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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명령, “왕의 위임”

명령, “왕의 위임”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레스 시켈로스의 글에는 이집트 왕들의 생활에 관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이집트 왕들의 일상 생활은 독재 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여 생활하고, 모든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정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행위에는 규정된 모든 종류의 법으로 통제되었다.”  법으로 번역된 희랍어는 “에피타게”입니다. 이 낱말은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모든 법보다 더 권위있는 자로부터 선언되고 출발하는 최상위 법을 뜻했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에피타게를 왕의 명령으로 사용했습니다.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127 개 지역 국가들을 식민 통치할 때 그 나라의 왕은 아하수에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이룬 거대한 부와 위엄과 영광을 축하하기 위해 백성들을 왕궁 뜰로 초대하여 큰 잔치를 합니다. 그 때 왕은 궁내 모든 관리들에게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포도주를 가져다주라”고 명령(에피타게)합니다.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이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백성에게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왕의 에피타게, 즉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기원전 1세기에 기술되었다는 유대인의 지혜서에는 우상숭배가 사회 전반에 만연되었던 사실을 여실이 드러내 줍니다. 불경건한 풍습이 점점 강해지면서, 왕들은 새긴 우상을 섬기도록 명령하여 (에피타게) 법으로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후 유대인들 사이에는 민족적 타락의 시대를 묘사할 때 “왕들의 명령으로 새긴 우상을 숭배하였다”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이 낱말은 왕의 명령이었으며,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었습니다.  

   지혜서의 또 다른 곳에서는 이 낱말이 왕 대신에 하나님과 관계하여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인화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주의 전능하신 말씀이 하늘 곧 왕의 보좌에서 뛰어내려 멸망의 땅 한 가운데로 들어가시니 엄한 전사가 주의 참된 명령의 예리한 칼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며 거짓 없는 명령, 즉 에피타게입니다.지혜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명령 (에피타게)에 순응하는 모든 창조물들은 그 성품이 새롭게 된다”고, 말씀의 기능을 적습니다. 희랍어 에피타게는 신성한 명령의 모든 위엄을 간직하고 있는 낱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기수 (騎手)였던 바리우스 폴리오는 하나님의 명령인 에피타게에 순종하기 위해 신들을 명성을 남기기 위해 기둥을 세웁니다. 희랍어 에피타게는 신성한 명령을 의미하는 낱말이 되었습니다나일강 주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중에 희랍어로 기록된 것에는 이 단어가 왕들의 명령을 의미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뜻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에피타게는 바울 작품에 두드러지게 쓰이는 낱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편지형식의 글에서 이 낱말을 두 용도로 사용합니다. 첫번째는 자신이 전달하는 충고, 교훈, 그리고 메시지와 관련하여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결혼 생활의 어떤 문제와 관습에 대하여 언급할 때, 바울은 이 낱말을 사람이 허락한 내용과 에피타게의 의한 내용인지를 구별하면서 사용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는 결혼한 부부가 각방을 사용하는 것은 기도할 시간 이외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며, 인간인 자신의 의견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대조합니다. 바울은 인간의 실제 생활에서 단편적인 조언과 하나님의 질서, 즉 완벽한 조언을 대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처녀에 대한 조언을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 (에피타게)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사람인 자신의 의견과 창조자 하나님의 명령을 비교할 때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처녀에 관하여 자신이 말하는 모든 의견은 자기 생각이지,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처녀들에게 명령하신 내용으로 간주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에피타게는 인간  사상과 하나님의 말씀, 즉 사람의 조언과 하나님의 명령을 대조할 때 사용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에피타게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동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목적을 추진하시는 하나님의 행동들은 선지자들의 신비한 계시, 즉 하나님의 명령 (에피타게)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위를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글을 쓰면서 자신이 전도하는 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명령 (에피타게)을 하나님의 강력한 위임 행위로 표현합니다.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 (에피타게)을 따라”라고, 하나님에 의한 거룩한 위임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에피타게를 사용하는 바울의 글에는 거룩한 신적 행위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명령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에피타게는 그리스도인에게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왕의 명령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거룩한 위임 행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로서 자신의 임무와 교회의 사도로서의 자기 직분은 하나님의 에피타게, 즉 왕권의 명령에 의해 그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을 극도로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왕의 명령에 의한 부르심을 다른 방식으로도 표현합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택하셨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신을 왕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에게 사역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소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가 사명의 길을 직업으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사명자로 선택하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자로 위임을 받았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통째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대사”로 위임 받았습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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