을 몰아내야지만 완전히 끝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느냐’는 것이다. 당신은 살아있는가? 우리 옆의 가족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무슨 소리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살아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실례아니냐’고 섭섭하다고 하실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요한계시록 3:1)와 같은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생영(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 우리는 산 것이고 생영(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내 안에 있고 없고가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죽었는데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이 우리에게 없다면, 부부제자에 대한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혼에 대한 관점이나 간절함을 영점 조절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 ‘나의 배우자(아내와 남편)가 정말 살았는가’를 확인하는 시간 되길 축원한다.  오늘 본문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자. 로마서 8장 6절에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1절에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성령님이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없다면 살았다 하나 죽은 자이다. 가끔 아내가 자다가 숨은 안 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면 가만히 입가에 손을 대본다. 쉼이 쉬고 있나. 그러면 미세하게 숨을 쉰다. 그러면 안도한다. 숨을 안 쉬면 몸은 죽은 것처럼 성령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죽은 것이다. 우리 배우자의 영은 죽은 것이다. 

부부제자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성령님이 이 시간 배우자에게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 임마누엘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시간 성령님이 자신 안에 계신 지 안 계신 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분들 중에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신가. 

그렇다면 지금 나를 따라 기도하기 바란다. “성령님, 내 안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성령님, 이제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지금을 성령의 시대라고 부른다. 성경의 선배들은 우리가 더 좋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옆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제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와 동행하신다.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소통전문가 김창옥 강사는 운동을 하면서 P.T.(Personal Trainer)를 고용해서 많은 돈을 주고 훈련을 받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PT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돈을 받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란다. 고생은 자신이 다 하는데 PT가 하는 일이라곤 “몇 개 더 하세요.”라는 말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니 PT의 말을 잘 들었고 유용했단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다 배웠으니 이제 자기 혼자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PT 없이 혼자 하는데, 이게 왠 걸. 전에는 PT 와 함께 정해진 웨이트를 30개를 들어올렸다면 혼자 하니 20 개도 못들겠더란다. PT 가 옆에서 숫자를 불러가며 함께 할 때는 용을 쓰며 들었는데 옆에서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들어낼 수가 없더란다. 그 때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 자신을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PT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힘들게 했던, 그 한 번의 몸짓이 나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켜서 한 일이 나의 코어 근육을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혼자 하려니 갯수를 그만큼 채우지도 못하고 그만 하려고 하는 자신을 보았다.  지금 혹시 마지 못해,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있는가. 어쩔 수 없이 한 그것이 자신을 성장시킨다.

성령님이 대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 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PT(personal trainer)이시다. 성령님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몸에 영적 근육을 만들고 계신다. 성령님은 아내와 남편을 성령님의 보조 트레이너로 두셨다. 아내와 남편에게 그런 역할을 주셨다. 그렇게 해주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것을 제정해 주신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왜 같이 살게 하시겠는가. 성령님이 아무것도 안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남편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 이제 아내와 남편을 보는 눈이 달라지길 축원한다. 원수가 아니다. 우리의 보조 트레이너다.

한국에서 제일 힘들다는 상무대 유격을 소위 임관하면서 받았다. 얼마나 힘들게 하던지 유격교관과 조교를 죽이고(?) 싶고 이를 바득바득 갈아야 했다. 유격을 2주간 받았다.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받았던 그 유격을 통해 군인에게 꼭 필요한 코어근육과 전술훈련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지방은 태워 없어지고, 근육질 몸매로 바뀌었다. 살이 많이 빠져 유격복을 벗고 본래 자기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완전 헐렁한 옷이 되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성령님의 PT를 받게 된다. 이전 교회에서 찬양팀으로 섬겨주시던 가족이 캘거리로 이주하셨는데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밴쿠버에 다시 방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밴쿠버에서 캘거리에서도 쫌 떨어진 작은 마을로 가게 되신 것은 운영이 잘 되지 않는 주유소와 거기에 딸린 햄버거 가게를 인수하셨기 때문이다. 원래 주인이었던 백인은 100여개의 룸이 있는 motel과 주유소와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다가 잘 안되니 motel만 남기고 집사님 내외에게 파신 것이다. 

처음에는 잘 안되는 주유소였으니 손님도 별로 없고 관리도 잘 되어있지 않았지만 두 부부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곳에 오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다. 부부에게 처음에 장사가 잘 안될 때는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서로에게 “당신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충분히 탓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살아있기에 이런 마음의 고통과 힘겨움이 있다. 죽으면 이런 것이 하나도 없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은 달려오는 차에 뛰어 들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죽으면 끝이니까. 운전하고 있는 차의 운전대를 확 틀면 정면충돌하여서 죽지 않을까.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언제 그냥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가. 

금세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금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게 되었다. 조금씩 단골도 생기고, 매장이나 제품 진열도 반짝 반짝하고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게 하니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주유소도 햄버거 가게도 잘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유소와 햄버거 가게를 팔았던 주인이 자기가 판 곳이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니 배가 아파서 훼방을 놓기 시작하더란다. 참 나쁜 사람들 많다. 이 때 부부끼리 싸울 수도 있다. 수많은 이유를 들어서 서로를 비난할 수 있다. 외부적인 자극들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면 우리 내면의 평화와 평안이 깨지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부부는 이것을 성령님의 PT로 생각하고 예배와 기도의 힘으로 전 주인이 어떻게 나와도 대응하지 않고 평안으로 하루 하루를 지냈더니 결국 믿음의 코어 근육이 강해져서 결국 승리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할 때 우리는 좋은 것은 OK이지만, 힘들 것 같은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사랑, 온유, 치유는 너무나 좋습니다. 저에게 충만하게 주옵소서. 그러나 겸손, 희생, 용서, 고통은 저에게 주지 마시고 나를 피하여 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는 말씀은 왠지 불편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함으로 결혼한 부부를 통해 이것을 훈련하시기로 하셨다.  권투 선수들은 스파링을 한다. 스파링을 왜 하나? 나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나의 기술이 어떻게 들어가나 확인해 보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 나에게 들어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스파링을 많이 하면 할수록 경기를 준비할 때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취약한 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스파링 파트너를 선정할 때 경기에서 만날 상대선수와 비슷한 사람을 정하게 된다. 그래야만 훈련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와 영적 싸움에서 만날 상대는 사탄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싸움을 위해서 스파링을 해야 하는데 그 스파링 파트너로 제일 사탄과 닮은 상대를 주셨다.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배우자를 “이 웬수야~”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 원수 같은 스파링 파트너를 통해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어디가 카운터 펀치인지’를 배우고 알게 하셨다. 그 스파링 파트너는 결국 적이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동반자인 것이다. 우리 옆에 있는 배우자에게 이렇게 인사하자. “저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군대에서는 자주 전술훈련을 한다. 전술 훈련할 때 한국군 전술과 북한군 전술을 한 번씩 실제로 실행해 본다. 2개 대대끼리 전술훈련을 한다면, 1개 대대는 한국군전술로 준비한다. 1개 대대는 북한군 전술로 준비한다. 그래서 북한 계급장도 실제로 만들어 붙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국군의 전술의 강점과 취약점을 익히기 위함이다. 또한 북한군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움직일 지를 알아야 그것을 피할 방법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부싸움을 권장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스파링 파트너를 통해서, 적전술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 지, 무엇이 약한 지, 어디를 강화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해 봐야 한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수많은 눈물도 흘려야 한다.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를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카운터 파트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래서 남편이 예수님처럼 되어 가도록, 아내가 예수님처럼 되어 가도록 서로에게 도전을 주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부부제자로 훈련받는 것이다. 겸손, 희생, 용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고통, 용서, 겸손의 문제로 씨름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영적 코어근육이 강해지는 것이다. 바울은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한다. ‘지쳐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갈 6:9) 

그렇다. 스파링은 살아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적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닥쳐오고 적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 우리의 PT되시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이겨낼 수 있는 담력을 주신다.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우리의 조교인 아내와 남편과 함께 이미 시작된 전투 가운데 온전한 승리를 위해 영적 전투를 벌여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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