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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마무리_캘거리 이진종 목사, 시인

마무리

 “0.1그램의 희망”이라는 책을 쓴 이상묵 교수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성공하였다. 그는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단 하나의 희망을 남겨놓았다”고 말한다. 실존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고 했다. 결국 희망은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흔히 “판도라의 상자”를 말한다.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뚜껑을 열었더니 온갖 재앙이 다 튀어나왔다, 황급히 뚜껑을 닫았지만, 단 하나 즉 “희망”만 남아있었다. 이제 곧 나의 상자에서 희망을 꺼내보자.

“때문에” 와 “덕분에”라는 단어가 있다. “너 때문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네 덕분에”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잘못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책임 전가”, “핑계”,”남 탓”이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조차도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던가. 시인 윤동주의 고백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영어 단어에도 “Because of” (때문에) 와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다. 누구누구 때문에 라는 말을 자주 입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주님은 “너 때문에”(혹은 나 때문에)라고 하면서, 단 한 번도 나의 잘못을 탓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자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 주님의 은혜다. 조건을 내걸면서 “이렇게 하면, 내가 너를 용서해 줄게” 하지 않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성경에 나오는 예를 살펴보자.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지적받자 바로 회개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그러하지 않았다. 질투와 욕망에 사로잡혀 엉뚱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다 비극으로 삶을 마친다. 악순환이다. 잘못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 즉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일이다. 그러면 꽁꽁 닫혔던 마음도 열리는 법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햇볕이라는 것을.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세상의 기준과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자, 내 생각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다. 룻이나 라합은 이방 여인이자 기생에 불과했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결과 희망이 생기고 불확실한 환경이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다.

흔히들 세 가지 “걸”을 말한다.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후회하는 단어를 조사했는데, “더 많이 베풀걸”, “더 많이 누릴걸”, “더 많이 용서할걸”이라고 한다. 나이 육십이 넘으면 모든 게 평준화된다고 한다. 외모의 평준화, 돈의 평준화, 학력의 평준화 …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더불어 말도, 마음도 예쁘게 하면 금상첨화다. 어디에 가든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자기만 주목을 받고 싶어 하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다. “어른 아이”일뿐이다. 미성숙을 드러낼 뿐이다.

 예로부터 나이 육십(환갑) 넘으면 이순이라 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어 살 때 나의 삶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다른 이들의 언짢은 말이나 행동에, “그럴 수가 있나”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의 삶이 한 달 남았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세상에서 내가 갖고 갈 것은 하나도 없다. “소유”, “이름”이 아니라 나의 “마음(인격)”을 남기고 싶다. 가족들 또는 지인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껏 만들고 하나님 앞에 갈 때 부끄럼 없는 삶이 되면 좋겠다.

이천이십삼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마무리를 잘하자. 인생은 마라톤이다. 초반에 아무리 잘 달려도 후반에 체력이 달려서 포기한다면…

캘거리 이진종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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