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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코람데오 신앙과 용서(마태복음 18:21-35절)_토론토 순복음방주교회 양경모 목사

코람데오 신앙과 용서(마태복음 18:21-35절)

토론토 순복음방주교회 양경모 목사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용서  받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용서하지 못해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대상이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용서를 받지 못하면 이 사람은 항상 쫓기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 할 지라도 용서를 받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고, 그 마음에 무거운 납덩이를 끌어 안고 살아가는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용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에 분노와 미움과 죽이고 싶은 마음과, 저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용서할 것도, 용서 받을 것도 없다.고 아주 처연한척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냉소적이고 태연한 척 하는 것 만큼 그 사람 자신은 더 많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용서 받지 못했을 때, 또 용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겪는 괴로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된 용서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이 참 된 용서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하늘의 언어인 것처럼 용서도 하늘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안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다 용서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용서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를 용서하고 안하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서가 안되는 우리에게 남을 용서 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거듭나서 닮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용서가 안되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덕으로는 용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훈련이 잘되어서 할 뿐이지 진정한 용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훈련과 덕으로서 얼마든지 외적으로 용서를 표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평안한 척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첫번째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음으로 죄에서 용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죄에서 용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용서를 할 수 있는 하늘의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 할 수 있는 사람, 또 용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내면의 세계에 깊은 신앙의 성숙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용서를 할 수 없거나 용서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에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전도를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봉사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 깊은 내면의 세계에 하나님의 마음인 용서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를 통과하지 않는 사랑은 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용서라는 십자가를 치르지 않고, 용서라는 희생의 댓가를 치르지 않고 하는 사랑은 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편 32:1절을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분명 죄와 허물이 있는데, 그 죄와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려짐의 축복, 즉 덮임을 받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다.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용서 받은 자의 해방과 기쁨이 얼마나 큰 줄 아십니까?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용서를 받아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용서를 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아서 너무 감격하여 밤새도록 울어보고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너무나도 감격하여 잠을 설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려본 적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었는가 말입니다. 화해 할 수 없는 사람과 화해 했을 때, 그 감격을 아십니까?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용서 받지 못하면 그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시편 32:3절을 보면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고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라고 용서 받지 못한 자의 그 괴롭고 처절한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 받지 못한 자의 고통이 이렇게 심한 것입니다. 마치 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고, 그 진액은 마치 여름 가뭄에 심령이 말라 비틀어진 것과 같은 그런 상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지 못하면 이런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 받지 못한 일이 있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이든, 사람과 관계이든 그 뼈가 녹아 내리는 것과 같고, 심령이 여름 가뭄에 바싹 마르는 것과 같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미워해서 노예상에 팔아버린 형제들을 용서한 요셉을 보시기 바랍니다. 충분히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자신을 팔아버린 형제들의 죄를 물을 수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형제들을 용서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50:20-21절을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라고 말하면서 형제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질투를 받아서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결국에는 평생토록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사울 왕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있었지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인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용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덕을 세우고 용서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용서의 한계는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 용서의 한계가 일곱 번까지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용서를 잘한다 할 지라도 인간의 용서의 자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한이 없는 사랑을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하라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용서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또 로마서 5:8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어떤 종이 임금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만 달란트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 달란트의 가치는 이런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금 34kg으로 계산하면 지금 기준으로 20억이 넘는 돈입니다. 그렇다면 1만 달란트의 가치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은 그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만약 갚을 수 없다면 그 몸과 자식과 아내등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이 종이 임금에게 엎드려 절하며 나를 참아달라고 말하고 어떻게든 갚으리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 종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임금이 그렇게 말하는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가지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빚은 반드시 결산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4절의 말씀을 보면 “결산할 때”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14-30절의 말씀을 보면 결산에 대한 말씀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종들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다가 기한이 되어 종들에게 와서 결산할 때 종들이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하여 결산을 받습니다. 그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둠으로 인해 주인에게 칭찬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아 있는 한 달라트까지 빼앗기는 수모와 바깥 어두운데로 내쫓겨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결산 할 때가 바로 마지막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종말은, 이 세상 종말을 말하기도 하고, 내 개인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종말은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의 말씀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산이라는 것은 바로 심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0:11-12절의 말씀에도 보면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산이라는 말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결산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결산을 받을 때, 의의 결산을 받게 하기 위해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 밖에 버려지게 되고 사람들의 발에 밣혀 존재가 사라진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결산에 항상 민감한 여러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모두 다 빚을 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빚을 진 자들이요, 주님의 사랑의 빚을 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나대신 모진 고통을 당하신 주님께 우리는 정말 큰 빚,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용서해 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빚을 갚을 길이 없으니 한 번만 봐 달라는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이 고개를 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말 할 수 없는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 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은혜가 동반될 때 용서가 가능한 것입니다. 은혜가 동반 될 때 오늘 말씀처럼 임금이 그 종을 불쌍히 여김과 같이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 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용서의 은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영혼과 삶의 자리에, 그리고 여러분의 범사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셋째로, 용서 받은 자는 용서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35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6:14-15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사람의 잘 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용서 받고,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 종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종은 첫째로, 자신이 받은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 잊어도, 여러분이 말씀을 오늘 듣고 내일 잊어버릴지라도,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가 사해진 이 용서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그렇게 유창하게 알지 못합니다. 기도를 잘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주롤 믿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한마디로 배은 방덕한 것입니다. 도저히 사함 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 받고, 도저히 씻을 없는 죄를 씻음 받고, 죄의 덮임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용서의 은혜가 오늘 말씀처럼 너무 쉽게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이 엄청난 용서의 은혜를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종이 자신이 그렇게 큰 빚을 탕감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을 진 자신의 동료를 그렇게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 “나는 손해를 보지 않을거야”…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은혜로 갚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악으로 갚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은혜를 아는 사람,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만큼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의 용서입니다. 

죄의 용서가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있었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이곳 성전에 들어와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용서의 은헤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있어야 진정한 예배로의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종은 자신이 받은 용서는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종은 자신이 받은 용서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종은 자신 만이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특별하게 자신만 주인의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교만해진 것입니다. 신앙 생활 가운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사탄이 주는 이 선물을 받으면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이런 사람은 남과 자신을 항상 비교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분발하는 것이 아니라, 분개한다는 것입니다. 분발하면 선의의 경쟁이 되지만, 분개하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결국을 살인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종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의 동료가 자신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난 것입니다. 왜 그 말은 자신만이 주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인데, 왜 네가 하느냐, 그 말입니다. 여기에 화가 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용서라고 하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골로세서 3:13-14절에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할 일은 임금이 자신을 용서한 것과 같이 자신의 동료를 용서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않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비단 용서의 문제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받은 축복 남이 똑같이 받으면 은근히 화가나요…

왜요 괜히 화가나요, 그냥… 내가 받은 축복은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진정 내가 받은 용서 다른 사람도 함께 받고, 함께 일어나게 하고, 함께 축복의 대열에 서게하고, 함께 행복하고, 함께 걸어가고,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함께 웃고, 울고, 기쁨을 나누고, 행복도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순복음 방주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다른 교회와 성도와는 차원이 다른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종은 용서를 받았으나 용서 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를 할 줄 아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용서는 아주 특별한 인격과 성품의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의 기술이 없으니까, 용서 할 줄 을 모르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면 무언가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성숙은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 생활에서 용서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5절의 말씀을 보면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다가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이 생각나면 모든 기도를 멈추어라 다른 기도가 아무리 중요하게 생각되어도 내가 용서하지 못한 형제가 있고, 또 그 형제를 죽일 만큼 미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실이 생각나거든 모든 기도 보다 먼저 그 형제를 용서하라, 그리고 기도하라는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네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베소서4:32절에서는 사도 바울 선생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용서함과 같이 하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심과 같이 그 용서의 힘을가지고 남을 용서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골로세서 3:13-14절에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힘은 바로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이 있었야 용서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으로 부터 죄 사함의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제 남을 용서 할 줄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용서의 은헤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용서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제 남을 용서 할 줄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이해입니다. 덮는 것입니다. 용서는 안아주는 것입니다. 화해 하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덮어주고, 안아주고, 화해하고, 그리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과 같이 하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는 무언의 전도입니다. 용서는 무언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무리 큰 빚이라도, 그것이 어떤 빚이건 모두 탕감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겪는 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31-34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종이 가장 축복 받은 사람에서 가장 저주 받은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복 받은 사람에서 가장 저주 받은사람으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남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용서를 남에게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말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우리도 마땅히 이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고, 서로 떡을 떼며, 주의 사랑을 나누고, 믿음의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함께 고난도 동참하며,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믿음의 공동체 삶이요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 구절을 가슴에 새겨야 할 줄 믿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부터”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먼저 용서해야 하고,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닮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 그 사람 마음 가운데 들어가야 그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이 말씀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잘 박힌 못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들입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데 무엇이 부럽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데, 어찌 환경을 두려워 하고, 상황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히 채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그 채워진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가지고 세상을 사랑하시고, 영혼을 사랑하시고, 복음을 전하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전하는 사랑하는 주의 신실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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