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누와 장로의 기도
다음날 아침이 채 밝기도 전에 우리 부족 장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조심스레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전복 조개 껍질과 산에서 채취한 각종 말린 허브가 있었고, 그는 말린 허브를 조개 껍질 위에 놓고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태운 허브에서 나오는 연기를 우리가 머문 캠프장과 각 사람들의 텐트를 향해 손을 저어 날려 보냈다. 스머징(Smudging)이라는 원주민 방식의 기도였다. 또한 그곳에 있는 모든 카누대원들의 귀와 눈과 입과 코를 향해 연기를 보낸 후, 이후 팔과 다리와 온몸으로 보냈다. 오늘 하루 머리로는 항상 좋은 생각을 하고,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으며, 목에서는 좋은 말이 나오고, 다리로 이동하는 곳마다 좋은 일이 있으며,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무거운 짐이 가볍게 되도록 기도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기독교인 가정에서 자랐다. 새벽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경을 펴서 한 장을 읽으시고 한 시간 동안 기도하셨다. 자녀들이 옆에 누워 잠을 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배는 365일 끊이지 않았다.
우리 부족 장로는 카누에 참석한 우리 부족의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드려 주었다. 심지어 처음 이번 카누에 참석한 나까지도 그들의 가족으로 받아주면서 기도해 주었다. 방식과 대상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장로가 우리 대원들을 위해 축복해 주려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그 진심을 알기에 모든 대원들은 그 장로 앞에 줄을 서서 기도 받기를 원했고 그 기도로 힘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을 아무 말 없이 연기를 피워 기도해주는 장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원주민이 산과 들에서 가져온 허브를 피우는 것에 대해 마치 비밀스러운 것을 가져와서 의식을 진행하거나 마술적이고 신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그런 의미를 담아 의식을 행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서로를 축복해주면서 당면한 역경을 이겨나가려 애쓰는 것 같다.
기도가 끝난 뒤 나는 그 장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서 대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니까?” 장로는 나에게 답했다, “이것이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해줘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동역자나 롤 모델 하나 없던 불모지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도하며 믿음을 지켰던 우리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가야하는 원주민들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치유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이 공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