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원주민이해하기] 카누여정과 존중

카누여정과 존중

하루 종일 노를 젓고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샌드위치와 과일 하나로 카누 위에서 버티다 돌아왔기에 모두들 목마름과 허기로 지쳐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다들 모여 식사기도를 했고, 이후 진행자가 그룹별로 식사할 순서를 정해주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들 먼저!.“ 원주민 문화에서는 항상 어르신을 먼저 배려한다. 식사 후 모여서 노래를 할 때에도 어르신들이 먼저 나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 이후에야 젊은이들이 앞으로 나가 맘껏 노래를 불렀다. 그 외 어떤 모임을 하든 이들은 어르신을 우선으로 모신다. 선물을 나눠주거나 행사 순서를 진행할 때나 심지어 자리를 잡고 앉을 때도 항상 어르신이 먼저다. 지금의 젊은 세대를 있게 한 이전 세대를 존중해 주는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당시 원주민 전통 카누행사에 처음 참석한 한 백인 남성은 매순간 어르신 먼저라는 말에 탐탁지 않아하면서, 자신도 하루 종일 카누를 젓느라 힘들었는데 이건 이해가 안된다는 식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한국문화에서 자란 나로서는 ”어르신 먼저“라는 말에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한국문화에도 어르신을 먼저 대접하고 공경하는 문화가 있지 않은가. 이는 어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먼저 삶을 살아온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고 공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주민 어르신들은 식사가 배식처로 가서 마음대로 양껏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사람들을 위해 적당히 배식을 받았고, 젊은 사람들이 음식을 받아올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식사하면서 젊은이들을 배려하고 존중해주었다. 식사 후 한 어르신이 앞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며 전통 의식을 진행했다. 다들 침묵하며 모자를 벗고 의식에 참여했다. 분위기를 잘 몰랐던 나는 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원주민 친구가 내게 모자를 벗어달라고 하며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모자를 벗는 것은 의식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고 했다.

나는 원주민들의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외부 세력이 이들을 얼마나 무례하고 처참히 짓밟았기에, 이들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Elders First“라는 말과 ”Respect“라는 단어를 외치는 것일까. 백인들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원주민 말살 정책을 폈으며, 인격적으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했다. 원주민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스스로의 문화 사회를 유지하며 살았더라며 굳이 “어르신 먼저”, “존중하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전통과 문화가 백인 사회 속으로 흡수되고 기존의 가치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다음 세대에게 전통 문화와 가치를 전달해보려는 애끓는 몸부림은 아닐까. 올바른 권위가 추락하고 권위주의가 득세하는 사회 속에서는 젊은이들조차도 존중 받지 못한다. “어르신 먼저”는 젊은이를 무시하고 밀어내는 요구가 아니라 어른이 어른답게 서도록 기회를 주고 권위를 세워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존중하라”는 말은 다른 세월을 살아온 각 세대가 서로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대신 용납하고 이해하려 애쓰라는 뜻일 것이다. 건강한 권위로 다음 세대롤 보호하고 세워주는 어른상을 제시하는 원주민 전통 문화를 보며, 나 역시 어른답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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