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재유 선교사와 함께하는 원주민 선교 이야기] 눈이 내리면(11)

김재유 선교사와 함께하는 원주민 선교 이야기 (11) – 눈이 내리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네바다 산에, 금년 10월말에 첫 폭설이 내릴 예정이라는 기상예보를 보았는데, 바로 다음날인 11월1일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일주일을 계속해서 눈이 내려, 제가 살고 있는 에드먼턴을 꽁꽁 얼어붙게 하며, 빨리 완전한 겨울모드로 들어 갔습니다.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저는 집안에 머물면서 화롯불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으며, 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이곳 평원 원주민들의 삶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들소들을 따라 천막을 옮겨 다니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남자들은 들소와 사슴을 사냥해야 했으며, 여자들은 고기와 가죽을 분리해서 말리고 손질했으며, 열매가 풍성한 여름부터 가을 동안 베리 등 각종 열매를 따서 먹고, 또한 건조하여 겨울식량으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들소 등 각종 고기와 사스카툰 베리, 블루 베리, 딸기 등을 건조하고 분쇄하여 고기 지방으로 응고시킨 페미칸 (Pemmican)은 원주민의 전통 에너지 바 (Energy Bar)입니다. 페미칸은 파운드당 2000-3000 칼로리의 고농축 영양소를 공급해 주고, 무엇보다 저장과 이동이 용이하여 원주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여행을 많이 하는 모피 무역상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원주민들의 높은 수익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여정속에서도, 겨울이 다가와 눈이 내리기 전에, 칼바람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따뜻한 계곡이나 호수부근으로 천막을 옮겨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겨울에 할 수 있는 일은, 강이나 호수의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는 아이스 피싱 (Ice fishing)이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깥이 아무리 춥고 눈이 내려도, 천막안에만 들어오면 가운데에는 항상 모닥불이 타고 있어서, 탠트안은 언제나 따뜻했고 그 위에 걸린 주전자에는 언제나 뜨거운 물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봄, 여름, 가을동안 바쁘게 살아왔던 삶의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손질해 두었던 가죽으로 여자들은 가족들에게 필요한 옷이나 모카신 신발을 만들어서 다음해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천막안의 타오르는 모닥불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통과 문화와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유산과 지혜를 전수해주는, 소중한 교육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보통 마을마다 특별히 훈련받은 이야기 전승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전해오는 구전 기록들을 다음세대에 전승하고, 후손들을 교육하기에 가장 종은 시기가 바로 이 눈 내리는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원주민의 문화 유산을 돌아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바로 “주거환경 – 집”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원주민의 집’을 생각하면 서부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티피가 바로 생각 나겠지만, 사실 북미 원주민의 집은 주거지역의 환경에 따라 다양합니다. 캐나다에서도, 동부의 Long House, 중부지역의 Wigwam (Algonquians), 서부 해안지역의 Plank House, 북쪽 (Yukon)의 Pithouse, 에스키모(Inuit)의 Igloo, 그리고 넓은 평원 지역의 Tipi,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주민의 주거형태가 티피 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이제 평원 원주민들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구조인 티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에 있는 그림은 티피의 구성과 제작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티피는 5m 길이의 막대 13개 정도를 사용하여 고깔모양을 만들어 세운 형상입니다. 부족에 따라서 중심 기둥을 묶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먼저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중심기둥을 3개 또는 4개의 막대기를 묶어서 세우고 나서, 그 주위에 나머지 막대기를 세워서 고깔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바깥을 들소가죽이나 천막천으로 둘러 씌우고나서, 20개 정도의 팩을 사용하여서 티피를 땅에 고정합니다. 보통 티피의 입구는 동쪽을 향하게 설치를 하고, 겨울에는 내부 중앙에 모닥불을 피워서 난방과 조리를 합니다. 그리고 모닥불의 연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도록 윗부분에 통풍구를 만들고, 긴 막대기로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통풍구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른편의 사진에 있는 이 Tipi는 원래 Steve Illes라는 사람이 설계하였고, 캘거리 시가 1988 동계 올림픽의 상징물로 선정하여, 성화가 있던 McMahon Stadium에 건립했던 조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Amerigo (Rick Nella) Filanti라는 사업가가 이 티피 구조물을 구매하여 알버타주의 Medicine Hat시에 기증하였고, 지금은 이 마을의 1번 고속도로 옆에 옮겨서 건립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쎄미스 고고학 유적지의 이름을 본 따서 쎄미스 티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은 Madicine Hat의 상징물로 유명하게 된 이 쎄미스 티피는 높이가65.5m (215ft), 지름이 48.8m (160ft)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티피입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10개의 원판에 원주민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이 붙어있고, 티피 주변에는 마을의 이름이 Medicine Hat이 된 유래 등 많은 초기 평원 원주민의 삶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티피는 평원지역의 원주민들이 들소들의 이동을 따라서 함께 이동하기 쉽도록, 설치와 조립이 매우 간결한 가옥의 구조입니다. 또한 들소가죽을 씌워서 외부의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편리하며 원주민 조상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탁월한 주거 구조입니다. 지금은 물론, 평원의 원주민들이 티피에 거주하지 않고, 주로 전시나 전통 행사의 상징물로 사용되고 있지만, 티피는 원주민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최고의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주변 여러 곳의 원주민 유적지 부근의 캠핑장에 가서 티피에서 가족이 하룻밤을 묵으면서, 원주민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것도 참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김재유 선교사 (알버타 사랑의 군대)

칼럼을 연재하던 김재유 선교사니께서 지난 16일 밤10시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소천하신 김재유 선교사님과 유가족 장례예배를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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