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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세운 캐나다 교회

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세운 캐나다 교회

샌드위치 퍼스트 침례교회(Sandwich First Baptist Church)는 윈저(Windsor)의 샌드위치(Sandwich) 근교에 있다. 이제 180년이 넘은 이 교회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교회 중 하나이며,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교회의 역사는 건축 날짜인 1851년 이전에 흑인들이 종교 생활을 위해 지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캐나다의 인종차별법 때문에 흑인들은 백인들과 함께 교회에 갈 수 없었다.

교회의 유산 관리자인 라나 탤벗(Lana Talbot)은 “백인들과 함께 종교 활동을 하거나 소위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흑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샌드위치 지역에 도착하는 흑인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1840년대부터 점점 더 많은 노예들이 지역에 도착했고 1850년 탈주노예법안(Fugitive Slave Act, 탈주한 노예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통과되면서 노예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이때 교회는 처음 시작했던 오두막에서 두 개의 방을 가진 오두막으로 확장했다. 

1851년에는 교회 최초의 주춧돌이 놓이면서 성도들이 모여 건물을 세웠다. 자유민들과 도망친 노예들은 벽돌로 교회를 세웠다. 교회가 완성되자 라이트풋(M.J Lightfoot) 목사를 선택했다.

탤벗은 “1851년, 그들은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고 도 제가 말하는 지금 이 시대의 성소를 지었다.”고 말했다.

지금의 성역인 교회는 그 시절이 더 그랬다. 노예 폐지론자들은 도망친 노예들이 교회에 숨는 것을 도왔다. 현상금 사냥꾼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교회는 그들의 성도들과 샌드위치로 탈출한 노예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도움을 요청하며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목사는 문을 잠그고 노예들은 교회의 비밀 칸 같은 지하에 숨었다. 탤벗은 현상금 사냥꾼이 교회 문을 두드리면 목사가 찬송가 ‘문 앞에 이방인이 있다.’를 불렀고 교인들도 동참했다.”고 한다. 

교회에는 탈출한 노예들이 현상금 사냥꾼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비밀문이 있었다. 탤벗은 “교회 입구 근처에 아직도 자신의 무게에 눌려 바닥이 내려앉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으며, 과거 그곳에 함정문이 있었다고 믿는다.

더 많은 흑인들이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샌드위치는 지하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철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들은 당국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철도 관련 암호를 사용했다. ‘Stations’은 네트워크를 따라 숨어있는 장소를, ‘Conductors ‘는 안내자, ‘Station masters’는 노예를 숨기는 것을 돕는 노예폐지론자였다. 

샌드위치 주민 헨리(Henry)와 메리 빕(Mary Bibb)은 노예제도 반대 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신문(The Voice of the Fugitive)을 이용했다. 탤벗은 “이들은 캐나다로 도피하기를 희망하는 흑인들을 위해 조언을 나누려고 했고 신문에 암호를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현재, 탤벗은 “교회는 현재 흑인들의 유산과 역사를 기리기 위해 박물관 건립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는 최근 예배당과 사무실을 수리하기 위해 10만 달러의 기금을 받았으며, 박물관을 위한 기부금을 받고 있다. 

캐나다 역사에서 종종 간과되고 무시되는 부분이 바로 노예제도이다. 대영제국의 노예제도는 1834년에 폐지되었지만, 탤벗은 “사람들이 여전히 노예를 보유하고 있었고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노예제도가 갑자기 끝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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