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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희년의 주, 예수 그리스도

희년의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손으로 이삭을 잘라 먹은 날은 안식일이었다(눅 6:1). 그러자 어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라고 비난한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곡식밭에서 낫을 대고 거두어서는 안 되지만, 손으로는 이삭을 따도 된다(신 23:25). 따라서 제자들의 행동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이 비난한 이유는 율법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통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 가운데 안식일 율법을 적용하여 만든 세세한 금지 규정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긴다고 비난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근거로 삼아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은 일을 옹호하신다. 그리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신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主)이시다. 그런데 이는 예수님이 희년의 주(主)이시라는 뜻과 같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은 모두 ‘7’이라는 숫자를 기본 주기로 할 뿐 아니라, 안식과 자유라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안식일 관련법 또는 희년 관련법으로 통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희년의 주이신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본문(눅 6:6-11)에 의하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한가운데 일어서게 하신다. 그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손 마른 사람을 그들의 눈으로 직접 자세히 보게 하심으로써,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 왔을지 함께 느껴서,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의 잘못된 안식일 전통을 바꾸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안식일 전통에만 생각이 사로잡혀, 정작 자기들의 눈앞에 서 있는 그 불쌍한 손 마른 사람을 주목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질문하신다. 당연히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 바로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이다. 안식일의 주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 정신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럼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맥에서는 바로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그 손 마른 사람처럼 병든 사람을 치유함으로써 그를 병의 고통에서 해방하여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안식일의 주이신 예수님의 뜻이다.

안식일 정신과 마찬가지로 희년 정신 역시 바로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생명 살림은 희년 정신인 것이다. 따라서 희년 정신을 실천하는 교회란 바로 생명을 살리는 교회이다. 희년 교회는 생명 살림 교회인 것이다.

한국 교회는 희년 정신을 실천하여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생명을 위해 탐심을 물리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생명을 돌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몸과 마음이 병들 수밖에 없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낙태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태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땅과 동식물을 비롯한 피조 자연의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희년의 주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희년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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