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이상열 선교사의 원주민 이해하기 카누 – 서로 끌어안고 함께 가는 길

[칼럼:원주민이해하기] 카누 – 서로 끌어안고 함께 가는 길

카누 – 서로 끌어안고 함께 가는 길

카누의 크기는 다양하다. 어떤 부족은 7인승 카누를 가져 오기도 하고 또 어떤 부족은 28인승의 거대한 카누를 가져 오기도 한다. 우리 부족은 24인승 규모의 큼직한 카누를 가져갔다. 24인승 카누는 크기는 물론이고 무게도 상당히 나간다.

나는 그 큰 카누를 우리 야영지에서 어떻게 강까지 옮길지 꽤나 걱정스러웠다. 우리 부족에는 힘이 약한 어르신들이 몇 분 있었고 몸이 불편한 이들도 있었을 뿐 아니라 어린 아이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내가 힘을 많이 써야할 테니 꽤나 힘들겠구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우리 부족 힘만으로는 24인승의 카누를 직접 옮기기가 불가능했다. 타 부족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한 번 정도야 가능하겠으나, 매일 두 번을 강과 야영지를 오가며 남의 힘을 빌어 카누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는 건 민폐아닌가. 심지어 어떤 날은 4번을 오가야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수심이 가득한 나와는 달리 우리 팀 어느 누구도 근심의 빛은 없었다.

카누 출정의 첫 아침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든 부족들은 각자 준비한 20여척의 카누를 차로 끌어 강가에 모였다. 전체 행사 진행자가 나와서 출발 순서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참석한 모든 청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니것내것 할 것 없이 모든 부족의 카누를 번쩍 들어 강으로 옮겼다. 그뿐 아니었다. 부족별 야영지를 돌보는 대원들까지도 모두 제 일처럼 달려들어 일제히 카누를 옮겼다. 모든 카누를 강에 띄우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멈추지 않았고, 어떤 카누도 먼저 출발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카누 여정 내내 변함 없이 지속되었다. 하루 종일 노를 젓느라 완전히 녹초가 되었는데도 끝까지 모든 카누를 옮기고 나서야 자기 부족 야영지로 돌아갔다. 혼자 안절부절하던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카누에 손도 안 대는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 생기지는 않을까 의문도 들었다. 혹시나 하고 대원 제라드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하루 종일 노 젓느라 힘이 빠졌을 텐데 굳이 남의 카누까지 옮기는 건 너무 힘들지 않은가?” 그랬더니 제라드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힘든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우리 부족의 할머니는 요리로 돕고 계시고 장로는 기도로 우리를 돕고 계시지 않나. 내게는 힘이 있으니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내 부족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는 카누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한 가족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하는 것 뿐이다.”

각자가 가진 은사와 능력으로 서로를 돕는 것이 공동체를 세워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대원 중에는 20대 중반의 에반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15분 정도 카누를 젓더니 이후 2시간 동안은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 있었다. 젊은 친구의 그런 게으른 태도가 꽤나 불만스럽던 나는 카누 대장 브랜든에게 저 친구 왜 저러냐고 물었다. 사실 에반은 마약 중독자였는데 마약을 끊으려고 용기를 내어 카누 여정에 참석한 것이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15분 노동은 일반인의 2-3시간 노동에 맞먹는 정도니 그 친구를 이해해달라는 브랜든의 말을 듣는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그를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를 저으며 서로를 섬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극히 새마을 운동적 사고방식으로 그를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했다. 이후 나도 이들과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더 빨리 더 멀리 나가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목표가 아니라, 육체적 한계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한 걸음씩 서로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것이 근본적 목표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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