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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모범, “완벽한 역할 모델”

모범, “완벽한 역할 모델”

왕 율리시즈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나이든 늙은 종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그 종의 이름이 멘토였습니다. 왕은 가정의 모든 운영을 그에게 맡기면서 특별히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오랜 전쟁을 끝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율리시즈는 깜짝 놀랍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이 훌륭한 국가의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특출한 인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사이 아들이 유능한 국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호모는 자신의 글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멘토는 마음이 넉넉하여 인자하고 온유하며 거룩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봉사 정신과 올바른 시각을 보여주며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켰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나이든 멘토와 함께 살면서 그의 인격과 삶을 자신의 것으로 모방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이가 한 나라 잘 이끄는 특출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역할 모델을 희랍어로 “후포그람모스”라 합니다.  문안 작성, 견본, 혹은 모범이란 뜻도 있는 후포그람모스는 원래 고대 희랍의 초등 교육에서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이 낱말은 희랍소년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일반적인 필기 재료는 식물의 일종인 파피루스였습니다. 파피루스지는 주로 이집트의 나일 강둑에서 자라는 사초류로 만들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글 쓰는 기법을 가르칠 때 교사는 먼저 글쓰는 판 위에 줄들을 긋고, 그 다음에 펜과 함께 학습자에게 그 판을 줬습니다. 그러면 학생은 판에 이미 기입된 그 줄에 따라서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이렇게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학생이 글을 똑바르게 쓰기 위한 것입니다. 교사가 그어 놓은 선에 따라 글쓰기를 반복 연습하게 되면 학생은 똑바르게 글을 쓰는 습관이 붙게 됩니다. 두번째는글쓰기에 매우 능숙한 훌륭한 교사가 줄의 맨 윗 쪽에 학생이 쓸 내용을 적습니다. 학생은 그 교사의 글쓰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적습니다. 결국 학생은 그 훌륭한 교사와 같이 똑바르고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학생이 따라할 쓸 수 있도록 맨 위쪽에 그어져 있는 선과 내용을 후포그람모스, 즉 모범이라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범은 의미은 없지만 알파벳의 모든 글자를 포함하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모범 문장은 도덕적 금언과 신앙의 교훈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글에는 다음과 같은 후포그람모스의 예를 적고 있습니다: marptes, sfigx, klwy, zxnkqhdos. 교사는 단지 희랍어 알파벳트를 적었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학생은 교사가 적어 놓은 이 모범대로 따라함으로 글쓰기에 완벽한 기술과 습관을 얻게 됩니다. 또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과 종교적인 내용을 모범으로 하여 쓰기 훈련을 시켜, 학생들이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범의 목적에 관하여 클레멘트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후포그람모스는 기본적인 훈련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성장으로 진보하고 성숙의 정도까지 사람을 불타오르게 하고 빛나게 작동하는 말이다.”

   신약 성경에 “후포그람모스”는 단 일회 언급됩니다. 그렇지만, 이 단어의 배경은 생생하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을 언급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기에 사용된 “본”이 후포그람모스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발자취를 따라야할 휴포그람모스, 즉 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을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습니다. “소년이 완벽한 동판의 예를 따라 글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 학교의 학생들이며 교사이신 예수님께서 주신 완벽한 삶의 모범을 따라야 참된 신앙의 길을 배울 수 있다. ” 먼 옛날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여정에서 자신들의 모범과 본보기로 삼아야할 발자국을 그리스도께서 고난 속에서 남기셨다는 것을 배워왔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참된 신앙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역설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사랑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셨던 빈궁과 고난은 싫어합니다. 이 사람들은  잔치는 좋아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셨던 금식은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안에 있는 기쁨에는 참여하지만 예수님을 위한 고통에는 기꺼이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주셨던 떡은 먹지만, 고난의 컵은 마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도덕성은 존중하지만, 십자가의 모욕은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취를 감추고 잠시라도 그들을 떠나면, 이 사람들은 불평하기 시작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대신 예수님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이나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마치 최고의 위로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축복하고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셨고 보이셨던 그 삶이 기독교의 모범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언급한 후포그람모스는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로마의 교육자였던 퀸틸리아누스는 자신의 명저 『웅변가 교육』에서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모범에 따라 글을 써 내려갈 때, 교사는 아이가 글자의 스타일에 따라 정확하게 다음 줄로 바꿔쓰도록 도와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가 양쪽 가장자리 경계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도움으로 이런 연습을 자주함으로 학생은 자신의 손 스타일을 익힐 것이며, 이후로는 아이의 손 위에 다른 사람의 손을 얹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 질 것이다.” 처음에는 교사가 자신의 손을 학생의 손 위에 얹혀서 연습을 시킵니다. 그후 교사는 자신의 손을 떼고 학생 스스로 하게 합니다. 그러면 학생의 글은 경계선을 넘지 않고 모범을 따라 능숙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범대로 하기 위해서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베드로의 마음에도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처음부터 그대로 복사해야 하는 것은 종종 부담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기소침한 길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후포그람모스가 의미하는 것처럼 학생은 교사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교사의 손이 학생의 손을 덮어서 정확한 모범대로 그가 쉽게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홀로 남겨 놓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한 그리고 위대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사가 어린 학생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혀서 어린이가 모범을 익히도록 돕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를 수 있도록 성령은 멈추지 않고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완벽한 역할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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