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하늘향한 책읽기] 강영안-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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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향한책읽기_강영안, [읽는다는 것], IVP, 2020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이 질문을 철학자가 일반 대중들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저자인 강영안 박사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을까? 제2회 우리들 교회 싱크 포럼의 주제는 ‘말씀묵상과 공동체’였다. 이 때 저자가 강연자로 발제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주제가 ‘읽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자적인 정리였다. 강의 후 쏟아지는 질의응답에 시간관계상 답을 다하지 못한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내놓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읽는다는 것]이라는 책이 되었다. 

저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며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신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력만 본다면 이 책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인 정의와 논의로 온갖 형이상학적 단어의 각축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방향을 그렇게 잡지 않는다. 

전체 대중들을 위해서 쉽게 풀어 쓸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저자의 학자적 양심은 또한 수박 겉핥기에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래서 취한 방법은 밀당의 방법이다. 동양과 서양의 읽기 전통을 가로지르며 화려한 필체를 드러내 보이다 가도 금세 어린아이의 동화책에 나올 듯한 따뜻한 설명을 조근 조근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상학, 해석학, 칸트의 인식론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를 열거하기도 하지만 금세 자전거 비유와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대학자의 세심한 배려와 겸손이 배어 나오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을 비유로 읽는 것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다. “자전거는 바퀴가 두 개다. 뒷바퀴에 체인으로 연결된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며 앞바퀴에 연결된 핸들로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고 아무리 잘 읽어도 우리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라.”고 아무리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자전거를 타지는 못한다. 

정보를 알고 잘 읽어낸다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다가 넘어지면서 배우게 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결국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읽기라는 것은 삶 속에서 적용하면서 살아 보아야 비로소 읽은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생각하고 예배드림이 우리 인간에게 단지 생존 수단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의 존재방식이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저자는 인도 선교사였다가 은퇴하여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과의 만남을 술회한다. 저자는 레슬리 뉴비긴에게 ‘당신은 복음주의자인가요?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뉴비긴은 복음주의자들이 제일 성경을 읽지 않기에 자신은 적어도 복음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또한 성경을 읽지만 읽은 대로 살지 않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러면 안 읽으면 어떻게 되는가? 저자는 읽지 않으면 세상을 내다보는 창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이야 말로 자신의 테두리, 좁은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한 창’이라고 한 유진 피터슨의 말을 인용한다. 책이라는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아야 하며 책이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어 타자와 만나는 통로가 막히게 되는 것이다.  

인류는 스스로를 세계 속에 무심히 던져진 존재이거나 죽음을 향하여 가는 존재로 본다. 그러나 성경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경이라는 창을 통해서 보면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보이게 된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창조세계가 다시 회복되며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일상에서 읽어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우리 눈의 조리개를 맞추게 되고 노출을 조정하게 된다. 그 빛을 통해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생각하고, 살아낼 삶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창을 통해 우리의 삶이 읽어질 때 우리는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읽는다는 것을 말씀대로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임을 강조한다. 오늘도 읽기를 통해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에 일광욕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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