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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악한 자와 불량배” (삼상 30:21~25)_밴쿠버 만나교회 손진웅 목사

“악한 자와 불량배” (삼상 30:21~25)

올해 교회 가운데 허락하신 “헤브론으로 올라가라”(Go up, to Hebron!)는 VISION 아래 사무엘상을 

중심으로 다윗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 다윗의 망명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가드 남쪽에 있는 시글락입니다. 사무엘상 27장을 보면 다윗은 그를 죽이려는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부터 함께한 6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을 한 상태였습니다.

다윗의 이런 선택은 다윗을 믿고 함께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블레셋 가드로 갔다는 소식에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수색하지 않습니다.(삼상 27:4) 

그러나 문제는 다윗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쫓겨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후 본문의 다윗을 보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쥐고 있던 아기스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에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이 허락한 블레셋 남쪽 시글락에 정착해 더 이상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삼상 27:6)

◎ 궁지에 몰린 다윗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삼상 28:1)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린 블레셋 망명 결정이 결국 올무가 됩니다. 아기스에게 신뢰만 쌓으면 안전하겠다고 생각 했으나 결국 아기스는 다윗과 함께 이스라엘을 공격하자고 합니다. 이 상황에 다윗에게 선택의 길은 없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내 조국 이스라엘과는 싸울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가는 자신 뿐 아니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다윗은 아기스 왕에 말에 순종해 참전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삼상 28:2)

아기스는 다윗의 군사를 자신을 호위하는 자리에 배치합니다. 그렇게 다윗은 아기스의 호위 부대가 되어 전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은 이런 상황속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어디를 찾아봐도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윗은 살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결국 전쟁을 치루기 위해 아벡으로 이동한 다윗은 적국의 장수가 되어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루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기스의 부하들이 다윗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게 됩니다. 그 덕에 다윗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다윗이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보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우리를 이끌어 가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는 내가 정말 가기 싫은데 가야 만 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막으시는 경우입니다. 

사실 그 순간에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의 큰 그림을 보게 되면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만일 길을 막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원하는데로 다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진작에 망했을 겁니다. 그러나 때로는 막으시며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셨기에 그나마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라도 있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나가겠다고 큰 소리 치긴 했으나 그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마도 함께 했던 군사들과 시글락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다행이라고 서로에게 말하며 돌아왔을 겁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시글락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들 눈에 보인 것은 폐허가 된 삶이 터전이었습니다. 

◎ 불바다가 된 시글락

다윗이 머물던 땅 시글락이 불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삼상 30:1~3)

다윗과 그 군사들이 블레셋을 도와 이스라엘을 치러 가겠다고 나간 사이 빈 집 털기 전문인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과 군사들의 모든 재산과 가족들을 다 끌고 가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날 벼락 입니까? 모두가 절망에 빠져 울기 시작합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4)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생사도 모르는 상황입니다.어떻게 든 살아보겠다고 조국도 버리고 망명한 곳에서 지금 그들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은 너무나도 처참합니다. 

“군인들이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삼상 30:6a/새번역)

다윗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아둘람에서 모여 10년을 넘게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만 믿고 쫓아왔던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절망에 빠져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이런 절망의 순간으로 이끄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상상 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밀어 넣으실까요? 이유는분명합니다. 평안한 삶, 안전한 삶의 유혹에 젖어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린 다윗

블레셋에서의 지난 1년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못했던 다윗… 살아보겠다고 블레셋으로 망명해 아기스 왕을 의지하며 살아온 지난 1년이 얼마나 무의미한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의지 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삼상 30:6b/새번역) 

그리고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 30:7~8)

다윗은 블레셋에 망명 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자신이 선택했던 현실적인 길, 당연한 길이 아닌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립니다.

 “하나님 여기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신앙은 “내 힘으로 사느냐? 하나님 의지하고 사느냐?” 둘 중 하나의 길을 향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 묻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b)

그리고 절망 가운데 일어나 주신 말씀 의지하여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추격하던 군대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 이미 이긴 전쟁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삼상 30:9~10)

아말렉을 쫓기 위해 급히 가는 도중에 600명의 군사 중 1/3에 해당하는 200명의 군사들이 낙오하게 됩니다. 아말렉의 군사 수가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 병력의 1/3이 줄어들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실적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끌고 가던가 아니면 다 처벌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낙오병들을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합니다. 왜죠? 이 전쟁은 수의 논리로 싸우는 전쟁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200명의 병사를 남겨두고 아말렉을 쫓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아말렉에서 종살이 하다가 버림받아 다 죽게 된 애굽 출신의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한 시가 바쁜 상황인지라 지나 칠 수 있었음에도 다윗은 이 소년을 돌보아 줍니다. 그리고 이 소년을 통해 받은 정보로 아말렉을 급습하여 대승을 거둡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삼상 30:18~20) 

완벽한 승리, 완전한 회복이었습니다. 다윗은 가족들과 전리품을 챙겨서 시글락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브솔 시내에 남겨 두었던 낙오병들을 만나 재회하게 됩니다. 

◎ 악한 자와 불량배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삼상 30:21)

브솔 시냇가에 두고 왔던 낙오병 200명이, 승리를 거둔 사람들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서로 얼싸안으며 울고 웃으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들이 힘을 보태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함께 기뻐합니다. 이때 다윗도 그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따뜻하게 문안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승리를 만끽하는 가운데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삼상 30:22)

아말렉과 싸움한 400명의 군사들 중 일부가 낙오병들에게 전리품을 주지 말자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들의 논리가 맞습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에 대해 악한 자, 불량배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 악한 자, 불량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누구입니까? 네, 다윗의 사람들입니다. 아둘람 굴에서 부터 모여 다윗과 함께 하기로 모인 사람들 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 된 교회를 이루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다른 사람들을 상심하게 만드는 악한 자, 불량배들이 공동체 안에 있었다는 겁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악한 자”의 “악한”의 원뜻이 “깨뜨리다, 상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온갖 부정적인 상태를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하든 부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공동체를 깨드리는 사람들을 “악하다” 표현합니다. 또한 “불량배”라는 단어는 “소모, 파괴, 실패” 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힘을 쭉 빼게 하는 사람들, 이기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의도적으로 “악한 자, 불량배들”이 그들 가운데 있음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만 가지고 왜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지 찾아 볼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본문은 이들을 공동체 안에서 색출하여 쫓아내거나 벌했다고 결론 짓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은혜의 회복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삼상 30:23)

본문에서 다윗이 악한 자, 불량배들을 향해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야! 이 나쁜 사람들아? 당신들이 이런 말을 하고도 같은 교회 성도입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들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다윗은 모든 사람들과 동일하게 전리품을 나눕니다. 다윗은 왜 이렇게 했을까요? 맞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며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은혜를 회복한 이날에 경험을 토대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삼고 대대로 지키게 합니다.(삼상 30:25)

앞서 다윗은 사울이 두려워 블레셋의 망명하는 현실적인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 동족 이스라엘과의 전쟁도 불사하려고 했었습니다. 왜죠? 내가 살아야 하니까, 내게 피해가 있으면 안되니까, 내가 손해 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 왕을 의지하며 살길을 찾았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빼앗겼던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하며 자신이 살아온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생각해보니 아무리 비참한 도망자의 삶을 살았을 지라도 늘 보호하시고 지키셔서 그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다시 회복합니다. 결국 다윗은 세상의 아무리 강한 나라, 권력을 붙잡는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일 지라도 하루 아침에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한 걸음도 걸어 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낙오한 200명의 군사들과 버림받아 죽어가던 블레셋 소년에게 은혜를 베푼 겁니다. 

지금 우리를 돌아봅시다. 악하자, 불량배와 같이 전리품에 눈이 먼 삶을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혹은 이런 저런 핑계로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 원수 사단의 나라로 망명해 그 앞에 복종하며 세상이 주는 유익, 평안을 누리고 계시진 않습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 악한 자 입니다. 불량배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벌하지 않으시고 형제라 불러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 입니다.

또한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낙오하여 브솔 시냇가에 머물러 있던 200명의 사람들처럼 역할도 제대로 못한 낙오자와 같은 인생입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얻을 자격 없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도 은혜의 전리품을 나눠주시고 세우셔서 그의 나라 백성 삼아 사용하여 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나 뿐 아니라 버림받아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며 흘러가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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