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선희 선교사의 교도소 선교이야기]

“정선희 선교사와 함께 만나는 교도소와 수감자들의 이야기”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6-7)

 Beauty in Brokenness 

어느날 오전에 한 출감자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나의 손에는 커피한잔과 작은 머핀이 들려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지내야했던 중범자였고 그곳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진 크리스챤 수감자로 지냈다. 형을 다 마치고 그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고 사역이란 세계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감자에서 사역자로 불리워지는 외적 거리는 가깝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에게는 머언 거리였다. 교도소에서의 삶이 만들어간 또 다른 자신이 그의 내면에 있고, 가정과 교회, 사회안의 여러 체제가운데서 겪는 갈등이 여전히 내적 거리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큰 범죄자였고 또 지금 거의 홈리스가 되어 있는 현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보다 자신 만큼의 주님을 사랑하는 것 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메세지를 컴뮤니티로부터 받을때가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복음을 지식으로 아는것과 실제 삶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도전이라고… 

커피 한잔과 머핀을 생각하고 준비한 그 단순한 관심, 편견없이 들어주는 마음의 따뜻한 방문이면 상하고 닫힌 마음을 녹이기에도 충분하다고 작은 웃음과 함께 덧붙인 그의 말은, 나의 발걸음을 수감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게 하는 동기가 되어 주기도 했음을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여러 허물과 실수, 상처들로 닫혀버린 내면의 문을 열수 있고, 함께 살아가기의 길을 낼수 있다는 굿뉴스를 품고 그는 꾸준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재소자들과 출감자들을 만나오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출감한 범죄자들의 기록을 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알수 없다. 그런데도 수감자의 경험이 있던 출감자들, 특히 장기 복역수였던 이들은 출감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수감자로 익숙하게 베어있던 기억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범죄자는 평생 저들이 죽기까지 ‘당신은 범죄자’로 기록에 남아 있듯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그 꼬리표에 자신들도 눌리고 있음이 사실이다. 같은 원리로, 우리 사회에서도 범죄의 기록이 있는 이들의 기록을 우리의 머리에서 쉽게 지워내지 않는듯하다. 범죄자란 이름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과 불안…교도소 사역이 우리의 삶에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중 하나도 바로 이런 유형이 아닐까 싶다. 이 두려움과 불안의 벽을 녹이는 것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면 이것 또한 굿뉴스가 아닐까?   

Joining the Prisoner’s Journey…

처음 사람을 만나면 공통된 질문과 만나는데 그것은 “과거에 교도소에 수감되어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교도소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이다. 물리적 교도소에 갇혀 있어 본적은 없으나 오랜 세월 어둠에 묶여 지내왔던것은 사실이다. 특히 폐허더미, 죽음, 전쟁, 기아, 자살… ‘고통’에 연결된 단어들에 집착되었던 나의 어린 시절도 기억이 난다. 어린 소녀의 눈과 마음에 비쳤던 ‘고통’이란 실체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인 것들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반응들, 어두움과의 친밀함들이 훗날 사역의 부르심의 성격과 닮아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갇힌 자들의 눈에서 만나는 내적 외침들과 숨어있는 고통과 절망, 자해, 소리없는 눈물들이 나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음을 교도소를 들어갈때마다 느끼곤 한다.  

ACTS of Trinity Western University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중 알게 된 민영교도소, 채플룸에서 만난 19살 청년의 눈물과 함께 받은 기도제목, 그로 인한 단순한 정기적 방문이 나의 교도소 사역의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번째 교도소와의 만남은  Fort Langley에서 페리를 타고 가야하는 메이플 리지에 있는 남자와 여자 민영교도소였다. 학생 지원자들과 매주 방문하여 수감자들과 마주 앉아 저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의 시간과 말씀, 예배와 간증,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졸업후 Holy Flame Ministries라는 비영리 단체를 세워 민영교도소와 연방교도소, 가석방자의 집들 방문 사역, 출감한 형제들을 위한 공동체 홈 사역등…수감자 한 사람이 감옥에서 가석방자의 집으로, 가석방자의 집에서 사회로 돌아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지원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15년이란 세월동안 보고 겪으며 섬김을 이어가고있다. 정해진 법칙을 어길때에는 교도소로 다시 돌려보내지는 제도하에서 가석방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보통의 삶을 살아갈수 있다. 종신형을 받고 가석방의 상태로 사회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도 새로운 삶을 꿈꾸고 세우며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호하고 관리하며 사회 가운데 잘 적응하며 돕는 정부와 민간인 단체들의 여러 열린 프로그램들과 체제를 보며 경이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재활의 기회의 문들이 열려 있음을 여러 면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Songs of Hope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주인공 그레고르, 그의 모습은 변신이 되었으나 그는 그였다.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형제였고 친구였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에게조차 그는 더 이상 그레고르가 아니었다. 빨리 죽기를 바라는, 자신들의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벌레일뿐이었다. 소통도 끊겨졌고 모든 관계로부터 버려짐을 받은채 외롭게 죽어간 이야기는 나의 삶의 한 조각이기도 하고 또 수감자들의 이야기기 될수도 있음을 이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면서 생각해보았다. 평범했던 회사원이었던 그레고르가 어느날 자신이 바꿀수 없는 파충류가 되어있었던것 처럼, 그렇게 누군가의 자녀로 한 사람으로 태어나 가정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교도소로 마치 파충류의 옷을 입은듯 사회로 부터 격리되고 자신으로 부터도 멀어진채 고통에 박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 수감자들…그리고 나 자신. 깨어지고 부서진 조각난 ‘나’와의 만남은 분명 고통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경찰 차 가 지나가기만 해도 피하려는 자동 반응은 슬픔이다. 교도소와 범죄자, 홈과 가족과의 관계는 차갑고 모질게 아프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누군가의 소망과 믿음의 노래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수도없이 들려오는 수감자들의 외침, “Help!”곁으로 오늘은 어떻게 다가갈까… 그 이야기들을 고르고 나의 마음의 언어로 조금 다듬어 이어지는 칼럼에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우리의 깨진 홈같기도 하고, ‘나’의 상흔같기도 한 이야기들속에서 더욱 실질적이고 깊은 섬김이 일어나길 희망하면서… 또한 이리저리 잘려나간 모양과 색깔들의 조각들이 모여 서로 연결되어 새롭게 드러날 생명안의 자유를 노래하게 하실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Live!” (에스겔16:6) “

첫칼럼을 마치며…

교도소 사역이 어렵고 들어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렇다. 이곳 캐나다 교도소는 발렌티어들이 쉽게 들어가 수감자들을 만나기 어렵다. 여러 지원 과정을 거친후에나 가능해진다. 또한 일아야하고 지켜야 할 사항들도 까다롭다. 그러나 쉽기도 하다. 수감자로만 다가가지 않고 상처입은 영혼, 관심과 힐링이 필요한 한 보통인으로 다가간다면. 보통 사람 모두가 겪는 그만큼의 아픔, 실패, 수치…그 속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소망을 알아봐주려하는 배려와 긍휼만 있다면 교도소 선교는 일상의 섬김이 될수도 있다고 믿는다.

오늘 칼럼에 소개한 교도소 용어 설명.

가석방자의 집 – 연방 교도소에서 수감형을 받은 사람들이 일정한 기간이 지나  가석방을 신청할수 있고, Correctional Service Canada의 판단하에 가석방 상태로 풀려나면 집이나 사회로 돌아가기 전 머물수 있는 집. 이 집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 담당 공무원에게 보고하고, 정해진 법칙들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민영교도소: 보통 2년 이하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머무는 교도소이나, 중범자들이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며 머물러 있다가 연방교도소로 옮겨가기도 한다.

연방교도소: 2년 이상 종신형이 머무는 곳. 

Lifers라 불리는 사람들이 종신형을 받은 사람들이고 거의 살인을 한 사람들이다. 캐나다 교도소 시스템 가운데는 이들도 가석방 신청을 할수 있고, 정부기관의 판단하에 가석방을 받아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살수 있다. 그러나 죽을때까지 교도소 정부 시스템의 통제아래 살아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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