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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부모를 잘 모실 때 찾아오는 축복(엡 6:1-4)_토론토 영락교회 송민호 목사

부모를 잘 모실 때 찾아오는 축복(엡 6:1-4)

토론토 영락교회 송민호 목사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연합예배로 드립니다. 

자식을 위해 한평생 수고하고 헌신한 부모를 기억하고 잘 모시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도리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47년간 자폐아들과 살아온 엄마의 일기”라는 제목의 그림일기책을 누가 보내왔습니다. 토론토에 사는 80이 넘은 한 어머니가 1970년대에 캐나다로 이민와서 낳은 자폐아들과 함께한 인생을 돌아보는 그림책입니다. ‘장애 아들을 안고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던 내 인생을 이제는 80이 되어 거의 마칠 무렵이 되니 감사로 바꾸신 그분께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시작합니다. 책에 보면 아들을 키우며 일어났던 여러 해프닝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했습니다. 밴쿠버에 살 때, 버나비산 중턱에 있는 오일 저장 탱크에 달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아들을 소방대원이 구조했던 일, 토론토 CN 타워에서 아들을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은 일, 여자 화장실에서 소스라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아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던 일 등 … 여러 사연을 담았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47년 동안 전전긍긍하던 내 인생에 오셔서 잠잠하게, 큰 능력으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손길로 이 아들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1977년,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자폐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들을 안고 한 발짝도 앞으로 살아갈 힘이 없었던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순간순간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내 몸이 함께 무너져가는 아픔을 겪었는지요? 그러나 돌아보니 아직도 내 심장이 내 안에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고, 내가 끝까지 내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

특별한 자식을 위한 사랑도 대단하고, 대부분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헌신적 삶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모든 문화 속에는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고 고맙게 여기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수백 년간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유교 사상 안에서도 ‘효’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떼고 난 다음 <명심보감>이나 <동몽선습>을 배우기 전에 아동이 알기 쉬운 <사자 소학>을 가르치는데, 그 책 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자식 된 자로서 어찌 효도하지 않으리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여도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 본래 효도는 모든 행함의 근본일진대, 부모님을 섬기는 데에는 지극한 효로써 하고, 봉양하는 데에는 정성을 다할 것이니라. 부모님 섬기기를 이같이 한다면 가히 사람의 자식 된 자라 할 것이나, 이같이 하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그래서 부모를 섬기는 ‘효’를 중시하고, 그런 도덕적 가치관에서 ‘효도’라는 인간 질서가 나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경과 유교의 가르침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도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성경과 유교에서 가르치는 ‘효’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십계명의 말씀을 바울이 인용하면서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강조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이것은 사도 바울의 코멘터리입니다. 여기서 그 ‘약속’이란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네가 잘되고’ (형통) ‘땅에서 장수하리라’(장수)의 복입니다.  

먼저, 형통의 복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요셉에게 억울한 일이 여러 번 일어났지만, 결국 그에게는 형통의 복이 임했습니다. 세상 살면서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뜻하지 않는 불행이 찾아오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네가 잘되고’라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얽히고설켰던 일이 잘 풀리고 좋은 해결책이 나와서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장수의 복도 소중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80을 살면서 건강하게 산다면 그것은 장수의 복입니다. 요즘 백 세 시대라며 80세는 장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무리입니다. 고통 없이 백 세를 살면 장수이지만, 온갖 병으로 고생하며 백 세를 사는 것은 장수의 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80을 살아도 건강하게 산다면 그것은 장수의 복입니다. 그렇게 해야 시편 128편의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식의 자식을 보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렇게 형통과 장수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소년 시절부터 바다에 꿈을 가지고 선원이 되길 원했습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져 선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에 짐을 싣고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할 때 아들이 떠나는 것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를 보고 그는 즉각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어머니를 저렇게 슬프게 하면서까지 내 꿈을 좇을 수는 없다’며 그는 다른 일을 찾기로 한 것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이렇게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네 장래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소년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를 공경하면 축복받는다는 성경의 약속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부모를 잘 모셨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일찍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형통의 복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부모를 경히 여기면

출애굽기 20:12에 나오는 ‘부모를 공경하라’에서 ‘공경’이란 히브리어 단어에는 ‘무겁게 여기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즉, 부모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만사에 형통하며 장수의 복을 누릴 것이라는 성경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부모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이 형통과 장수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매사에 형통의 복이 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를 업신여기고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이런 경우를 적나라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경히 여기는 사람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십시오. 그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삼상 2:12). 이들이 제사장 집안의 신분으로써 회막 주위에서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며,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가장 기름진 부위를 가로챘습니다. 

아버지가 안타까워서 자식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삼상 2:25) 

하지만,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미 때는 늦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은 어려서 해야 합니다. 머리가 커진 후엔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정신건강 학자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은 여섯 살 이전에 인성의 90%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분명한 경고가 있었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가볍게 여기며 불순종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합니다. 전쟁에서 남편 비느하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그날 서둘러 아기를 낳았고, 아들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의 집에서 떠났다’일 것입니다. 엘리의 집안이 망합니다. 그날 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아버지 엘리도 충격을 받아 사망합니다. 

부모의 말을 경히 여길 때 일어나는 비극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여기서 바울은 기독교의 효 사상이 유교의 효 사상과 그 근원이 다른 것을 알려줍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내용은 비슷한데, 기독교 윤리에서는 ‘주 안에서’라는 수식어가 들어갑니다. 이 표현 속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순종에 조건이 달린 것 같지만, 오히려 더욱더 조건 없이 광범위한 순종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님을 섬기는 태도로써’ 혹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부모를 잘 모시고 공경하는 그 도덕적 근본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삶이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동기 부여를 가져다줍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산 부모라면 어떤 자식이 효도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때론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부모에게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오히려 편애로 인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부모가 사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했다면, 한쪽 부모에 치우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 사랑이 조건부가 됩니다. 때론 부모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우리를 채찍질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관계는 이제 ‘주 안에서’라는 렌즈를 통해 다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태도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에게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4절). 부모도 자식을 양육할 때 늘 ‘주 안에서’라는 수식어를 마음에 두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관이나 철학,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우리는 부모를 모실 때도, 자녀를 양육할 때도,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가족 윤리는 유교가 가르치는 효와 다른 점이 분명합니다. 효의 기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된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을 의식하며 주께 순종하듯 하라는 것이며, 자녀를 양육할 때 내 인생철학이나 가치관을 전수하려 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훈계로 하라는 것입니다. 

유교의 효는 하나님의 존재와 상관없는 인본주의적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기독교의 효는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가르침입니다.

소유 의식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면 안 됩니다. 주의 교훈과 주의 훈계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저주는 축복으로 바뀝니다. 

시어머니가 아주 미워서 괴로워하던 한 여성이 친정어머니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막말을 솔직히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이렇게 코칭을 했습니다. ‘노인이 과식하면 빨리 죽으니까 밥마다 떡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딸은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시어머니에게 맛있는 떡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매일 맛있는 떡을 선물받던 시어머니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며느리도 시어머니에게 따뜻한 감정이 생겨 오래 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저주가 사랑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마도 친정어머니의 지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싫어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바뀌며, 저주하던 마음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리에 의한 섬김과 공경이 아니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하듯 부모님을 대하십시오.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부모에게 효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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