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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문 door,” 새로운 기회

“문 door,” 새로운 기회

수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인생길을 갔고 그리고 가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놋쇠 세공인 자신의 아버지가 마을에서 가장 열등하고 멸시받는 계층에 속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허락된 기초 수준의 교육만 받았습니다. 어린 날부터 아버지의 일을 돕던 그의 삶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한달 뒤 의지했던 누나의 죽음으로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지 두 달도 못되어 아버지가 재혼하자 그는 큰 충격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곁을 떠난 그는 분별없는 깊은 어둔 생활로 빠져 들어갑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은 항상 두려웠고 불안했습니다.

자신을 고귀한 삶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마다 “나를 떠나소서 내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나이다”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강박감으로 우울증에 빠져 삶을 포기한 어느 날 “옛 세대들을 살펴보라 여호와를 믿으면서 좌절을 당한자가 있었는지 확인해보라”는 말씀이 그의 영혼을 세차게 두드립니다. 이 말씀은 그에게 위로와 함께 삶의 새로운 길을 보여줍니다. 그 이후 영국 문학사에 가장 탁월한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 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완전히 떠나지 않으시면서 설득이 아닌 심판과 함께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 심판은 자비가 함께 하는 심판이었다.”

   C. S. 루이스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교수로 수 많은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은 신을 경험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 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 시절 여름 학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낚시를 던지셨는데, 자신이 걸린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가 지칠 때까지 내버려 뒀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던진 낚싯바늘에 걸렸다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낚아 채셨습니다. 루이스는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환상적인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존 스토트는 지난 20세기 말에 기독교 역사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83세에 출판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그는 자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선택은 17세 때 예수를 믿겠다고 했던 그 결단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결단은 신앙의 부모님이 영향을 준 스승이 아니고 자신을 쫓아오시는 그리스도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도망치고 또 달아났지만 천국의 사냥개이신 그분이 은혜롭게도 자신을 추적해 주셔서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길을 갈 수 있었다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노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을 읽었던 1938년 2월 13일 청소년이었던 스토트는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구세주이시며 주님으로 들어오시기를 청했습니다. 그후 자신의 삶은 전혀 새로운 길로 열렸다고 간증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문”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낱말은 “뚜라”입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뚜렷한 강조점을 갖습니다. 첫째, 문자 그대로 방, 건물, 혹은 울타리가 있는 공간의 문입니다.고대 유대인들은 어느 집을 찾아가든 문을 두드리는 것이 사람의 바른 도리로 여겼습니다. 유대인 경전의 하나인『집회서』의 저자 밴 시라는 “나는 세 번째를 싫어 하고 네 번째는 사랑하지 않는다. 네번째는 노크 없이 남의 집에 갑자기 침입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를 미워하신다. 세번째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갑자기 자기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갑자기 자기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하물며 네 이웃을 집은 더욱 그러하리라.” “뚜라,” 즉 문의 두번째 강조는 비유입니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노크하여 집에 들어가는 아이디어는 또한 인생의 새로운 것을 찾는 방식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서인 토라는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는 방법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린다. 아들이 자비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열린 것이다.” 매우 단순한 원칙이지만 유대인들은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일들을 시작할 때는 두드림을 뜻하는 기도로 출발합니다. 노크하지 않고는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두드림과 후행동 (後行動)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유대인의 교육 방법으로 알려진 학가다 (Haggadah)에 왕과 그의 친구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왕의 친구가 궁전을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왕은 누가 문을 노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오픈합니다. 친구는 자신의 상황을 알렸고, 그 결과 왕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섬길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을 문이 열렸다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회개함으로 닫혀 있던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은혜로 인생의 기회를 열어 주시는 원리는 신약성경의 특징입니다.

“문”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두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한 것이라”고, 스스로 “문”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잠재된 뜻은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직분 얻은 자들입니다. 맡은 사역을 충성스럽게 행함으로 그리스도께 영광 돌림이 성도의 올바른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자신의 직무를 성도들에게 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평범했던 한 개인이 구원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문”은 거룩한 사명으로의 부르심 (calling)입니다. 사명을 주시어 새로운 사역의 세계를 여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불충실한 자들의 삶에 문을 닫는 권한도 갖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문은 기회의 낱말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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