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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행복을 당신 손 위에_인생의 훈련소(2)

행복을 당신 손 위에_인생의 훈련소(2)

교인 분들은 대부분 할머니로 거친 성격이시지만 정이 많은 분들이셨다. 수시로 교회에 오셔서 열심히 기도하시고 우리 집에 들러 냉장고도 자주 열어 보시며 무엇이 있는지 나보다 내 살림을 더 잘 아시는 것 같았다. 토요일이 되면 주일 식사 준비를 위해 담임목사님 사모님과 교우 분들이 준비하러 오셨다. 남편이 전도사로 일하던 원천교회는 주일날마다 국수를 먹었는데 이를 위해 전날 반찬 준비 같은 걸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 집 오픈이 그때는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또한, 나는 남편을 늘 오빠라고 불러왔는데 결혼 후 바로, 여보 혹은 전도사님이란 호칭으로, 그리고 편하게 썼던 반말을 깍듯한 존댓말로 바꿔야 했다. 나는 어느새, 공인이 되어 있었고 사모가 되어 있었다. 집 안에서 하는 이야기도 어찌나 밖에서 잘 들리는지,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가 유리 상자 안에서 늘 웃고 있는 인형 같이 여겨졌다. 거기에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은 수시로 일어났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삿짐 상자가 좁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많은 짐 정리를, 할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오자마자 담임목사님과 함께 교회 일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군목 출신이신 담임 목사님은, 혼신을 다 해 목회에 전념하셨던 분으로, 남편과 나의 중학교 시절 교회학교 선생님이셨다. 남편은 새벽기도회 때 나가면 자정이 되거나 혹은 더 늦은 시각에야 집으로 돌아왔고 결국, 식사도 나 혼자 먹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아무것도 모른 채 적응할 새도 없던 나에게,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닌 철저하게 전도사님이었다. 

더욱 외롭게 나를 고립시켰던 것은 환경의 영향도 컸다. 편히 밖을 나가기가 어려웠다. 출산 후에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한 번 시키기 어려웠던 건, 내 집 앞에는 늘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교인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하루에 4번 오가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 면 소재지로 나가기도 어려웠고 나는 방 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외출은 집 밖에 있는 화장실과 교회뿐이었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때는 초콜릿을 왜 그렇게 먹고 싶었는지…. 

그때부터 인 거 같다. 하나님은 특별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생각만 해도 사람들을 통해 직접 전달해 먹여 주셨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거 같은 일이 있다. 바로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우리는 결혼식 때 사용했던 크고 하얀 결혼 초가 있었다. 그 초에는 눈금과 숫자가 쓰여 있었는데, 매년 결혼기념일 날 초를 켜서 기념하라는 의미였다. 결혼기념일에도 남편은 무척, 바빴다. 12월에 결혼한 탓일까? 늘 바빴던 남편… 

그날은 조금 일찍 들어와 저녁도 같이 먹고 특별한 이 초에 불도 켜보고 기도도 드리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담임 목사님과 일을 하느라 12시가 넘어서 들어왔고 나는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속상하고 외로웠던 밤이었다. 

남편만 내 곁에 없는 게 아니었다. 내 곁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친구 한 번 만나러 가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대학원을 서울로 통학하고 있어서 한 줄기 빛과 같이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남편은 주님께로 향한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고 성품이 온유해서 다른 사람의 부탁에 거절도 못 하는 사람인데다 또 남을 돕는 걸 즐겨했던 성격이었다. 게다가 말도 없는 편이라 나는 늘 심심했다. 우리의 영적 레벨이 달라서인지 늘 갈등을 느끼곤 했다. 물론 내가 한참 밑으로 느껴지니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남편은 자기 자신까지도 온전히 주님께 드릴만큼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사모의 ‘사’자도 모르고 단지 남편이 좋아 결혼한 철부지였던 것이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사라지면서 대화의 부재가 커졌고, 급기야는 대화를 해도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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