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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형님 목사(이석환 목사) 20주기를 추모하며

형님 목사(이석환 목사) 20주기를 추모하며 

늘 하는 말이지만 돌아보면 세월이 참 빠릅니다. 벌써 20년입니다. 머릿속엔 얼마 전의 일 같은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님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석환목사님(토론토 영락교회)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그 분이 누구이길래 20주기가 되었다고 추모를 할까?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느 인생이든 한번 오면 가야만 하는 길인데, 유달리 그를 추모하며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토론토에 남긴 그의 족적이 아직도 마음 속에 커다랗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별히 저에겐 형제의 정도 있겠지만 같은 목회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늘 목회를 하면서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질문하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형님도 늘 목회할 때마다 은퇴하셨던 아버님 목사님에게 이런 저런 일을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평생 목회하셨던 아버님은, “목회자는 속이 까맣게 썩어야 해”했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형님은 아버님의 서재에 걸려있었던 ‘목양일념’(牧羊一念)‘의 액자를 캐나다로 가져와 자신의 서재에 걸어놓고, 정말 자나 깨나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을 꿈꾸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은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17년만에 첫 안식년을 갖기로 한 불과 몇 개월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영원한 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1년정도 재충전하고 그동안에 ’용장(勇將)과 맹장(猛將)‘으로서의 목회자에서, 이제는 ’지장(智將)과 ’덕장(德將)‘으로서, 제 2기의 목회사역을 위해 준비하겠다며 꿈꾸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실 이민의 삶에서 물질적으로 육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이민자들과 두 번의 성전건축, 또 추운 겨울철에 40일 새벽기도등 정말 목회자들도 꺼려하는 일들을 추진해 나갔을 때 얼마나 많은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들었을까? 상상만 해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그 때 순종하며 따랐던 분들이 큰 일군들이 되어 그동안 교회 부흥의 일선에 우뚝 서 계셨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땐 가족 홈페이지가 있었습니다. 늘 형님은 주일 밤 11시쯤에 “이제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씁니다”라며 어렵고 속상한 이야기도 털어놓으면서도, 늘 목회에 감사하며 이민자들의 아픔을 나누며 이민교회의 사명을 써놓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형님은 참으로 강한 모습이 많이 있었지만, 의외로 너무나 여리고 정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달리 가정과 가족의 대소사간을 잘 챙겼고, 특별히 자신의 교회와 교우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뇌리에는 다 사라지고 있겠지만, 그의 열심과 희생만은 교회와 토론토 땅에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고 3, 대학 2학년이었던 아들과 딸도 이제 가정을 꾸려 열심히 일하고 있고, 형수님(염영란사모)은 여전히 마음 속의 공허함을 달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20주기를 맞이하며 더 이상 이런 글도 쓰기가 어려울 것이며 다 추억 속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기억해 주시고 함께 마음에 간직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요환목사(토론토소금과 빛 염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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