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다윗에게서 찾는 희망
해외 생활을 오래한 한인 대부분이 공감하는 말이 있다. 푸른 꿈을 안고 고국을 떠나 타국에 왔지만 실상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교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국에서는 해보지 않은 험한 일을 하며 일상을 보낸다.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손님처럼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고, 매일 쉴 틈없이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때로는 언어와 신분 때문에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기대감을 가지고 처음 비행기에 올랐을 때 꿈꾸었던 생활은 온데간데 없고 매일 분주한 삶 속에서 주변 환경과 상황변화에 그저 하루하루 몸을 맡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바쁘고 긴장되는 일상이 분주한 습관으로 전락해 버리면 힘과 위로가 되어 줄 신앙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더 이상 희망은 없는 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 다윗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이 있었다.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룩하고 영광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낱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했지만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다윗은 푸른 꿈을 새롭게 꾸어 볼 수 있었다. 마치 비행기에 처음 오른 교민들처럼.
하지만 그의 현실은 기대와 달리 참혹했다. 백성에게 왕으로 추앙을 받기는커녕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기며 목숨을 연명하는 도망자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육백여 장수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문제의 부담이 시간이 갈 수록 커졌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밤낮 추격하는 사울을 피해 매일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도망다녀야 하는 상황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했다. 그의 마음은 분주해지고 육신도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기름부으심과 소명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윗은 단순히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정적인 블레셋의 영토 내 가드의 방백인 아기스의 수하로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과거 빈들의 평범한 목동 시절, 이스라엘 만군의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다는 이유만으로 물맷돌 다섯개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에게 대항했던 다윗이다. 골리앗을 단번에 쓰러뜨렸던 다윗의 용맹함을 생각하면 블레셋 이주는 참으로 아쉬운 결정이다.
하지만 다윗은 분주했고, 지쳤다. 그의 심신은 참혹한 현실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다윗의 분주한 영혼은 더 이상 주님 안에서 쉴 곳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사무엘상 27장 1절은 그때 당시 다윗의 혼탁한 영성을 이렇게 대변한다: “다윗이 그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언제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여쭈어 보던 과거의 다윗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블레셋 이민자 다윗은 이제 자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스스로의 꾀를 내기 시작했다. 다윗이 한 순간 방심하면서 훗날 자신의 두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장수들의 모든 가족들까지 아말렉에게 포로와 노예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는 계기가 된다.
또한 그가 분주하여 신앙을 놓아버리자 다윗이 부재한 이스라엘의 군대는 결국 블레셋과의 큰 전쟁에서 패했다. 그 결과 사울 왕은 물론 자신의 의형제였던 왕자 요나단마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가 이미 하나님께 받은 왕좌는 영영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즉, 다윗의 분주함은 그를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이끌었고 그 방심이 낳은 무신앙의 결과가 이토록 참혹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다. 잘못된 선택 속에서 이민자 다윗은 예상치 못한 고난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고난이 마치 은혜처럼 다시 하나님을 찾아 나서게 한다. 지금 해외에서 고난 가운데 방황하며 살고있는 교민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무엘상 30장 8절은 다시 다윗이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위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고국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신앙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 위대한 대사를 읽을 수 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가로되…”로 시작하는 표현들이 연거푸 다시 등장하고 그의 삶에는 놀라운 축복의 반전이 시작된다.
이처럼 성도의 삶은 분주해서는 안 된다. 집 떠나면 무조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타지 생활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을 내려놓고 방심하게 만드는 근심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이민자 다윗과 같이 주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그 근심의 때를 복된 반전의 순간으로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매일 분주한 중에 피로감을 억지로 이겨내듯 구역꾸역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아니라 먼저 주님께 의지하며 새날을 기대하는 활기찬 신앙의 습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복을 반드시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우리도 다윗처럼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보냄을 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