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교계뉴스캐나다 화를 내는 것과 훈계하는 것

[특별연재] 화를 내는 것과 훈계하는 것

화를 내는 것과 훈계하는 것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해 본다. 캐나다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되어 배로 부친 짐들이 도착해서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였다. 남편은 한국 방문 중이어서 아이들과 무거운 짐들을 옮기고 가구를 정리해야 했는데 며칠 동안 잘 도와주던 큰 아이가 그날따라 짜증을 내면서 입을 내밀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짜증내는 아이를 보니 화가 나서 큰 아이에게 화를 내면서 도와주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말하고 작은 아이들과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제일 힘이 센 큰 아이가 모두 함께 해야 할 집안일을 하면서 짜증을 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그 일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또 필자를 우울하게 했다.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 늘 하듯이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려고 모였다. 그 날은 필자가 기도할 차례였는데 그 때까지도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전혀 기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가 화가 나서 대표로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누가 대신해 줄래?”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더니 큰 아이가 “저도 짜증이 나서 죽겠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은 엄마 대신 셋째가 대표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필자는 잠을 자려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셋째가 자러 가지 않고 엄마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 해 봐.” “하지만 엄마한테 이런 말 하려고 하면 자꾸 눈물이 나와요.” “그래도 해 봐.” “저는 어른들이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어려서 잘 모르니까 가르쳐주어야지, 화만 내면 뭐가 잘못됐는지는 모르잖아요. 엄마가 화를 내면 저는 엄마가 무섭다는 생각만 들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는 모른단 말예요. 그래서 엄마가 화를 낼 때는 가슴이 답답해요.”

그렇다. 이 열 살짜리 아이의 말이 맞다. 어른들은 자녀가 화를 내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어른들 자신은 마치 화를 낼 권리라도 있는 듯이 쉽게 화를 내고 큰 소리를 친다. 왜 그럴까? 그 근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어리다는 사실 때문에 은연중에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어리더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긴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존중하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존대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인격의 요소들, 즉 생각하고 깨달을 줄 알며(智), 감정을 가지고 있고(情), 의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意)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말은 실제로 아이들을 대할 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며, 부모가 어떤 말을 하면 그들이 이해하고 깨달으리라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도 감정이 있어서 슬플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고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스트레스를 느낄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글의 서두에서 말한 아이들과의 일이 있던 날, 필자는 막내의 지적을 받고 바로 큰 아이에게 갔다. “아들아, 아까는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하다.” “ . . . ” “그런데 너도 엄마한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죄송합니다.” “너는 왜 그렇게 짜증을 냈니?” “사실은 오늘 해야 할 숙제가 많은데 어머니께서 자꾸 부르셔서 그랬어요.” “그랬구나. 다음부터 그럴 때는 숙제가 많아서 집안일을 돕기 힘들다고 말을 하면 더 낫겠지?” “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것을 하마터면 밤새 아이를 미워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지낼 뻔했다. 물론 아이 편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 부모는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것을 훈계나 꾸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옳지 않기 때문에 자녀를 올바로 이끌어주기는커녕 서로 간에 원망과 미움의 감정만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우를 돌아보건대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에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올바로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보다 미움의 감정이 앞섰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이들은 생각이 모자라는 듯이 보일 때가 많은데 대부분 그것은 그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무시하거나 화를 내도 될 이유가 아니라 가르치고 이끌어주어야 할 이유이다. 아이들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생각이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의 권위에 압도되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훈계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기 위해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다. 훈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훈계를 들으면서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녀는 결코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기르십시오.” (엡 6:4, 현대인의 성경)

박진경 (전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inquiry@familyalive.ca)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