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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_갈릴리교회 김광식 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_요 21:15-19 

갈릴리교회 김광식 목사

할렐루야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최애입니다. 오늘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각 심령 가운데 주 의 음성이 들려지는 축복의 시간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마지막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우리는 꼬박 1년이란 시간 동안 요한복음의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그동안 나눈 주의 말씀들이 여러분들의 삶의 기준이 되고 삶의 열매가 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 으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요한복음 21장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장면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 의지하여 

앞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 닫고 있었던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두 번의 평강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세상이 주는 안식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안식은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는 참 된 안식이 되는 줄 믿습니다. 또한 세상이 주는 안식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마르게 되지만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안식은 다시는 목마름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이게 진정한 안식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심 많은 사람이요, 믿음이 약한 사람이라 평가하던 도마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주에도 살펴보았지만 도마는 진정 의심이 많고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는가? 도마는 진정 부활하신 주님을 불신하고 믿음에서 떠나려고 했던 사람이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을 더 확실히 알고 분명히 믿고 싶었기 때문에 질문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오히려 다른 제자들보다 신앙의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요.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마가 가졌던 이 신앙의 열정과 정직함,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회복해야 신앙의 자세인 줄 믿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은 디베랴 호수, 곧 갈릴리 바다였고 그곳에는 베드로를 비롯해 여섯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나’. 베드로의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를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갑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하지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nothing. 그렇습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nothing의 시간을 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 보고 애써보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시간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일들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간이 제아무리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고 회복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둘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예수님께 두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때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요한은 이들이 잡은 물 고기의 수를 153마리라고 밝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제자들은 말씀 한 마디에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실로 엄청난 은혜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의 능력을 경험 하는 유일한 길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 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먼저는 요한복음 2장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결혼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 흥이 깨진 상황,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기적의 기쁨을 누구만 안다고 말합니까? 돌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워 연회장에 딜리버리한, 순종한 종들만 알았다고 말합니다.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 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그런가하면 열왕기하 5장의 말씀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장군이었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영어 성경으로 보면 ‘BUT’ 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나아만의 인생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이 ‘BUT’ 이라는 한 단어 때문에 그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BUT’이라는 단어가 언제 깨어집니까?? 인생의 고통과 아픔을 주었던 이 ‘BUT’ 이라는 단어가 언제 부셔집니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할 때 순종함으로 새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혹시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도 이 ‘BUT’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고통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습관적인 것이든.. 이것만 없었으면 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언제 깨어지고 부서집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그물을 오른쪽에 내리라’ 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돌 항아리에 물을 담고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입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순종이 주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생각과 주장과 경험이 주님의 말씀보다 앞서지 않도록, 오로지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으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 다른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먼저 드려져야 할 기도의 제목은 ‘우리 자녀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되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순종함으로 은혜를 경험하는 자녀들 되게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줄 믿습 니다. 제가 금요 집회 때마다 집회에 참석하는 다음세대 아이들을 위해 안수 기도해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 바로 이 기도입니다. ‘주님 이 자녀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혜의 역사들을 경험하고 누리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 은혜를 누리시는 우리 다음세대 친구들과 모든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일평생 주의 말씀에 순종하되 기쁨으로 순종하시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예비 된 주의 은혜 풍성히 경험하시고 누리시길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나눌 두 번째 주제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나누십니다. 그리고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따로 세 번의 질문을 하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질문인데요. 15절 말씀입니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 질문은 16절과 17절에도 반복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15절 말씀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실 때 ‘이 사람들 보다’, 그리고 ‘더’ 라는 비교급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실수를 한 번 더 콕 찝어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베드로의 실수를 이렇게 꼭 찝어서 말씀하고 있는가? 사실 과거 베드로는요. 예수님께 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실 때 나는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고 섬기겠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무슨 말입니까? 다른 제자들은 몰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뭔가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내 믿음과 결단은 다른 제자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간혹가다 우리도 베드로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성도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남들과 달라. 내 신앙은 4대, 5대째 신앙생활하고 있고 심지어 우리 가문에는 순교자도 있다, ’ ‘ 다 주를 버릴지 몰라도 나는 주를 위해 모든 걸 다 헌신할 수 있어’ 라고 호언장담하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부인하였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내 신앙은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주님을 더 적극적으로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이러한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 ‘이 사람들 보다’, 그리고 ‘더’ 라는 표현을 강조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은 이렇게 베드로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시고 그 치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시는 속 좁은 분이십니까? 우리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를 품지 못하시고 아픔을 끄집어 내셔서 3번씩이나 되 물으시는 잔인한 분이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베드로의 실수에 집중하시는 이유는 베드로의 실수와 아픔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그의 실수에 집중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사가 암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전이 없어 건강을 회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의 근원과.. 실수의 근원과.. 질병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해 주시기 위해 스스로 그의 실수와 아픔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자신의 실수와 아픔을 목도한 베드로는 그제서야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도 3번의 답변을 드립니다.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 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늘 연약하고 부족하고 주님을 부인하던 우리가 드려야 할 고백은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만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예배하고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 고백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주제는 이것입니다

◈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사명을 부여해 주십니다. 15 …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 우리가 관심해야 하는 부분은 예수님께서 베드 로에게 ‘내’ 양 곧 ‘자신’의 양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자에게 당신의 양을 맡겨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자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어린양, 저와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엇인가?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학업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분에게는 가정을 돌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맡겨진 비즈니스가 그리고 어떤 분들에게는 교회의 봉사가 사명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들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그 사명 끝까지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 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그리고 하나님이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기도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시편 102: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사무 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그러므로 날마다 기도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시길 바라고 날마다 기도함으로 주께서 맡기신 사명 끝까지 잘 감당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기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순종이 형통의 비결이며 순종이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이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복된 인생들 되게 하옵소서. 또한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만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상황과 형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는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며 따르기로 다시한번 결정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옵소서. 그렇게 하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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