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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2022년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으로(창세기 37장 1절-5절)_말씀교회 김성문 목사

2022년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으로(창세기 37장 1절-5절) 

말씀교회 김성문 목사

우리와 같이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신앙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 하거나 축복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성경속의 인물이 있다면 요셉과 다니엘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이민자들처럼 요셉과 다니엘 두 사람 다 본국을 떠나서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즉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했다는 것 입니다.

세계사에서 보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때 이집트 역사의 왕조는 힉소스 왕조의 세누 스레트 2세와 그리고 세누스레트 3세 시기로 이집트 역사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이때에 이집트가 전성기를 이루었고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가보면 세누 스레트 3세 (BC1878경) 즉 요셉이 총리로 활동 할 때 만들어 진것으로 추정되는  조각품중에 “사람의 두상을 돌로 조각 하여 만든 조각상 밑에 이 외국인 총리가 우리를 구하였다” 이런 글귀가 쓰인 조각상이 있습니다.

요셉이 7년간의 풍년 기간과 7년 흉년기간 동안 정책을 잘펴서 이집트와 중동근동의 모든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게 살아날수 있도록 한 것을 일반 이집트 사람들도 고마움을 가졌기 때문에 요셉의 흉상을 조각하여 고마움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로서 구약의 말씀을 신화나 설화로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역사적인가? 하는가를 우리가 또한 알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성경 말씀이 정확한 역사적 진실인지요? 소름돋지 않을수 없는 것 입니다.

이런 느낌의 백배 천배가 여러분이 천국문 앞에서 천국을 들어 갈때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천국이 현실이 되어 정확한 역사적인 진실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분명히 이런 찬양을 할줄 믿습니다. 예수 믿기 잘했구나 ~ 성경말씀 그대로구나~.  바울사도처럼 여러분 중에도 이미 꿈속에서라도 천국의 기쁨을 가져본 분들은 성경말씀 그대로 이루어 지는것을 조금이라도 맛을 본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천국의 기쁨을 꿈속에서 아니 비몽사몽간에 느껴본 사람으로서 조금은 압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천국가는 그 말씀의 진실이 천국문 앞에서 나를 통해서 우리 각자를 통해서 성경 말씀 그대로 밝혀질 것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창세기 본문의 말씀인 요셉을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에게 꿈이 있었습니다.그 꿈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요셉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세요. 그러면 그 꿈은 이루어 질것입니다. 물론 꿈이 없이 사는 사람 보다는 이런 꿈을 가지고 사는것이 백번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들이나 자녀들이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듣고 꿈을 가진다 해도 자기의 꿈과 신념대로 요셉 같이 총리가 안되기 때문에 좌절하거나 신앙의 회의를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요셉의 비젼이 단순히 외국에서 총리가 되어 성공하는 것이 요셉의 비젼 이였던 것이였을까요?

여러분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비전’과  우리가 흔히 늘 사용하는 ‘비전’은 그 의미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전이라 할 때는 보통 ‘꿈’이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비전은 그저 추구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을 통하여 성공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에서 ‘비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은 ‘허존’이라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보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관점에서 ‘당신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여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개인의 소원을 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비전과 목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만일 ‘밴쿠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고 싶다. 올해에는 꼭 결혼하고 싶다,  좋은 차를 갖고 싶다,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라는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비전 이라기 보다 개인의 목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표는 있는데 비전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목표를 비전으로 알고 나아가면 설령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 해도 자칫 허탈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전은 지속적인 생명력이 있기에 자기의 삶에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 창세기 12장 1절-3절인“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의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비젼으로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해에 말씀하신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는 비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살기좋은 문화도시 발전된 고향 땅 하란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한 땅을 향하여 인간적으로 보면 힘들고 외롭고 무서운 그당시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나그네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젼으로 가족을 데리고 떠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을 갖게 되었을까요?

요셉의 경우는 정확한 시점을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요셉도 아브라함과 같이 비젼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는 비젼을 약속 받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자식이 없어 실망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신다고 또 다시 비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노예가 되어 사백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겠고, 그들이 섬기던 애굽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신 후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는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인 땅에 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 땅에 가야만 하는 그 과정을 다룬 것이 창세기 37장-50장에 나오는 소위 요셉 통해서 역사 하시는 비젼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7장-50장의 그 말씀들은 요셉이 어떻게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굳센 신념으로 애굽의 총리에 올라 인간적인 목표를 달성했나?  이런것을 촛점을 두고 말씀 하시지 않고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촛점을 두고 요셉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말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애굽 땅에 정착하게 되는 그 과정을 창세기 37장 부터 말씀 을 보면 여차 여차 하여 요셉 형제들의 질투와 시기심으로 요셉은 졸지에 은 20에 팔려 노예의 신분으로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방 땅인 애굽에서 요셉은 자기 운명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는 어린 노예가 되었으니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여차 여차 하여 애굽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칠년 풍년 뒤에 임한 칠년 기근을 잘 대처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런 과정에서 자신이 노예로 팔린 것이 단지 형들의 질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비젼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세에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젼의 약속이 그의 후손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요셉을 통하여 계속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요셉을 요셉되게 하신분은 하나님의 열정 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 각자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앙적인 눈으로 보면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섬기게 된 것은 세상에서 총리가 되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중요한 사건인데 이것은  나의 어떤 노력과 공로라기 보다는 나를 향하여 비젼을 품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인 것입니다.  

한편 출애굽기 1장은 야곱의 가족 70인을 언급하면서 시작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10장22절 에서는 요셉후 400여년이 지난후에  “애굽에 내려간 사람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하늘의 별같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창세기 15장에 있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혈육을 통한 후손의 비전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아브라함 당시 아브라함은 최고의 문화 수준을 가진 삶의 뿌리인 하란을  떠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비전을 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의 성취를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충분히 맛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비젼의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삶의 자세가 그의 후손들인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때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자신에게 말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남깁니다.

창세기 50장에 보면 요셉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자기가 죽은 후에 애굽 땅에 묻지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묻히게 해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다함께 애굽을 떠날 때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면서 형제들에게 맹세를 시킵니다.  과연 요셉의 비젼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 죽은 후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기는 하였으나 애굽땅에 아주 매장하지는 않고 약 350년 동안 잘 보관하여 두었다가 출애굽 할 때에 모세는 급하고 바쁜중에도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가난안땅을 향하여 갔습니다.

여호수 24장32절에 보면 여호수아를 선두로 하여 요셉의 후손들은 요셉의 유언을 끝까지 지켜 마침내 요셉의 뼈를 가나안땅 세겜에 장사하는 비젼을 완성하였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비젼의 사람 요셉은 단순히 그의 비젼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잘먹고 잘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살았고 그 비젼을 그의  후손에게 전수한 비젼의 사람 이 었음을 성경은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신 비젼은 무었입니까?  이름난 부자가 되겠다. 능력있는 사람이 되겠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겠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겠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비젼을 이루는 작은 방편일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2022년 초에 하나님으로 부터 비젼을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 -50장 까지를 보면 이런 비젼을 받았던 요셉의 특징들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환경과 고통스러운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였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항상 최선을 다 했다.  이런 많은 특징들을 발견할수 있지만 그 중에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비젼의 사람 요셉은 다른 사람들을 살려주는 특징을 가진 사람 이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고통스럽게 만든 형들을 22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고 소개했을 때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이 말은 그가 원한과 증오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해 주는 것 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으로 팔려 온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자신을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를 형들에게 말하며 위로했습니다.

창세기 50장에 보면 요셉이 보복할까 두려워 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라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죽일려하고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안심시키고 위로 까지 하면서 사람을 살려주는 요셉이였던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자신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비젼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원한과 분노는 사라지게 될 것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비젼의 사람은 오히려 원한과 분노를 준 사람에게 위로를 줄수 있을 것 입니다.

현재 우리들 속에는 과연 요셉과 같은 마음입니까? 아니면 원한과 분노로 가득차 있습니까?

‘귀신의 종’에서 ‘예수의 종’이 된 박에녹 목사는 이영표 선수등 많은 축구 선수를 전도 하였고 대한민국축구 선교회 대표목사가 된분인데  이분의 간증을 들어 보면  센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무당일수록 욕을 더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충만한 비젼이 있는 성도들은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가득하게 되는 비젼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런 비젼의 사람 요셉을 통하여  가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70명의 가족에서 430년 후에는 장정만 60만 명이 되고  남녀 노소 다 합하면 200만~300만명이 되어 가족에서 민족이 되는 통로로 삼으신 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요셉은 말할 수 없는 시련과 연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또한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요셉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비전을 함께 이룰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가정, 이웃, 일터, 교회, 사회에서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2022년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으로  요셉과 같이 비전의 통로가 되어 복 된 비젼너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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