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선희 선교사의 교도소 선교 이야기] 교도소 사람들

교도소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사는곳, 교도소 세계의 시스템에 의해 살아가는 수감자들이 갇혀 있는 교도소에 오늘도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빛과 같은 빛이 비추이고 있다.  인간이 겪는 비슷비슷한 감정들을 느끼며 수감자들은 열리는 하루를 맞이하고 또 닫는다. 교도소안으로 들어서면서 어제까지의 한 사람의 보통의 삶은 끝이 나고, 이제 자신의 정체성이 번호로 불리워지는 수감자로서의 일상이 시작된다. 교도소에 들어서면 몇개의 철문을 거쳐 수감자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서게 된다. 경범교도소와 중범 교도소와의 경계의 차이는 있지만 두터운 철문의 차이는 별로 느끼지 못한다. 경범교도소에서는 밖에 나와 신선한 공기, 하늘을 바라보고, 작은 풀밭을 거닐수 있는 자유가 좀 더 주어져 있음을 감지한다. 생각해본다 과연 교도소가 수감자들 인생에 어두운 시작점이고 끝점일수 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는 정원, 그 이름은 Beloved

2011년 메이플리지에 있는 한 남자 민영교도소에서 worship conference를 열었었다. 황폐한 곳이라 불리워지기도 하는 교도소라는 곳에 싱그러운 힐링의 바람이 그 황막한 교도소에 불어오게 하고 싶다는 소원이  Beloved이란 이름, 아가서 4장 16절 말씀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이 바탕이 되어 찬양의 밤 집회를 열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집회의 이름이 왜 Beloved이냐고 물어왔었다. 교도소, 범죄자… 그 이름은 아름답지 않다. 규칙과 명령, 순종과 단조로운 일상이 매일 반복되고, 가족의가족의 웃음소리도 없는, 다시 살고 싶어지는 장소는 더더욱 아닌 교도소에서 사는 수감자들을 맞이한 집회의 이름이 Beloved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 한 문장에서 찾아볼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막은 아름다와.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해.” (어린왕자 중에서).  수감자들 속사람에게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면, 교도소는 오아시스를 품고 있는 물댄 동산같은 같은 정원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 그리고 생각해본다. 수감자들 한 사람을 정원이라 여긴다면, 그 한 사람의 정원안에 이미 깊이 뿌리내려 쉽게 뽑혀지지 않는 것들, 또 계속 살갗을 파고 들어가 고통을 주고 있는 벌레들, 어느 한쪽 구석에 조그많게 싹을 드러내는 꽃과 열매의 씨앗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얼마나 깊이 한 수감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  똑같은 죄수복안에 감추어진 각자만의 유닉한 삶, 채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발견되도록 돕는 길에서 만난 몇몇 수감자들의 삶을 스케치해본다.

정겨움

우리 발렌티어들이 섬겨왔던 민영 교도소의 실내와 실외는 심플했다. 실내에는 사람들이 움직이며 내는 각종 소음들이 공간을 채우고, 마이크로폰을 통해 수감자들의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듯 여겨졌다. 눈으로 보는 공간은 사람이 모여 지내는 황량한 사막같았다. 수감자들에게 다가가 우리의 모임에 초청할때 한 청년이 복도에서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급히 자신의 방벽에 붙여있는 사진 몇장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며 사진속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는 그 사진들을 매일 보며 대화나눈다고 한다. 가족이 있는 수감자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 됨을 가족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 청년의 모습이 알려주었다. 작은 공간에 모인 소그룹에서 수감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누군가는 감금된 아빠를 잘 찾아와 주지 않는다고 애타게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기도 했다. 가족사진들을 매일 들여다 보며 위로를 얻는 수감자, 침묵을 지키며 듣고 있는 덩치 큰 중년의 수감자,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 그날 만난 그들은 정겨운 우리의 이웃일 뿐이었다. 가족의 소박한 식탁을 그리워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움, 그리움의 눈물이 찬양에 묻어나오는 그 순간 그곳은 따뜻한 봄이 있는 정원이 되었다.  

아우성

M은  여자 연방 교도소 채플룸에서 만났다. 나에게로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보여주었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손목에 깊이 깊이 고름과 함께 흉칙함을 드러낸 상처… 그녀는 자신을 주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챤이라 소개했다. 그녀의 간절한 기도의 깊이는 나의 가슴에도 파고 들어왔었다. 그녀는 감정의 아픔이 극도로 몰려올때가 있는데 그때는 자해를 하든지… 그 마음의 고통보다 더 아프게 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했고 자살 시도를 했으나 몇번 실패했다고 했다. 그녀의 답답함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마음의 고통에는 끝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내면의 극심한 아픔들, 절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수감자들도 있다. 오랫동안 가족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방문객이 없는 외로움, 가족들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등으로 인한 불안, 긴장,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한 교도소 땅, 그곳에 정해진 모든 규칙에 따라 살고,용서의 과정을 거쳐가더라도 사람을 상하게 한 고통은 질긴 거미줄처럼 수감자들을 둘러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아우성이다 내면 깊은 곳에 독하게 박혀있는 통증의 뿌리들을 뽑아내어 버리고 싶어서… M의 손목에 난 상처가 다 아물면 M의 정원에도 새들이 깃들겠지. 

견고함

얼마전 남자 교도소에서 만난 형제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20살된 딸을 둔 아빠이다. 그는 꿈도 있다. 교도소에서는 전도자로 불리워진다고 한다. 교도소의 체제나 일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관계의 어려움, 긴장감등도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는 그의 정원의 밭은 어떤 씨라도 품을만큼 견고해 보인다. 있던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살속 깊이 박힌 고통의 가시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간다. 한사람이 정원 자체가 되고, 그 정원을 심을 씨앗을 위해 잘 경작하고 가꿈으로 향기로운 정원을 이루어갈때 필요한 기본이며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물과 빛과 적당한 바람, 온도등이 필요하듯이  교도소에서 준비되어 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 외에 사회의 관심 지원, 기도와 보여지는 사랑의 섬김 그리고 방문은 건강한 정원으로 바뀌게 하는 필수요소들이라 할수 있다.  이제 교도소에서의 첫 시작점이 범죄자요 절망이라는 이름으로부터라고 한다면, 언젠가 끝날 교도소의 삶, 사망에서 생명으로 일어날  새로운 시작점을 위해 수감자들을 위한 방문길을 지역 공동체들과 함께 즐거움으로 걸어야겠다 다짐하는 이 시간 봄바람이 사방 가득 불어온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

수감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소개: 
(문의전화. 604-825-0077 / 이메일:holyflameministries@yahoo.com)
NAYA (NeverAgainYesAgain): 가석방자들을 위한 일일 캠프. 섬기는 지원자 모집.
BB Day(Be Blessed) : 매월 12일- BB day로 지정. 갇힌 자들을 위해 엽서쓰는 날. 좋은 글, 말씀, 기도, 그림 메세지… 등을 엽서에 담아 홀리 플레임으로 보내주세요. 
교도소 선교 설명의 날 2차 모임. 6월 23일 목요일 (오전 10시;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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