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재유 선교사와 함께하는 원주민 선교 이야기] 진실과 화해(9)

김재유 선교사와 함께하는 원주민 선교 이야기 (9) – 진실과 화해

세계사에서 가장 잔혹한 인종학살 (Genocide)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 (Holocaust)과 북미 대륙에서 유럽 이주민들의 정착과정에서 저질러졌던 원주민 학살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태인 학살 사건은, 가해자인 독일이 전쟁에서 패망하여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온 마음으로 사죄하고 있어서, 그 상처가 많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은 지금도, “그들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고 그 날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오늘날까지도 직접적인 가해자인 전범들을 끈질기게 찾아서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주민 학살 사건의 경우는, 가해자가 오히려 정복자와 승리자가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피해자인 원주민은 지금도 외딴 원주민 마을에서 또는 빼앗긴 땅인 도시의 구석진 곳에서, 그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하여 고통받으며 열악한 삶을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땅을 빼앗기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전통과 자존심과 삶의 희망까지 다 상실하고, 전통적인 가정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에는, 원주민 기숙학교 (Indian Residential School)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점진적 개화법 (The Gradual Civilization Act)과 인디언 법 (Indian Act)에 근거를 두고 식민지 동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고, 실제 운영은 교회들이 하였습니다. 기숙학교들 중 약 3/5을 카톨릭 교회가, 약 1/4을 Anglican 교회가 운영했다고 합니다. “원주민 아이 안에 있는 인디언을 죽여라(Kill the Indian in child)”라는 슬로건 아래, 원주민 어린이들을 백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과 종교, 그리고 언어로 개조시키는 과정에서, 온갖 학대와 인종차별과 불법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

기록들을 보면, 120년 이상의 기간동안, 135곳에서, 5-16세의 원주민 어린이, 약15만명이 기숙학교를 거쳐갔으며, 그들 중 약 4100명 (많게는 6000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에 부모님들께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기숙학교를 통해 끔찍한 고통을 경험한 약8만여명의 원주민들이 생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숙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의 명단과 기록들도 아직 다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뒤늦게나마, “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TRC)가 2008년에 구성되어, 6년의 기간동안, 6500명 이상의 증언을 들으며 자료를 수집하여, 2015년에는 기숙학교의 진실을 규명하고, 원주민과 캐나다인 사이의 화해를 위한 94개 항목의 실천 촉구 (Calls to Action)를 요구하는, 총 6권의 4000페이지에 달하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펜데믹이 성행하던 2021년 5월부터 7월 사이에 BC주의 캠룹스 기숙학교터에서 215구의 미확인 무덤이 발견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사스카츄완주와 BC주의 3곳의 옛 기숙학교 터에서 1200 여구의 원주민 어린이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덤이 발견되면서, 다시한번 원주민들의 쓰라린 상처를 덧나게 하는 슬프고도 기막힌 일이 발생 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옛 기숙학교 부근의 어딘가 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원주민 어린이들이 묻혀 있다는 안타까움입니다. 하루빨리 발굴하여, 그들의 부모형제에게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다가오는 9월30일은 국가 진실과 화해의 날 (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입니다. 이 날은 2021년부터 캐나다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오렌지 셔츠 데이 (Orange Shirts Day)라고 불려 지기도 하는 날입니다. 이 오렌지 셔츠 데이는, 2013년에 기숙학교 생존자인 필리스 (Phyllis Jack Webstad)가 B.C. 주의 윌리엄 레익 부근의 St. Joseph Mission (SJM) 기숙학교 추모집회에서 자신의 기숙학교 경험을 발표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필리스가 6세에 기숙학교에 끌려갔던 날, 입고 있던 모든 옷이 벗겨졌고, 할머니가 새로 사 주셔서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했던, 새 오렌지색 셔츠도 벗겨져서 다시는 돌려받지 못했던 쓰라린 상처를 토로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오렌지색 셔츠는 기숙학교가 어떻게 원주민 어린이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빼앗아 갔는지를 상징하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렌지색 셔츠가 “모든 어린이는 소중하다 (Every Child Matters)”라는 표어와 더불어, 기숙학교가 원주민 아이들을 그들의 가정에서 빼앗아 가서 강제적으로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려고 했던 어두운 역사와,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전통과 자존심마저 약탈해 갔던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되새기면서, 모든 민족의 문화 유산이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지난 7월말에는 뒤늦게나마 프랜시스 교황이 카톨릭 교회가 원주민 기숙학교를 운영하면서 저질렀던 만행을 사죄하기 위하여 캐나다를 방문하였고, 에드먼턴 부근의 옛 원주민 기숙학교터에 가서 원주민 대표들 앞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사과했습니다 (사진 참조). 지금까지 교황이 특정 사건에 대해 특정 민족에게 사과하는 전례가 없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교황의 사과 방문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환영하지만, 원주민 지도자들은 알렉산더6세 교황이 1493년에 선포하여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 개척의 근거가 되었던 “발견의 교리 (The Doctrine of Discovery)”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발견의 교리는 “기독교인들이 거주하지 않는 이교도들의 모든 땅은 기독교 통치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소유가 되고, 착취될 수 있다”는 교리로 신세계 식민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절대적 권리를 부여했으며, 원주민들을 포함한 비 기독교 민족의 토지 소유권 자체를 부정하며, 그들의 인권마저 부정했던 교리입니다. 지난 9월8일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 국왕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장례식이 열리는 9월19일을 추모일로 임시 공휴일을 선포했습니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새로운 국왕인 찰스 3세의 첫번째 서명이 발견의 교리를 폐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피해자의 뜻을 따라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직하고 숨김없이 진실을 찾는 가해자의 겸허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어떠한 치부도 덮고 은폐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던 잘못이 발견되면, 과감하고 솔직하게 사죄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기꺼이 응분의 책임을 충분히 감당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용서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감동하여, 용서의 자리에 이를 때 비로소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서로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9월30일, 금년의 국가 진실과 화해의 날을 계기로 하여,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진실이 원주민들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규명되고, 원주민과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김재유 선교사 (알버타 사랑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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