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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창수 목사의 희년 이야기] 안 믿는 사람들이 지어준 예배당

안 믿는 사람들이 지어준 예배당

1989년 봄, 주일이 아닌 어느 공휴일, 당시 재수를 하고 있던 나는 모교회인 광주 양림교회(예장 합동) 청년부의 일원으로, 바로 옆에 이웃한 양림교회(예장 통합) 청년들과 함께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운교회 인근의 밭으로 보리 베기 봄 농활을 갔다. 당시에는 농활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한 청년들이 대의와 공공선을 위해 협력하는 정신이 광주에서는 살아 있었다. 

참고로 양림교회는 현재 기장, 통합, 합동 이렇게 세 교회가 있는데, 이는 한국 교회 분열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나 이 세 교회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강단 교류와 연합 찬양예배, 연합 체육대회 등을 함께 하면서 서로 친교를 나누고 있고, 봄과 가을에는 세 교회가 함께 양림동 선교사 묘역을 청소하며 돌보고 있다. 

두 양림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장성의 어느 밭에서 허리를 숙인 채 낫으로 보리를 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농민들이 이렇게 고생하며 농사를 짓는구나! 내 몸으로 농민의 삶을 배운 최초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허리 아픈 것을 참으며 힘겹게 보리를 베어가고 있는데,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 저 옆에서 함께 보리를 베던 이웃 양림교회의 한 선배 자매님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분도 나처럼 분명히 허리가 아프고 힘들 텐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찬송가를 부를 수 있지? 그분은 고된 노동을 찬송으로 극복하고 승화시키려 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찬송에서 삶의 고통을 이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대한 힘을 깨달았다.

그리고 장성 백운교회의 남상도 목사님이 우리 청년들에게 해 주신 말씀을 들으면서 역시 놀라게 되었다. 그 말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그 목사님과 백운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여러 운동들에 앞장섰고, 그런 운동의 성과로 농민들이 실제적인 혜택을 누리게 되자, 그 지역의 농민들이 신앙 유무와 관계없이, 백운교회는 농민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벽돌을 나르고 쌓아 예배당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까지 모두 나서서 농민들이 지어준 교회 예배당! 

장성 백운교회의 사례는 오늘날 우리 교회 앞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 지역에 교회가 있든 말든 그 주민들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면, 더 나아가 교회가 오히려 그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면, 이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써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 부름 받은(창 18:18-19) 교회의 중요한 존재 목적에 위배되는 큰 문제인 것이다. 

나는 희년 교회를 꿈꾼다. 한국 교회가 모두 희년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 희년 교회가 한국 사회와 온 세계에 희년의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서 희년 세상으로 개혁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까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벽돌을 나르고 쌓아 예배당을 지어주는 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희년 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시며 또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교회로 돌아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사진: 장성 백운교회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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