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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순종과 충성의 증거,” 십일조 (1)

“순종과 충성의 증거,” 십일조 (1)

수송아지를 잡아서 가죽을 벗깁니다. 그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장작으로 쌓아 올린 제단 위에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작 제단에 불을 붙입니다. 만약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율법에 따라서 예배를 상징하는 제사를 드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아마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동물 학대죄로 체포될 것입니다. 새 언약 아래 있는 오늘날 신앙인들은 옛 언약인 율법에 자동적으로 구속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슴이라”고 표현합니다.  특정 사회 질서에서 한정적으로 사용되었던 종교 예식과 노예 제도 등과 같은 윤리 생활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원리를 십일조에 적용하여 율법 아래 있는 십일조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십일조를 하는 사람을 향하여 율법주의자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율법의 규정들이 신약 성경에서 재천명되거나 제 언급되는 경우는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십일조는 새 언약에서도 여전히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이전에 등장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모든 신앙인의 대표인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훈련시킨 군사 318명과 함께 당시 네 나라가 동맹한 강력한 군대와 전쟁합니다. 포로가 된 조카 롯을 구출하고 몰수당한 그의 재산을 되찾기 위한 이 전쟁에서 아브라함은 크게 승리합니다. 개선장군이 되어 고국에 돌아 오는 중에 소돔 왕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소개하는 살렘 왕 멜기세덱이 그를 영접합니다. 멜기세덱은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며,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전쟁 중에 빼앗은 물건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7장은 멜기세덱을 메시아를 뜻하는 “정의의 왕” 그리고 “평화의 왕”으로 표현합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축복하며 십분의 일은 받은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야기의 실제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셔서, 언제나 그의 백성을 돕는 제사장의 일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강력한 동맹군과 싸워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십일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십일조는 땅의 소유주는 여호와이며, 그곳에서 생산되고 태어나는 것들도 사람의 소유권 이전에 하나님께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소유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반복적으로 말씀합니다. “처음 태어난 것은 다 내 것이다. 너희 짐승 가운데 소든 양이든 처음 태어난 것은 다 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 즉 오늘날 목회자를 포함하여 모든 성도가 십일조를 지킬 것을 기대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라는 신앙 고백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이 원리가 잘 드러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 조항의 준수를 극 단적으로 고집하여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드렸지만, 십일조의 근본 정신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 삶의 주인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들이 심한 환난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쳤고,  극심한 가난 속에 시달리면서 헌금을 많이 했다고 칭찬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했다고 덧붙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근본 동기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에게도 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자신들이 가진 모든 소유-그들의 영혼까지도-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기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헌금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소유에 관하여 “네게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언급합니다.

   율법시대나 은혜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내 삶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습니다.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과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 고백은 십일조를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여 벅찬 감사로 드리는 십일조는 더 많은 은혜를 가져오게 됩니다. 바울은 헌금에 관해서 이렇게 조언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하심이라.”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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