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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십일조를 왜 합니까?“ 십일조 (2)

“십일조를 왜 합니까? “ 십일조 (2)

그림 형태인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로 기록된 자료에는 백성들이 황제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대 바빌론의 설형 문자 (楔形文字)가 새겨진 점토판(粘土板)에도 사람들은  통치자에게 십일조를 냈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고대 문명국이었던 그리스와 로마의 작품들 속에는 사람들이 신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거의 보편적 관습이었음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자료도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 국민들이 준수해야 하는 실제적인 법으로 시작되었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일조 바치는 것에 대한 고대 세계의 공통적인 요소는 그들의 신 (황제 포함)에 대한 신념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과 소유한 모든 토지와 가축의 주인인 신 (gods) 에게 믿음과 충성의 표시 (token)로 십일조를 바쳤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고대 사회에서는 가축과 곡물 수확의 첫번째는 인간이 먹을 권리가 없었다고 믿었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주인 되는 신에게 첫째를 바치는 것이 자연 질서로 받아들였습니다.

   인류의 기원과 질서가 세워지는 창세기에는 십일조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이 성장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그리고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 삼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받았지만 가인의 것은 받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가인의 제물이 거절된 이유를 십일조와 관련시킵니다. 3세기 사람 터툴리안은 가인은 십분의 일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드렸기 때문에 거절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번역한 창세기 4:7절은 가인이 자기 소산을 올바르게 분배하지 않았다고 번역합니다. 12세기 성 빅토르 (St. Victor) 수도원장이었던 휴고 (Hugo)는 가인은 첫 산물을 바치지 않았거나 십분의 일보다 작은 비율로 바쳤기 때문에 거절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께 자신의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고백합니다. 4세기 푸아티에 (Poitiers)의 교주 힐러리(Hilary)는 십일조를 지불하는 것은 태초부터 자연적인 계명이다고 말 했습니다. 

   십일조는 창조 질서입니다.  모세는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와 가축의 십일조 드리는 것을 율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도 십일조  드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는 창조질서 속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는 자신의 의를 얻는 수단이나 과시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가난하여 십일조를 할 수 없다고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말씀합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하는 충성된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왜 십일조를 요구하실까요? 조지 데이비스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타이틀의 논문에서, 신자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첫째,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했던 헌금에 대하여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증거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동기입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동기와 신실한 청지기적 자세로 하는 십일조는 약속하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넷째,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일조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농부가 햇빛과 비와 궁극적인 수확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땅에 씨를 뿌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물질적 소유에 대해 같은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헌금에 관해 언급하면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잠언을 소개합니다. 

   다섯째, 지역 교회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에서는 십일조를 드려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이 쓰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성전 봉사자와 구제를 위한 십일조는 신약 교회 사역의 자원으로 승계됩니다. 지역교회 사역이 십일조를 포함한 성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성경의 질서입니다.  

   건강한 성도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며 감사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율법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심지어 심한 환난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헌금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수입의 20% 혹은 30% 또는 그 이상  십일조 드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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