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의 복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속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비교하여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서로의 적대 관계 속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중간에 막혀 있는 담을 헐어 버리셨는지 언급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평화’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엡 2:13)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여러분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러므로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그리스도]는 자신의 육체 안에서 두 그룹을 하나로 만드셨고, 중간에 나누어져 있는 담 곧 적대감을 헐어 버리셨고, (15a) 법조문 안에 있는 율법의 계명을 폐지하셨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이방인들이 언약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서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때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어떻게 죄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이방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하신 은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속량(redemption) 곧 죄사함의 은혜(엡 1:7)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믿음으로 죄 용서함과 의로움을 허락 받았으므로(롬 4:25),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서로 분리되어져 있는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경첩(勁捷, hinge)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언약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대항하면서 하나님의 의로부터 벗어난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들의 평화(eirene: peace)이십니다.
‘평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구약적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샬롬’(salom: well-being, peace)입니다. 구약적 배경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샬롬’을 허락해 주시는 예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샬롬’이란 하나님과 언약(covenant)의 관계를 맺은 백성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샬롬’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어주시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15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righteousness)으로 여겨졌고(창 15:6),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람은 이 땅에서 ‘샬롬’의 복을 받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창 15:15). 둘째, ‘샬롬’이란 언약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Immanuel: God is with us)의 증거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야곱은 자신의 쌍둥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창 28:15)을 하셨을 때에 야곱은 ‘샬롬’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창 28:21). 셋째, ‘샬롬’이란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decrees)와 계명(commands)을 지키면(레 26:3) 언약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내용은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공급하심 가운데에서 땅의 소산을 얻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심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샬롬’입니다(레 26:6). 그러므로 구약적 배경에서 ‘샬롬’이란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주시는 복의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평화’가 되셨다는 의미는 새 언약이신(히 9:15)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혀 있는 적대감(hostility)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헐어 내셨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어떠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바로 서로를 향한 증오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영원히 구원 받지 못할 저주 받은 자로 간주하였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종교적 모욕감을 주는 민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막힌 담 곧 서로를 향한 증오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이러한 증오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평화’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감을 허무셨습니까? 바로 왜곡된 율법의 법조문을 폐기하심으로 서로를 향한 증오를 제거하셨습니다. 혈통적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를 받은 자신들만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모세의 율법에 울타리를 치고 지키려고 하였습니다(Mishnah Pirkeu Avot 1:1). 유대인들은 이러한 분리를 통하여 종교적 우월성을 강조하였는데 예수님의 ‘평화’의 사역은 이러한 종교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율법의 법조문을 폐기 시켜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만드는 사역입니다.
<함께 나누기>
- 구약 성경에서 ‘평화’(샬롬)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는 언약의 백성들에게 ‘평화’(샬롬)를 허락해 주시는 세 가지 방법과 특징은 무엇입니까?
- 어릴 적 여닫이 문을 닫을 때 한쪽은 문틀에, 다른 한쪽은 문짝에 고정하여서 문을 여닫는 경첩(hinge)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성도들을 연결하는 경첩의 역할을 하셨다고 하면 그 역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복을 얻었다고 하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평화’의 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평화’의 복을 받은 성도들은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지만 어려운 관계 속에 있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들의 믿음의 공동체에 이러한 막힌 담이 존재하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