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년 이야기] 나그네의 주거권

나그네의 주거권

레 25:29-30, “29.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30.일 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 안의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구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성 안의 집’의 경우, 사고 판 지 1년 안에 판 자가 무르지 않으면, 산 자의 영원한 소유로 확정된다. 이 규정에 대한 해석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가지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나그네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나그네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토지를 사더라도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살 수 있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판 자의 가까운 친족이나 판 자 자신이 토지를 물러줄 것을 요구하면 반드시 토지를 물러 주어야 했기 때문에, 자영농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은 농업 품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 24:14-15, “14.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이 신명기 본문에서 ‘품꾼’인 ‘객’(게르)은, 품삯을 당일에 받지 못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그네가 아니라 믿는 나그네이다. 따라서 이 신명기 본문을 통해서도, 성경이 특별한 보호를 명하는 나그네는 바알이나 몰렉 같은 이방신을 숭배하는 모든 나그네가 아니라,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말처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와 같은 신앙고백으로, 더 이상 이방신을 숭배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하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믿는 나그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방신을 믿는 이방인과의 결혼이 엄격히 금지된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이방신을 숭배하는 나그네가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시킬 수 있으므로, 이방신을 숭배하는 나그네는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금지되고, 오직 무역 상인들이 장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것만 허가될 뿐이다. 

그런데 이 신 24:14-15 본문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거하는 객’라고만 하지 않고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라고 한 이 표현에서, 나그네 품꾼은 보통 성문 안에 거주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외지에서 처음 온 나그네 가족은 성이 그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서 일자리 정보를 얻기 쉽기 때문에, 성 안으로 들어가서 품꾼 일자리를 구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그네 가족은 자연스럽게 성 안에서 자신들이 거주할 집을 구하려 했을 것이다. 

나그네들은 보통 곤궁하고 빈한한 농업 품꾼으로 시작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부유하게 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서 부유한 상태로 정착할 수도 있다(레 25:47,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런데 나그네들 가운데 부유한 사람들 역시 토지가 없기 때문에 자영농이 될 수는 없고, 그 대신 자기 재산을 밑천으로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데, 과일 가게나 대장간을 차리기에도 좋은 곳 역시 성 안이다. 성 밖은 사람들이 적게 살고 또 적게 오가는 반면, 성 안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또 많이 오가므로 과일 가게나 대장간을 차리기에 좋은 곳은 성 밖이 아니라 성 안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 나그네들이 성 안에 차린 과일 가게나 대장간은 그 나그네들의 집을 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성 안의 집마저도 토지법의 규정과 마찬가지로 무르기법과 희년 회복법이 적용되어,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집을 살 수 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 계약을 요구받을 때 물러 주어야 한다면, 나그네들의 정착과 주거는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성 안의 집은 무를 수 있는 유효기간을 오직 1년으로 제한하고, 1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희년이 오더라도 판 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산 자의 소유로 확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 안의 집을 사고판 지 1년 안에, 만약 그 나그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은 하지 않고, 반대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성읍 공동체는 그 나그네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가지고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고 분별할 것이다. 따라서 그 1년 안에, 그 나그네에게 성 안의 집을 판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 친족이 그 집을 무를 것이다. 그럼 그 나그네는 그 성읍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으므로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성 안의 집’은 사고 판 지 1년 안에 판 자가 무르지 않으면, 산 자의 영원한 소유로 확정하게 하신 것은 나그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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