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박창수 목사의 희년이야기 땅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

[칼럼: 희년 이야기] 땅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

땅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

제너럴셔먼호[General Sherman 號]는, 1866년에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평양 군민에 의해 불에 타서 침몰한 미국 상선이다. 그런데 이 배가 그 이름을 딴 제너럴 셔먼, 곧 셔먼 장군(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은 미국 남북 전쟁 당시 그랜트 장군과 더불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그 휘하에는 흑인 병사 1만 명이 소속되어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셔먼 장군은 흑인 지도자들과 면담하면서 흑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유뿐만 아니라 토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지가 없는 자유는, 생계를 위해서 다시 토지를 가진 백인 지주에게 소작농으로 예속될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흑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흑인들을 위해 셔먼 장군은 1865년 1월, 특별 야전 명령 15호를 통해, 각 흑인 가정들에게 조지아주 연안과 섬들에서 40에이커의 경작 가능한 땅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또 당시 북군은 다수의 불필요한 노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노새들을 한 마리씩 흑인 가정들에게 주었다. ‘땅 40 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40 Acres And A Mule)’의 소식은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로서 일해 왔던 토지를 받게 된 흑인들은 그 소식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새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과 의회의 다수 정치인들은 같은 해 8월, 셔먼 장군을 비롯한 소수 의원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그 모든 명령들을 폐지해 버리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자유를 얻은 400만 명의 남부의 흑인들은 땅이 없었고 집이 없었다. 결국 많은 흑인들이 다시 백인 지주의 밑에서 소작인이 되어 수확물의 50%를 바치고 비참한 빈곤으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배신감의 깊은 상처를 받았고, 그 배신감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3대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 새뮤얼 엘 잭슨, 웨슬리 스나입스는 모두 흑인 저항 운동의 지도자이자 영화감독인 스파이크 리(Spike Lee)와의 작업을 통해 그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대형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스파이크 리의 영화제작사 이름이 바로 ‘땅 40 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이다. 이것은 스파이크 리와 같은 예리한 흑인 운동의 지도자들이, 현재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흑인 차별과 흑인 빈곤 문제의 근원을 과거 남북전쟁 당시 토지를 흑인들에게 주기로 약속했다가 그것을 나중에 뒤집어버린 백인들의 배신에서 찾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미국 남북 전쟁 때 전사한 남군 병사를 가족으로 둔 남부 백인 여성이,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군 전사자의 무덤에도 꽃을 심어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숭고한 화해도 결국 흑인들을 배제한 백인들만의 화해였을 뿐이다. 이 소설에는 북군이 남부를 진격하면서 흑인들에게 ‘땅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를 나눠 주겠다는 발표도 나온다. 그러나 얼마 후 백인들은 그 약속을 배신하였는데, 그 목적은 북부와 남부의 백인들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남부 백인의 땅을 흑인에게 주면, 북부 백인과 남부 백인의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백인들의 배신에 큰 상처를 받은 흑인들의 입장에서 화해는 ‘그들’(백인들)만의 것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땅 40 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바로 토지가 없으면 자유도 없으며, 나아가 사회공동체의 진정한 화해와 회복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구약성경 희년의 토지법에 담긴 위대한 사회사상이기도 하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동족 히브리인은 노예로 부릴 수 없고 머슴으로만 고용할 수 있는데, 만약 희년에 머슴이 자유를 얻어 자기 고향집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자기 기업인 토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그는 다시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머슴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토지를 회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토지가 없으면 자유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토지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성경의 희년법은,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선언한 다음 바로 각각 그 기업(토지)을 회복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레위기 25:10). 부동산양극화와 빈부양극화로 신음하는 우리 시대에 모든 사람의 진정한 자유의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진정한 화해와 회복을 위해서, 희년 토지법에 담긴 토지 평등권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구현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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