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 자유의지
흔히 손대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경우, 비유적으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말한다.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를 ‘사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냥 가설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금단의 열매는 영어로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뜻이다.
5세기 초 제롬이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다가 ‘악’이라는 단어와 ‘사과’라는 단어가 공교롭게도 말룸(malum)이라는 같은 발음과 철자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미술가들이 에덴동산을 그리면서 사과를 그렸고, 존 밀턴이 그의 문학작품 ‘실낙원’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명명했기에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듯하다. 실제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 ‘무화과나무’로 몸을 가렸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해석한다. 미켈란젤로도 시스티나 성당에 그림을 그릴 때, 선악과를 ‘무화과나무’로 그렸다. 그 외 포도, 석류, 감귤, 커피 열매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올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했기에 자유의지(선택의지)를 준 것이다.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발적인 순종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일 많다. 처음부터 아예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거나 인간이 손대지 못하는 것에 두었다면 인간이 죄로 인한 타락도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담과 하와는 뱀(사탄)의 유혹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좋은 시절은 가버렸다. 죄의 유혹은 늘 달콤하지만, 그 대가는 처절하다. 이후로 남자는 노동을 해야만 했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요즘 결혼하지 않는 여자의 경우는 예외로 하자), 뱀은 평생 흙을 먹고 배로 기어다녀야만 했다.
무엇보다 원죄로 인해 아담의 후손인 우리들은 원죄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더불어 자범죄를 범하는 상태가 되었다.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과 인간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진 것이었다. 에덴동산에서는 매일 하나님과 아담이 만나는 친밀한 관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더 어려워졌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그래서 성경은 성악설에 가깝다. 이후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과 겨루려다 언어를 혼잡게 한 하나님의 손길로 인류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출애굽 한 히브리 백성들은 매사에 원망과 불평으로 일삼았고, 사사기 시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다.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툭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없는 것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나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가. 또한 자기주장이 강하고, 내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원수로 생각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늘날의 선악과는 무엇일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열매인지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인간 복제, 마약도 예로 들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인간이 문명의 이기로 사용하고 있는 기기들 즉 스마트 폰도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거나 잘못 선택함으로 인해 나의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는 것들 또는 우리 사회 공동체를 모래성처럼 허물어뜨리려는 것들이 포함될 수도 있다.
흔히들 죄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혹독하다고 말한다.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 “부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작품 4대 비극 즉 “맥베스”, “리어왕”, “햄릿”,”오셀로”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잘못 사용되어지는지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죄 유혹의 시작은 늘 비슷하다. ‘딱 한 번만 해봐’. ‘남들도 다 하는데, 괜찮아’. 나의 마음을 부추긴다. 달콤하게 속삭인다.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인생 망친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다. 죄악을 분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능하다. 시편 기자의 말처럼 시1 편, 시 19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해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다. 나의 죄를 극복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고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현대의 가장 심각한 상황이 무엇일까? 무교회주의자가 늘어나는 것이고, 세속화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보다 세상을 즐기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이것이 우상이고 죄인 것을 왜 모를까. 분별하고 깨어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가 슬피 울며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진종 <시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