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진수장로의 성공적인 실패(3)]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

성공적인 실패(3) -문은 두드려야 열린다

삼척공전 2학년 때, 나는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삼척공전에 입학한 첫해였다. 각 동아리 마다 소개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기독교 학생회였다. 매일 아침 수업 시작 전에, 기독교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교실을 방문해서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기를 권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그들이 올 시간에 맞춰 일부러 학교 옥상으로 피해 있곤 했다. 그러다가 다음해 여름, 중학교 친구가 다니는 성당에 들르게 되었고, 그때를 계기로 내 안에 교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친구의 성당에 다니기에는 그 위치가 집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가 다니는,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반에서 모범적이고 성실하여 나는 그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솔직히 궁금했다. 나는 나의 친구를 찾아가서 교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삼척 제일감리교회에서 첫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소한 시도는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 편입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공전학교 4학년 때였다. 대학 편입의 뜻을 아버지께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단호하셨다. “안 된다. 우리 집 형편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들어간다 해도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거냐?” “아버지! 첫 편입학금만 도와주세요. 이후부터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대학을 졸업할게요. 번데기 장사라도 할 자신 있어요.” 

공전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두 시간밖에 영어를 배우지 못한 까닭에,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나는 하루 열 시간 이상씩 영어 공부에 매달렸고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가서 텅 빈 교실에서 밤 열 시까지 영어를 파고들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공부하다가 자정을 넘기는 바람에 야간 순찰대에게 발각될까 봐 대로를 피해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통해 귀가한 적도 있었다. 집 근처에는 공립도서관이 있었는데, 책 열람실과 독서실로 분리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잘 잠겨지지 않은 도서관 창문을 통하여 도서관으로 들어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도서관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도둑공부를 하기도 했다. 

2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삼척공전 졸업과 동시에 나는 인천에 있는 인하대학교 전기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런데 막상 편입학 시험에 합격하고 보니 입학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당시 입학금은 아버지께서 감당하시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누님과 친구였다. 누님은 당시 요긴한 곳에 쓰려고 정기적금을 들었는데, 만기일을 몇 달 앞두고 해약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편입학금에 보태주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가 일부의 돈을 빌려주었다. 편입학 시험을 볼 즈음에 나는 한국전력에 입사시험을 치른 끝에 1차 실기시험에 합격한 상태였다. 시험에서 최종 합격할 경우 연수원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4개월의 기술연수 기간을 거쳐야 하므로,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합격 통지를 받은 나는 1년간 학교를 휴학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5월 당시 나는 한국전력 연수원으로 입소해 첫 연수생활에 들어갔고, 전국 각지에서 소집된 신입사원들과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인천 지역으로 발령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4개월의 연수기간이 끝날 무렵, 나는 신임 근무지가 자기가 태어난 본적지 위주로 발령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본적지는 삼척, 편입한 학교는 인천, 말하자면 두 곳은 극동과 극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천 발령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 이었다.

내가 의지할 데는 하나님 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나는 연수원의 교수님 한 분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기독교인이신 그 교수님은 나를 도와주기를 원하지만 능력의 한계가 있으시다면서 연수원 부원장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알려주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부원장님을 만나 도움을 청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기도한 후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기도를 했는데도 가슴이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인가?” “저는 학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부원장님의 질문에 나는 내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듣던 부원장님은 흔쾌히 말씀하셨다. “내가 도와주겠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 문을 두드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용기를 나에게 허락하셨다. 그 후 나를 잘 알던 한 친구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사실 나에게서 용기가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1차 발령은 부원장님의 도움으로 서울전력소로 발령이 났고, 다시 처음 부탁했던 교수님의 도움으로 학교와 가까운 서울전력소 산하 부평변전소로 발령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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