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심, “인생의 중대한 변화”
이집트를 멸망시켰던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의 등장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Cyrus)는 여러 아내들이 있었지만 이집트 여성을 좋아합니다. 그의 아내들 중의 한 사람인 카산다네는 자신의 아들들 앞에서 왕의 부당한 대우에 관해 불평합니다. 그 때 장남 캄비세스가 말합니다. “어머니, 제가 장성하면 이집트를 완전히 뒤집어 놓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열 살쯤 되었습니다. 카산다네는 아들의 말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결국 캄비세스는 장성하여 왕이 되었을 때 이집트를 침략했습니다.” 마음의 결단을 표출하는 “뒤집어 놓겠다”는 단어는 희랍어 “티데미”입니다.
티데미는 그리스 로마 사회의 모든 대중적 및 교양 있는 계층에서 다양한 구문과 의미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낱말의 기본 의미는 사람과 사건 사이의 특별한 관계 형성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사람이 특별한 사건에 깊게 연결되는 행동의 동기를 표현하는 낱말입니다.
경제 활동에서 티데미가 사용될 때는 “돈을 지불하다” 혹은 “세금을 내다”를 뜻합니다. 스파르타의 왕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금전을 맡아 보관을 부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왕의 자손들은 금전을 맡았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원금 반환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아테네인들은 돈을 맡은 기억이 없다며 반환을 거절합니다. 결국 왕의 후손들은 델포이의 신탁에게 어떻게 해야 올바른지를 묻습니다. 신탁은 맡겨준 것을 정직하게 돌려 줘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후손들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결국 예언이 성취되어 그들의 후손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원금을 반환하지 않았던 자들이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군사의 세계에서도 티데미가 사용되었습니다. 아테네 인들에게 모욕을 당한 스파르타의 왕 클레오메네스는 복수를 위해 거대한 군대를 모집합니다. 곧 아테네의 네 도시를 동시에 공격합니다. 그러나 왕의 복수는 실패로 끝납니다. 이 낱말은 군사적으로 “공격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기를 갖고 있는, 즉 기병과 보병과 함께 복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전쟁과 관련하여 “어느 편에 속하다” 혹은 협상 준비의 표시로 방패를 땅에 “놓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경연 대회에서 티데미는 “상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다” 또는 “상을 수여하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토로이 전쟁의 핵심 인물인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기리기 위해 장례 경기를 개최합니다. 가장 먼저 전차 경주를 시작합니다. 그는 경주에 참가자들을 불러 모으고 승자들에게 수여할 풍성하고 위엄 있는 상들 (말, 금, 여인, 솥, 등)을 차례로 보이며 경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상을 타기 위해 사람들은 위험한 전차 경주에 참여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티데미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어둔 방을 밝히기 위해 등불을 등잔 위에 “놓다”로 (막 4:21), 병자를 치유하기 위해 방바닥에 “놓다”로 (막 6:56), 경제적 이익을 위해 “투자하다”로 (눅 19:27), 눈을 뜨기 위해 눈 위에 “안수하다”로 (막 8:23),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작정하다”로 (행 19:21), 배가 대양을 항해 하기 위해 “출항하다”로 (행 27:12), 사람이 통제권을 행사하도록 그 사람의 발 앞에 무엇인가를 “놓다” (행 4:35, 37; 5:2)로 쓰였습니다. 이 외에도 티데미는 사람이 마음에 계획한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우리 삶에 현실로 나타나는 사건들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묘사할 때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번역되는 티데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할 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결정은 아브라함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되는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며, 그리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은 유대인이라는 생식의 한계를 넘어서 이방 세계 한가운데서도 후손을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결심을 통한 아브라함의 선택은 새 창조를 의미합니다. 이 창조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에게 직분을 주셨다고 언급할 때, 바울은 티데미를 사용합니다.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나는 감사합니다. 주께서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셔서 당신을 섬기는 직분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신성한 직분자로 임명 받음은 성령의 역사로 되어진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신분으로 궁중 음식을 먹으라는 바벨론 왕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결심은 생명보다 하나님을 선택한 결단입니다. 이 일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었고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티데미는 “생명을 걸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라고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귀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했던 과업은 무너진 성전 벽의 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상실된 신앙과 공동체 질서 회복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공사가 끝나자 전국의 백성들은 성전 주변에 모여들어 봉헌식에 참여합니다. 성전 생활의 새 출발을 앞두고 모든 가정의 가장들은 자신들의 아내들와 아들들과 딸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할 바를 맹세합니다. “이 지도자들의 성명서에 따를 것을 결의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순종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맹세하고 만일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족 멤버 중에 누군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꺼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합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던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상황에 따라 내가 편리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결단합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 거대한 변화와 운동 뒤에는 언제나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리는 삶만이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내 가정을 살리고, 사회를 새롭게 하며, 국가를 정의로 세운다는 확신을 갖고 결단한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척 수윈돌은 “인생의 중대한 변화는 결심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엄숙한 결심 없이 당신의 삶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Life changing은 삶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고 결심할 때 발생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변화는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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